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인아메리카] 세계보건기구와 유엔: 미친놈들을 위한 자유의 종소리
[매드인아메리카] 세계보건기구와 유엔: 미친놈들을 위한 자유의 종소리
  • 김근영 기자
  • 승인 2024.01.03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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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세계보건기구(이하 WHO)는 300쪽 분량의 '지역사회 정신건강 서비스 지침(이하 WHO2021)'(링크클릭: 원문 다운로드(guidance on community mental health services))이라는 문서를 통해 정신과 치료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촉구하며 생의학적 모델을 "사람중심, 권리기반 접근방식"을 장려하는 모델로 대체하라고 제안한 바 있다. 

'매드 인 아메리카'에 따르면 이는 글로벌 정신건강의 급진적 변혁이라 부를 만한 것이다. 

WHO2021 지침은 WHO 정신건강 및 약물남용 부서의 정책, 법률 및 인권 부서장인 미셸 펑크(Michelle Funk)가 이끄는 WHO 팀이 마련했다. 정신과 치료를 다시 생각하자고 제안하는 대담한 문서다. '매드 인 아메리카'도 당사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온 변화의 요구와 여러 측면에서 일치하다며 이를 환영했다.

지난 10월, WHO와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사람 중심, 회복 지향, 권리 기반 정신건강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법률 제정에 길잡이가 되는 장문의 문서인 '인권 중심 정신건강 법률을 위한 지침 및 실천'(이하 WHO2023)(링크클릭: 원문 다운로드(mental health, human rights and legislation))을 공동으로 발표했다. 언뜻 보기엔 2021년 보고서에 대한 후속 조치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보고서를 읽은 후 생각이 달라졌다. 이는 정신건강 정책에 관한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미친놈'으로 불렸고 오늘날에는 '중증 정신질환자'로 간주되는 사람들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외침이다.

실제로 해당 문서를 읽으면서 영미 역사상 자유와 해방에 대한 위대한 선언인 마그나 카르타, 노예해방선언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이 떠올랐다. WHO 보고서를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다음과 같다. 

강제 치료는 심각한 인권 침해다. 사람들을 자신의 의사에 반해 감금하고 강제로 치료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률은 폐기돼야 하며, 그러한 강제 치료는 강제 치료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권리를 보호하는 법률로 대체돼야 한다.

이는 오늘날 정신의학이 실행되는 방식에 도전하고 궁극적으로 사회에서 정신의학의 권력에 도전하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특정인을 '정신병자'로 간주할 수 있는 의료적 권력을 행사하는 정신의학은 그러한 사람들이 '병식'이 부족하므로(자신이 아프고 치료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부족하므로) 강제로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정신의학과 사회가 사람들을 가두고 그들의 의지에 반해 강력한 항정신병 약물을 투약하는 것에 대한 도덕적 면죄부를 허락한다. 이 치료가 당사자를 위한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번 보고서를 통해 WHO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강제 치료는 심각한 인권 침해로 이해돼야 하며 반드시 종식돼야 한다는 것이다. 

급진적인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

WHO2021에서 가장 급진적인 요소는 급진적 개혁을 위한 관리 원칙으로, 2008년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을 수용한 것이다. CRPD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다른 모든 사람과 동등한 권리와 기본적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선언하고, 본질적으로 강제 치료와 강제 입원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선언했다.

2020년, 유엔 고문 특별보고관은 정신과의 강제 치료 문제를 다뤘다. 특별보고관은 이러한 개입이 "일반적으로 피해자의 성격, 행동 또는 선택을 통제하거나 '교정'하려는 매우 차별적이고 강압적인 시도를 수반하며, 거의 항상 심각한 고통이나 고통을 가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특별보고관이 보기에, "다른 모든 정의 요소가 주어진다면 이러한 관행은 고문에 해당할 수 있다."

WHO2021은 이러한 정서를 반영했다. 이 보고서는 180개 이상의 국가가 CRPD를 비준했지만 "강압이 없는 서비스"를 만들라는 CRPD의 요청을 충족하는 기준을 채택한 국가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WHO2021 저자들은 이렇게 썼다.

