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동등하게 만나 꽃과 꽃이 되도록 봄을 기다리려면…”
“우리가 동등하게 만나 꽃과 꽃이 되도록 봄을 기다리려면…”
  • 박목우 작가
  • 승인 2023.12.19 22: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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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박목우 작가 에세이
우리가 우리들을 일깨우지 않는다면 우리의 절망은 굳어버릴 것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확신을 놓지 않아야
사랑하는 일은 어쩌면 그의 영혼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빛나는 것은 불꽃만이 아니라 살아있다는 것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어
픽사베이.
픽사베이.

언 몸을 겨우 녹이고 십자고상 앞에 앉았습니다. 겨울은 추위로 자신이 왔다는 것을 알립니다. 우리가 올 때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기별을 전하는지요. 가득한 빛과 함께 오는 이와 슬픔으로 무거워진 몸과 함께 오는 이. 우리가 짐을 나눠 진다면, 우리는 같은 조도 아래 행복해진 영혼일지 모릅니다.

조금씩 저는 주님께서 제게 오셨던 날의 기억을 되새기고 그 오심이 뜻하는 것을 묻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따스한 열림. 당신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일. 같이 있고 싶어지는 일. 굳어있던 마음이 부서지며 여린 속살이 드러납니다. 오래 숨죽이고 있던 욕망들이 눈을 뜹니다. 보다 더 저를 당신께 가까이 다가가도록 묻게 되고 싸매어줍니다.

사랑의 모든 상처를 언 몸으로 지우며 겨울이 깊어가듯 추위 속에서도 우리는 이웃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자 한다면 낯선 욕망으로 덮치는 겨울의 응달에도 작은 초를 비출 수 있습니다. 온몸이 가시인 응달에 기도문을 적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사랑의 미래가 남아 있고 그것은 아주 조용한 열정. 그 나아감으로 당신을 증거합니다. 당신이 내게 온 것을 나즉이 알립니다.

픽사베이.

하오의 햇빛에 창가가 맑게 반짝입니다. 이곳은 춥지 않아서 반짝이는 것을 알아보았다지만 마른 벌판 시린 바람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이 볕이 어떤 모습일까요. 아낌없이 내려도 언 바람을 햇빛으로 녹일 수는 없어서요. 그는 절망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주님, 한 해를 건너면 가장 춥다는 계절이 오고 뒤이어 봄이 옵니다. 이 하루가 따뜻한 것은 저의 안식과 평안입니다. 그저 데워진 공기가 방으로 가득하기 때문이지요. 아직 거리에서 외치고 있는 이들, 외침조차 없이 슬퍼하며 갇힌 이들, 모두 한 가지로 사랑을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동등하게 만나 꽃과 꽃이 되도록 봄을 기다리려면 씨앗은 어떤 연대로 이 겨울을 건너는 것일까요.

슬퍼하는 이를 위로하는데는 연민보다 더한 것이 있습니다. 저 문을 열고 나가도 아픈 마음을 위로하는 따스한 입김이나 될까요. 우리가 우리들을 잔잔히 일깨우지 않는다면 우리의 절망은 굳고 단단해질 것입니다. 다시 여린 새순 같은 마음을 기르는 시간은 변화와 생성에 열려 있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그런 것입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확신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라는 것입니다. 나와 세계의 평화를. 분투하며 나아가는 삶이 부디 당신 앞에 있기를 바랍니다. 꽃처럼, 풀처럼, 나무처럼 당신이 싸워갈 날들이 햇빛 아래 묻혀 당신의 선한 입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픽사베이.

꿈꿀 자유를 위해 필요한 것을 챙겨봅니다. 짐은 가볍습니다. 작은 배낭 하나에 물통 하나. 오래 곁에 두고 읽어보고 싶은 당신의 책. 당신은 나의 빛, 나의 유일한 빛이라 노래하는 오르골. 군데군데 드러나는 당신의 문장처럼 흰 구름 위 푸른 하늘이 맑기만 합니다.

