[우리, 단체 해볼까?] “단체준비위원회를 설립하고…우리는 고립무원의 처지가 됐다”
[우리, 단체 해볼까?] “단체준비위원회를 설립하고…우리는 고립무원의 처지가 됐다”
  • 리얼리즘
  • 승인 2023.12.2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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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다 대표 리얼리즘 기획 칼럼 2화
단체 알릴 성명서 내도 장애계 언론사는 ‘글쎄’ 시큰둥
‘법인’ 설립 가장 까다로워…출연금 필요하지만 백만 원도 아쉬운 상황 봉착
비영리민간단체도 회원수와 사무실 필요…무명 단체의 설움 깨달아
난이도 낮은 비영리임의단체 ‘세바다’ 설립…CMS도 개통
단체 고유번호증은 시작에 불과, 매력적 단체 될 수 있을까?

당사자단체를 만드는 일은 어렵다. 단체 구상, 사무실 마련, 단체 설립신고, 총회, 회계, 행정, 회비와 후원금, 기회, 활동, 연대 등이 그 과정에 끌려나온다. 비영리단체 운영은 흔하지 않고 조언을 구할 곳도 없다. 누군가 몇 마디 말이라도 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사자운동의 ‘당’자도 모르던 리얼리즘이 신경다양성지지 모임 세바다와 회복의공간 난다, 권익옹호기관 등의 설립과 운영에서 깨달은 경험들을 독자와 나눈다. 총 10꼭지 기획으로 진행되는 기사에서 리얼리즘은 '맨땅에 헤딩'하듯 당사자단체를 만들어본 경험을 운동 초보의 관점에서 풀어나갈 예정이다.

세바다 대표 리얼리즘.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세바다 대표 리얼리즘.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첫 시작을 단체‘준비’위원회(이하 ‘단준위’)로 시작했듯 우리는 미등록 단체였다. 미등록 단체는 단체이기는 하되 단체로서의 법적, 세법적 권리와 의무 역시 발생하지 않는 단체이다. 단체로서의 첫발을 힘차게 내딛었지만 우리는 공신력 있는 사업자등록증, 법인등기부, 고유번호증, 아니 활동자료조차도 없었다.

성명서를 퍼트리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성명서를 기사화하기 위해 우리는 성명서를 내면 모두 게재해준다는 장애계 언론사에 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기사는 올라가지 않았다. 참다 참다 편집국에 전화했더니 글쎄, 메일을 받지 못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보도자료나 원고를 보낼 때, 메일 수신 확인이 되지 않는 지메일 대신 네이버 메일로 보내는 것이 버릇이 될 만큼 당혹스러운 경험이었다.

처음 냈던 성명서는 운 좋게 반짝 관심을 끌었지만, 이후에 낸 콘텐츠들은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했기 때문인지 관심을 끌기 쉽지 않았다.

나와 활동가들은 세바다의 콘텐츠를 퍼트리기 위해 다른 장애계 언론사에 원고를 보내보기도 하고, 시민언론에 기자 자격을 신청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허사로 돌아갔다.

한 곳에서는 (우리의 칼럼이) 자신들과 결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한 곳에서는 이유조차 없이 게재를 거절했다.

지금은 우리의 연대단체가 된 estas와는 계속해서 갈등과 반목을 반목하고 있었고, 다른 연대단체는 전무했다. 우리는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었다.

자금 사정은 더욱 처참했다. 모임방이고 단준위고 뭐고 공금이랄 것이 없었다. 회원들을 위해 돈을 쓴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활동에 필요한 실비조차도 활동가들이 갹출해서 해결할 정도였다.

단체의 회비와 후원금을 모을 통장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신용도가 낮아질 위험이 높았고, 그건 다른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임통장 같은 것도 알아봤지만, 개인 통장이든 모임통장이든 통장주의 신용이 좋지 않으면 공금 역시 함께 압류된다는 사실만 알게 될 뿐이었다. 단체 명의의 통장이 필요했다.