정신건강 전문가의 교육과 훈련 등 정신건강 시스템 전반에 강압적 관행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고, 이러한 인식은 국가의 정신건강법률과 관련 법률에 의해 강화된다. 강압적 관행이 특정 도움을 준다는 증거가 부족하고 신체적, 정신적 피해와 심지어 사망으로 이르게 한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압적 관행은 이미 전 세계에 만연해 있으며 정신건강 서비스에서도 점점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강압적 관행에 노출된 사람은 비인간화, 박탈감, 모멸감 등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결정을 내릴 때 소외된 느낌을 받는다고 보고했다. 많은 이들이 이를 통해 트라우마 혹은 재트라우마를 겪게 되며, 이로 인해 상태가 악화되거나 고통스러운 경험이 늘어난다. 또한 강압적 관행은 정신건강 서비스 종사자에 대한 신뢰를 크게 약화시켜 결과적으로 이들에게 치료와 지원을 요청하지 않게 된다. 또한 강압적 관행을 사용하는 전문가의 안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미국은 유엔에서 CRPD를 비준하지 않은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미국에서는 강제 치료가 제도적으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당사자의 뜻에 반해 사람을 가두는 기준이 매우 모호하다. 그저 자해나 타해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기만 하면 된다. 아울러 외래 치료 보조가 확대됨에 따라 이제 이러한 강제 치료가 지역사회까지 이어질 수 있다. 미국에서 정신과를 중심으로 강제 치료가 확산되고 있으며, 다른 많은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CRPD, 규범적 기준

미셸 펑크와 그녀의 공동 저자들은 전 세계 인권 운동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며 WHO2023에서 CRPD 준수가 모든 국가의 입법 목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CRPD는 정신건강돌봄 영역에서 국제 인권 기준의 보호를 강화하고 정신건강 상태 및 심리사회적 장애를 가진 사람의 권리가 모든 사람의 권리와 동등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CRPD는 개인의 역량 강화와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참여를 우선시하는 권리 기반 정신건강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는 법적 환경을 조성한다. WHO와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공동으로 작성한 이 보고서는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강령이다. 이 문서는 정신건강 인권을 증진하고, 법적 및 태도 변화를 지원하며, 정신건강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는 모든 이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률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한다. 또한 인간 존엄을 존중하고 국제 인권 규범과 기준을 준수하는 정신건강 서비스를 구축을 위해 단계별로 제안한다.

이러한 CRPD 프레임워크에 따라, WHO2023은 여러 구절에서 강제 치료의 종식을 주장하며 모든  이의 '자유'를 요구하고 있다. 다음은 그러한 구절 중 일부다.

'국제 인권법' 섹션

모든 이는 정신건강 시스템에서 치료를 받거나 거부할 수 있는 자유롭고 정보에 입각한 동의를 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법적 의사결정에 대한 거부, 강압적 관행 및 제도화는 종식돼야 한다. 현재까지 187개 국가와 유럽연합이 CRPD를 비준함에 따라 유해 관행을 인권의 완전한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 및 지원 구조로 대체해야 할 법적 의무가 생겼다.

'강압에 대한 사례' 섹션

인권의 관점에서 볼 때 정신건강 치료의 강압적 관행은 CRPD를 포함한 국제 인권법과 모순된다. 이는 개인의 법적 의사결정을 부정함으로써 법 앞에 평등하게 인정받을 권리 및 법에 의한 보호와 충돌한다. 강압적 관행은 기본권인 개인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침해한다. 또한 자유롭고 충분한 정보에 입각한 동의를 받을 권리, 더 일반적으로는 건강에 대한 권리와도 모순된다.

강압은 당사자에게 심각한 고통을 가할 수 있으며,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쳐 회복을 방해하고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기며 심지어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한 강압 치료로 인해 시설에 수용되거나 다른 형태의 소외가 발생하면 독립적인 생활과 지역사회에 통합될 권리가 침해된다.

정신건강 치료의 강압적 관행은 고문 혹은 잔인하고 비인도적이며 굴욕적인 대우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침해한다.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법적 역량(권한)'에 관한 섹션

법적 역량(권한)이란 권리를 행사하고 자발적 의료 결정을 내리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 CRPD 제12조는 심리사회적 장애를 포함해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타인과 동등하게 법적 역량을 행사할 권리를 누린다는 것을 인정한다. 따라서 개인의 '정신 역량'이 법적 역량을 거부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사람들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어야 하며, 원하는 경우 공식 및 비공식 지원을 포함해 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CRPD 당사국에 따르면, 당사국은 후견, 성년후견, 피후견인과 같은 모든 형태의 대리 의사 결정을 지원 의사 결정 제도로 대체할 의무가 있다.

