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법과 절차: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음을 불러올 수도 있다
[칼럼] 법과 절차: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음을 불러올 수도 있다
  • 제철웅 교수
  • 승인 2024.01.0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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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선균이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CGV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2019.5.28 [사진=연합뉴스]
배우 이선균이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CGV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2019.5.28 [사진=연합뉴스]

작년 연말 배우 이선균씨의 자살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안타까움을 안겨 주었다. 심한 불안이나 무기력으로 힘들 때 마약을 유통시키는 자들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 잘못이라 하더라도 죽을 죄는 아니다. 그래서 수사한 경찰, 앞다투어 경쟁보도에 나선 언론, 2022년 하반기 마약 청정국의 지위를 되찾겠다면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법무부 등에 문제가 있지 않는가라면서 비난의 대상을 찾은 의심의 눈길도 있다.

사람의 잘못인가, 제도의 잘못인가?

아편, 코카인, 마리화나 등 마약류는 순간적인 통증완화, 흥분, 쾌락을 주기 때문에 약물로 처방되거나 특허 약물의 구성 성분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높은 의존성으로 개인의 삶을 통제불능으로 만들기도 하고, 환각상태에서 타인에게 심각한 위해를 끼치기도 해서 강력한 정부의 통제는 불가결하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미국은 1914년 the Harrison Narcotic Act를 제정하여 의사와 약사가 비의료적인 목적으로 마약을 처방하지 못하게 하고, 적법한 처방 없이 마약을 복용하는 자를 처벌했다.

이 법 제정 후 마약 복용으로 감옥으로 가는 사람이 늘게 됐다. 처벌로도 중독을 막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1971년 닉슨 정부는 마약을 제1호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면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밀수 마약이 확산되면서 1986년 반약물남용법(Anti-Drug Abuse Act)를 제정해 불법적 마약 제조, 판매, 사용을 근절하기 위해 한 해 40억 달러가 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그 중 70%가 마약 단속에 사용됐다.

[photo=hempshopper]
[photo=hempshopper]

사회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마약청정국의 지위를 되찾겠다는 의지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우리 법무부에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마약사범이 증가하는데도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비난이 거세졌을 수 있다.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마약사범을 수사한 경찰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도 쉽지 않다. 유명인 마약사범을 수사하는 경찰이 그를 언론에 노출시키지 않도록 충실히 배려했다면 역으로 특혜라는 비난을 받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경쟁이 제도화돼 있는 환경에서 언론사가 유명인 마약사범을 집중 취재한 것이 범죄 혐의를 받는 정치인을 집중 취재한 것과 과연 얼마나 차이가 있는 것일까?

‘엄벌주의’를 취하는 마약류관리법의 절차는 형식적 공정성을 강조하고 마약 복용 의심자의 개별적 특성을 전연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판사, 검사, 경찰 등은 범죄 사실이 의심될 경우 최선을 다해 범죄 혐의를 밝혀야 한다. 폭력적이지 않고, 자아 손상이나 충돌로 인해 힘겨워 하는 피의자들은 수사의 부담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마약제조자, 유통업자나 강력범죄 피의자가 수사과정에서 자살하였다는 기사를 거의 본 적이 없는 것과 대비된다. 되돌이켜 생각해 보더라도, 수사기관은 관련 법과 절차의 테두리 내에서 자기 역할에 충실했을 수 있다. 그들을 탓할 것도 아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류 [사진=국가법령정보센터 갈무리]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류 [사진=국가법령정보센터 갈무리]