나는 단체가 어려움에 빠진 원인이 우리가 미등록 단체이기 때문이라고, 사무실도, 아니 명함조차 없는 유령이나 마찬가지인 단체라서라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공신력 있는 단체를 만들어야 했다.

행정적으로 이력이 남는 단체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단법인 및 재단법인, 비영리민간단체, 일반 비영리임의단체(법인으로 보는 단체, 비법인사단)가 대표적이다. 법인은 설립이 가장 까다롭다. 사무실, 정관, 회원이 필요한 것은 공통이지만 특성이 제각기 다르다.

법인은 민법상의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주체를 새롭게 설립하는 것인 만큼 설립이 가장 까다롭다. 주무관청의 허가가 있어야 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허가와 등기 절차를 모두 감내할 인력과 행정력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출연금(기본재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백만 원조차도 아쉬운 처지였다.

비영리민간단체는 법인과 임의단체의 중간 성격을 지니는데, 민법상의 권리는 없다는 점에서 임의단체와 비슷하고,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법인과도 비슷하다. 비영리민간단체는 100명의 회원수와 회원들이 상시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사무실)이 필요하다. 1년 이상의 활동기록도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신생단체였다. 우리에게는 그 어떤 베이스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일반 임의단체이다. 임의단체는 설립이 가장 쉽다. 회원명부, 정관, 회의록, 사무실 임대차계약서를 준비해서 세무서에 신고하면 된다. 세무서는 서류를 검토하고 이상이 없으면 수리한다. 임의단체는 앞선 것들과는 달리 법인등기부등본이나 허가증도 없고, 기부금영수증도 발급할 수 없지만 단체 명의의 통장을 만들고 후원금 CMS를 개통할 수 있었다.

설립 난이도가 가장 낮은 임의단체라 할지라도 설립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오죽하면 비영리임의단체를 검색하면 인터넷 행정사들의 광고가 뜰까. 사무실이 첫 번째 난관이고, 창립총회는 두 번째 난관이고, 행정업무는 세 번째 난관이었다. 순수한 당사자단체가 이 난관을 행정사의 도움 없이 통과하는 게 쉽지 않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결과적으로 나는 한 번 실패하고, 두 번째 신청에 비영리임의단체를 설립하여 세바다 이름이 적힌 고유번호증을 받았다. 단체 이름도 ‘세바다 단체준비위원회’에서 ‘세바다’로 바꿨다. 행정사 선임 없는 셀프(Self) 설립이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 두 꼭지에서 상세하게 설명드릴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달라.

나는 임의단체 설립 두 달 후에 CMS를 개통하여 정기후원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단체의 활동을 위한 기본적인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바다를 자립할 수 있는 단체로 만드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세바다가 정기후원을 개시했던 2021년 12월에 나는 운명적인 미팅을 하게 되었다. 상대방은 정신장애계의 거물로 떠오르던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님이었다. 미팅이 성공적으로 잘 끝나 제1회 신경다양성 포럼을 개최할 수 있게 되었다.

행사 성격이 컨퍼런스였던 만큼, 연사를 모으는 게 중요했다. 그러나 연사를 모으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장애계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메일을 무작정 보냈는데, 사정상 참여하기 어렵다고 친절하게 회신해주시고 홈페이지에 홍보도 해주신 한 곳을 제외하고는 답변조차 없었다. 관계를 회복한 연대단체 estas와 세바다 활동가들만이 자리를 지켜주었다.

고유번호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역량 강화를 통해 당사자가 편히 찾을 수 있는 매력적인 단체로 만드는 건 고유번호증이 해결해줄 수 없는 과제였다. 과연 세바다는 마음 편한 당사자단체, 매력적인 당사자단체가 될 수 있을까? 앞으로의 여덟 꼭지들을 지켜봐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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