'개인의 자유와 안전'에 관한 섹션

대부분의 국가의 정신건강법은 정신건강 진단 또는 장애를 근거로 하거나 다른 요인과 결부해 개인의 자유를 박탈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 경우 가장 일반적으로 개인이 자타해의 위험을 초래하거나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에 해당한다. CRPD 제14조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타인과 동등하게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누린다는 점을 재확인하고, "장애의 존재가 어떠한 경우에도 자유의 박탈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제14조가 장애를 이유로 한 자유 박탈을 절대적으로 금지함으로써 "위험성" 또는 "치료의 필요성"을 이유로 한 모든 형태의 비자발적 정신보건시설 수용을 금지한다고 강조했다.

'자유롭고 정보에 입각한 동의'에 관한 섹션

현재 대부분의 정신보건법은 정신질환 및 심리사회적 장애가 있는 사람의 치료에 대한 자유롭고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동의권을 제한하고 있으며, 대리 의사결정을 선호하고 있다.

CRPD 제25조(d)는 당사국이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의료 서비스가 자유롭고 정보에 입각한 동의를 바탕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15조는 누구도 자신의 자유로운 동의 없이 의학적 또는 과학적 실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비자의적 치료는 건강권은 물론 법적 권한(12조), 고문 및 부당한 대우로부터의 자유(15조), 폭력, 착취 및 학대로부터의 자유(16조), 개인의 완전성(17조)을 침해하는 것으로 해석돼 왔다. 모든 서비스 이용자의 권리를 존중하고, 모든 치료 결정이 개인의 자유롭고 정보에 입각한 동의를 기반으로 하는 정신건강 서비스 개발을 위한 법적 프레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독립적으로 생활하기' 섹션

역사적으로 정신질환과 심리사회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정신건강 및 사회 복지 분야에서 차별, 시설화, 격리수용 등의 관행에 노출돼 왔다.

CRPD 제19조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가 독립적으로 생활하고 지역사회에 통합될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사회 내에서 최대한의 자기 결정권과 독립성을 가지고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대해 자유롭게 선택하고 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이 포함된다. 따라서 정신건강 상태 및 심리사회적 장애가 있는 사람은 시설과 같은 특정 생활 환경에서 살아야 할 의무 없이 타인과 동등하게 거주 방법, 장소, 동거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누려야 한다.

'사법에 대한 접근성' 섹션

정신질환 및 심리사회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사법 접근성은 일반적으로 제한돼 왔다. 이는 공정한 법원판결을 받을 권리에 영향을 미치고 자의적 구금, 강제 치료 및 정신건강 서비스 현장에서의 학대 행위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예를 들어 고소를 제기하거나 법원판결을 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 형사, 민사 및 행정 절차에서 벗어나 자유 박탈, 강제 치료 및 시설 수용, 신뢰성 부족, 비효율적인 구제책, 법률 지원의 부족 등이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장벽으로 인해 정신질환 및 심리사회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사법 영역에 효과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정신건강 서비스 및 그 밖의 영역에서 학대와 방임에 빠질 위험, 형사사법 시스템에서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릴 위험이 늘어나게 된다. 

WHO2023은 바로 이러한 자유의 정신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는 사회가 "미친놈"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기본권을 보호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하라고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정신질환자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될 권리가 있으며, 자신이나 타인에게 위험하다는 이유로 자유를 박탈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실제로 나는 이 보고서를 읽은 후 미국 건국자들이 1776년 7월 4일 작성한 미국 독립선언서의 결의가 떠올렸다.

우리는 모든 이가 평등하게 창조됐고,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특정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그 권리 가운데 생명, 자유, 행복 추구권이 있다는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큰 싸움은 이 결의를 모든 시민, 모든 여성, 모든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까지 확대하는 것이었다. WHO2023도 그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자유에 대한 결의는 "미친놈"으로 간주되는 이들에게도 확대돼야 한다. 강제 치료는 자유를 부당하게 앗아가는 행위다. 미국을 비롯한 다른 모든 국가도 그렇게 인식해야 한다.

아니면, 이 글의 제목처럼 "미친놈들을 위한 자유의 종소리"를 울리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필진

로버트 휘태커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의학, 과학, 역사에 관한 글을 쓴다. 정신의학 및 제약산업에 관한 기사로 '조지 포크 의학 저술상'과 '미국과학작가협회 최우수 잡지 기사상'을 받았다. 5권의 저서를 냈으며 그 중 3권에서 현대 정신의학을 다뤘다. '약이 병이 되는 시대'로 'IRE 2010 최고의 탐사 저널리즘 도서상'을 수상했다. 〈보스턴글로브〉에 공동 기고한 시리즈 기사로 1998년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서 살고 있다. 웹진 '매드 인 아메리카' 창립자 겸 발행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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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영 (가비노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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