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후견인 둔 정신장애인의 우체국 거래 허용해야…“후견인은 피후견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
[인터뷰] 후견인 둔 정신장애인의 우체국 거래 허용해야…“후견인은 피후견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
  • 김근영 기자
  • 승인 2024.01.04 1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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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규 변호사 인터뷰
금융 거래 차단은 후견제도가 당사자 권리 제한하는 사례
타 은행도 비슷한 제한둬…대법원 “국가 운영 우체국은 차별 말아야”
법, 30일 합산 100만 원은 동의 필요 없어…은행이 오히려 제한 가해
한정후견제도 악용될 소지 다분…한정후견인이 피후견인 위해 존재해
소송 안 한 피후견인들도 위자료 받아야 공정…국가배상 의무 부과
우정사업본부. [연합뉴스]
우정사업본부. [연합뉴스]

지난 2018년 2월, 충남 논산의 논산정신요양원 입소자 18명에 대한 한정후견이 개시됐다. 이후 이들 피한정후견인들은 주 거래처인 우체국 통장 거래가 제한되기 시작했다.

1원 이상의 금액을 사용할 때 무조건 은행 창구를 통한 거래만 가능하며 체크카드나 현금자동인출기(ATM), 인터넷 뱅킹 역시 차단됐다. 우체국 측은 또 이들이 100만 원 이상 거래 시 반드시 한정후견인의 동행을 요구했다.

사실상 피한정후견인의 단독 거래가 가로막힌 셈이다. 피한정후견인이 되기 전까지 요양원 입소자들의 금융 거래는 자유로웠다. 후견제도가 오히려 당사자들의 금융 거래를 막는 수단이 돼 버린 것이다.

그해 11월, 소송이 시작됐다. 피한정후견인들의 법률대리를 맡은 최정규 변호사는 우체국의 금융 거래 제한이 장애인차별금지행위 위반이라며 법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된 1, 2차 변론에서 재판부는 타 시중 은행들의 경우 어떻게 거래가 시행되고 있는지, 100만 원 이상 인출 시 거래를 제한할 수 있는 전산 프로그램의 개발 여부를 우체국에 요청했다.

그해 8월, 법원은 논산요양원 입소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30일 합산 100만~300만 원 미만의 거래 시 동의서 제시와 후견인의 동행을 요구하는 행위를 중단할 것과 비대면 거래가 가능하도록 시스템 마련을 주문했다. 그리고 입소자들에 50만 원 이상의 위자료를 각각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우체국은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2023년 9월 27일 선고에서 “피한정후견인의 보호 조치나 제한이 필요한 지는 후견사건을 담당하는 가정법원이 판단하는 것”이라며 “우체국이 임의로 제한하는 것은 정당화할 근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이후 우체국은 원고 18명 중 사망자 5명을 제외한 13명에 대해 1인당 29만 원의 위자료와 이자가 지급했다. 소송 5년 만이다. 한정후견을 맡았던 한울정신장애인권익옹호사업단은 소송에 참여하지 않았던 나머지 피한정후견인에 대해서도 위자료 지급을 받기 위해 국가배상 신청을 준비 중이다.

최 변호사는 이 사건이 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의 원칙과 맞물려 있다고 밝혔다. 피한정후견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은행에서 돈을 찾는 행위를 제한하는 건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낙인의 강화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마인드포스트>는 그와 서면인터뷰를 진행했다. 일문일답.

최정규 변호사. [법무법인 원곡 블로거 갈무리]
최정규 변호사. [법무법인 원곡 블로그 갈무리]

-성년후견제가 도입되기 전에 논산정신요양원 정신장애인들은 금융 거래가 자유로웠나.

“후견심판 결정 받기 전까지 금융거래에 제한이 없었다. 오히려 후견심판결정을 받은 후 금융거래가 불편을 겪게 됐다.”

-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옹호하기 위해 도입된 후견인제도가 오히려 은행이나 우체국의 금융 행위를 가로막는 장벽이 된 거라고 봐야 할까.

“후견제도가 오히려 당사자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이다. 법원은 당사자의 권리가 부당하게 제한되지 않도록 여러 안전장치를 후견심판 결정에 담아도 현실에서 그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되는지를 더 세심하게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금융 거래의 제한은 우체국의 특수한 사례인가. 아니면 타 은행들도 그렇게 제한하고 있는 건가.

“타 은행들도 유사한 제한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아니라고 부인하겠지만, 은행 창구에서는 비슷한 제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사건 소송 과정에서도 확인됐다.

역설적으로 우체국 은행이 다른 은행도 비슷한 제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로 제출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다른 은행이 다 그렇더라도 국가가 운영하는 우체국은행을 그런 차별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취지로 국가기관의 장애인차별시정의무 조항을 판결문에 기재하기도 했다.”