주님, 저는 오늘도 주님의 문장을 읽어가고 있습니다. 구름과 구름 사이에 비치는 정갈한 햇빛처럼 쏟아지는 온기와 환한 시야를 느낍니다. 이 탁 트인 마음이 하늘에 번져 구름이 흐릅니다. 작은 사람들의 생활이 구름을 밀어갑니다.

하늘은 가이없고 그 큰 하늘 아래 깨끗한 숨이 조용한 열락을 꿈꿀 때 낮달이 하늘 깊이 잠겨 있습니다. 그 깊이를 꿈꾸라며 달은 흰 빛입니다. 마음이 가장 멀리 갔을 때, 가장 가까이 당신 곁에 머물 때, 흰 빛의 노래가 들립니다. 햇빛에 섞여 가만한 파동이 됩니다. 햇빛의 응답이 됩니다.

오늘은 주님, 그 마음이 사랑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루어야 할 꿈은 깊어지며 낮달처럼 춥게 세상의 냉기에 떨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이 있어 부드러이 구름을 밀어갑니다. 그 손길은 주님의 손길처럼 따듯합니다. 인간의 온기를 품고 아파하셨던 당신의 생이 하늘가에 잇닿아 있습니다. 당신의 웃음을 느낍니다.

픽사베이.

사랑하는 일은 어쩌면 그의 영혼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호지처럼 희고 얇은 영혼. 햇빛이 깊이 배어든, 잘 마른 풀칠로 반듯이 되어 있는 영혼에 누군가가 비칠 때, 그가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일과 같다고요. 삶에서 꼭 해 주어야 할 말들. 어른거리는 언어들을 잡아 아직도 아파하는 당신의 손 위에 놓아주고 싶습니다. 손 위에서 놀던 빛이 서서히 심장까지 이르는 길, 그 지난한 빛이 사랑은 아닐까 하고요. 그것이 당신을 만나 얻게 된 온몸입니다.

물살이처럼 당신의 가슴에서 끝없는 생을 지어낼 생명과 같은 빛. 그 빛을 주님께서는 반기시고 태어나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에 힘을 더하십니다. 살아가라고, 죽기까지 사랑하라고, 부족한 우리의 하루를 낯선 기척으로 채우십니다. 그래서 당신을 안고 있었나 봅니다. 우리가 서로 익숙해지는 환한 시야의 시간에 내 안에서 당신이 체온을 얻도록 깊이 깊이 어루만졌나 봅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은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이어서 오늘도 아침볕을 아낌없이 내어주십니다. 그 빛 속에서는 우리는 저마다의 빛으로 눈을 뜹니다. 보이지 않던 빛을 알고 감사해합니다.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빛의 언어를 지어가며 어둠 속에서도 늘 가까운 저 달빛의 눈부신 평온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픽사베이.

햇빛이 맑아 당신이 오셨음을 알았습니다. 어리석은 마음은 소리없는 기척을 자주 놓치고, 당신은 싸맨 자리 그대로 내 집으로 오십니다. 당신이 아직 아파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님께 제가 다가갔던 희망 한 줌을 쥐고 당신을 아파합니다. 빛이 당신께 닿도록 닦아 놓은 창틀에 햇빛이 밝습니다.

이토록 환한 아픔이 있을까요. 어둠이 내린 도시에 불빛 휘황한데 스스로를 지펴 피운 꽃불이 그럴까요. 우리는 모여 빛깔과 향기로 이야기를 건넵니다. 묵언의 깊은 고요로 바람에 흔들립니다.

어둠 속에, 있는 줄도 몰랐던 더 깊은 어둠 속의 당신. 빛나는 것은 불꽃만이 아니라 살아있다는 것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음을 이제 깨우칩니다. 당신의 작은 몸 안에 숨겨져 있는 말들이 주님의 품에서는 모두 다 들려올 테니까요. 시린 눈물 가득히 주님은 당신을 어루만질 것입니다. 주님이 눈물로 씻어주는 상처가 당신의 희망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맑은 햇빛을 불러오는 목소리로 아름다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숨은 꽃이었던 당신이 영원히 닫히지 않는 꽃을 피우기를 기도합니다. 영원히 밝아올 새벽 속에 하나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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