-타 은행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면 각 은행을 대상으로 소송을 진행해야 하는 걸까.

“우체국 은행이 패소 판결을 받고 다른 은행들도 소송을 당할 것이 염려돼 어느 정도는 시정을 한 것으로 안다. 만약 또 이런 차별이 발견된다면 소송을 통해 법원에 적극적 차별구제를 요청해야겠지.”

-피한정후견인이 일상생활 비용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불편함은 어떤 게 있나.

“30일 합산 100만 원까지는 자유롭게 은행거래가 가능하도록 후견심판결정문에 담았는데, 우체국 은행이 창구거래만 가능하도록 막아 두었다. 결국 피한정후견인들은 자장면 하나를 먹을 때에도 현금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목돈을 인출해 보관하던 중 도난 피해도 입었다는 사례도 보고됐다.”

-피한정후견인들이 우체국에서 ATM이나 인터넷뱅킹 등 비대면 거래가 가능한 장치가 마련됐나.

“2020년 6월 24일,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비대면 거래가 가능하도록 장치를 마련했다. 물론 우체국 은행은 장애인 차별이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았고,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개선했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아무튼 그 무렵부터 시정됐다.”

-대법원은 피후견인의 보호 조치나 제한의 필요성은 가정법원이 판단하는 것이지 우체국이 임의로 제한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좀 더 설명해준다면.

“이 부분이 중요하다. 법원은 피한정후견인의 상황을 고려해 후견인의 동의가 필요한 법률행위를 정한다. 이건 법원의 판단 영역이다.

30일 합산 100만 원은 동의가 필요하지 않는 법률행위로 법원이 규정했는데, 우체국 등 다른 기관이 피한정후견인의 보호를 위해 더 제한을 하는 건 한정후견제도의 취지와 법원의 결정을 무시하는 처사다. 대법원은 이를 명확하게 한 거다.”

-후견인이 ‘동의’하는 것과 ‘동행’하는 건 어떤 차이가 있나.

“동의는 서면 또는 구술로 할 수 있다. 피한정후견인이 한정후견인으로부터 받은 ‘동의서’를 지참해 혼자 은행거래를 할 수 있는 것과 은행거래가 필요할 때마다 한정후견인의 ‘동행’이 필요한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동의서를 서면으로 받아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누군가의 동행이 필요한 일로 번거롭게 한다면 당사자 입장에서는 은행 가는 일이 엄청난 고통일 것이다.”

-대법원 판결 이후 100만 원 이하는 후견인 동의를, 300만 원 이상은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제도가 타 시중은행에도 영향을 미칠까.

“이 사건 판결 이후 시중은행에서도 유사소송이 제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거래 관행을 시정한 것으로 파악된다.”

-정신건강복지법 제2조는 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권 존중을 명시하고 있다. 이를 위한 한정후견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한정후견제도가 원래 취지와 달리 악용될 소지가 다분히 있다. 우체국 사례와 달리 한정후견인을 통해서도 악용될 수 있다. 실제 최근 한정후견이 종료된 사례가 있는데, 이 사례에서는 당사자가 집을 구입하고 싶었지만 한정후견인이 동의를 해 주지 않아 애를 먹었고, 후견 종료에도 애매한 입장을 취해 법적 다툼을 항고심까지 이어나가기도 했다.

한정후견인이 피한정후견인을 위해 존재를 하는 것이지, 피한정후견인이 한정후견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대법원. 연합뉴스.
대법원. 연합뉴스.

-앞으로 피후견인의 은행 업무가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 어떤 조치들과 법적 장치들이 마련돼야 할까.

“금융위원회에서 2018년 4월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피한정후견인 등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도록 ‘후견유형별, 거래유형별 장애인 응대 메뉴얼’을 만든다고 공표했다. 아직 금융위원회 차원에서 이런 매뉴얼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금융위원회 등 국가기관이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울정신장애인권익옹호사업단과 한국정신건강전문요원협회가 소송에 ‘미참여한’ 피후견인들에 대한 위자료 지급을 받기 위해 국가배상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미참여자들에게도 위자료를 지급해야 하는지 이유가 궁금하다.

“소송을 제기한 사람만 위자료를 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위자료를 받지 못한다면 공정하지 못한 처사이다. 국가기관이 자신들의 위법한 행정으로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힌 사실을 알았다면 국가배상법상 국가배상 신청을 안내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번에 우체국은행이 그 의무를 이행했다. 우체국은행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국가기관이 이런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길 촉구한다.”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여기에는 성년후견인제도가 들어갔다. 이 제도가 현실에서 정착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후견인제도가 오히려 장애인의 발목을 잡는 일이 없도록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진정 정신장애인에게 후견인제도가 도움이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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