엄벌주의와 병존하는 전환(diversion) 정책: 미국의 사례

‘법과 절차’가 문제일 수 있다. 그 ‘법과 절차’가 취약한 한 개인을 죽음으로 내몰았을 수 있다. 법과 절차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힘’이 있다는 것에 주목하게 되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정신질환을 다른 질환과 차별하지 않도록 하는 시민권 회복 운동을 선도한 미국 법률가들은 시민권 회복이 정신질환자의 치료와 회복을 촉진시키는 경험을 하면서 법과 절차가 가진 치유적 효력에 주목했다. 이들은 1980년대 들어 법과 절차가 인권 존중과 회복을 지향하면 할수록 처벌중심적 제도의 부작용이 없어질 수 있다는 믿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런 믿음이 ‘마약사범’에게도 적용됐다. 마약사범을 엄벌하는 것만으로는 마약 중독의 확산을 막을 수도 없고, 중독자의 치료를 촉진할 수도 없다는 엄벌주의의 한계를 인식했다. 그 결과 마약 제조, 공급, 판매, 유통에 연루되지 않고 또 폭력적이지 않은 마약사범을 처벌하기 보다는 자발적으로 치료에 참여하도록 촉진하는 정책을 제도화하기 시작했다. 법원과 마약사범의 간의 계약을 통해 다양한 유형의 자발적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촉진하는 ‘약물법원’이 설립된 배경이다.

약물법원은 1989년 마이애미에서 처음 설치돼 현재 미국 전역에 4000여 개가 넘게 활동하고 있다. 약물법원의 특징은 기소 전 단계에서 치료계약을 체결하거나 기소 후 선고 전 치료계약을 체결하거나 조건부 선고 후 치료계약을 체결하는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치료프로그램을 모두 이수하면 기소를 하지 않거나 선고를 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범죄 기록이 남기지 않는 혜택을 줌으로써 자발적 치료참여를 촉진시킨다.

약물치료는 치료계약의 일부이고, 개인 및 집단 상담, 동료지원모임 참가, 그 밖에 개인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유형의 치유 활동이 포함된다. 치료계약의 체결과 이행 과정, 즉 치료계획과 평가 과정을 의사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판사, 검사, 피의자 또는 피고인 변호사, 사회복지사, 의사 등으로 구성된 다학제팀이 주도한다. 당연히 마약사범으로 체포된 사람의 자발적 참여가 필수요소다.

‘계약’이라는 메카니즘은 당사자 간의 평등과 자발성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마약사범의 내면의 참여 동기를 촉발시키는 좋은 수단이 되는 셈이다. 외부로부터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치료에서의 자기 주도성이 보장된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이런 제도 하에서는 ‘마약복용’을 수사하고 보도하는 것이 스티그마를 주지 않는다.

약물법원의 성과는 아동학대, 소년범, 정신질환을 가진 범죄자의 치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새로운 유형의 법원이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다. 미국 법률가와 법원의 이런 노력은 캐나다, 호주, 이스라엘, 영국 등으로 확산됐다. 동일하지는 않지만 대륙법 국가에서도 유사한 원칙과 원리를 수용해 중독, 정신질환, 학대 사건들을 처리하고 있다. 엄벌주의와 그것의 대안을 넓게 인정하는 전환(diversion) 정책이 제도로서 잘 정비되어 있기 때문에 마약중독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기회가 더 확대된 셈이다.

엄벌주의 제도에 집중돼 있는 우리나라

일제강점기를 벗어난 우리나라도 1953년 제정된 형법에서 ‘아편에 관한 죄’를 제2편 제17장에 규정하였고, 1957년 ‘마약법’을 제정하여 마약중독자를 강제치료하도록 했다. 또한 마약과 마찬가지로 중독성 있는 습관성의약품(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도 강제치료를 할 수 있게 1970년 습관성의약품관리법(1979년 향정신의약품관리법으로 개정)을 제정했다. 1976년에는 대마흡연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대마관리법을 제정했다. 2000년 이 법들은 마약류관리법으로 통합됐다.

마약, 향정신의약품, 대마 등은 한 번의 사용만으로도 중독되어 혼자만의 힘으로 벗어나기 어렵다. 마약류는 생물학적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에, 개인이 경험하는 불안, 긴장, 우울, 고통 등의 감정을 증폭시켜 이를 벗어나고자 다시 마약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마약류 중독은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질환에 걸리게 하거나 확산시키는 사람은 엄벌해야 하지만, 질환에 걸린 사람은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 마약류관리법이 치료보호제도를 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양귀비에서 흘러내리는 유액
양귀비에서 흘러내리는 유액

그러나 마약류관리법은 아직도 1970년대 닉슨 정부 하에서의 마약과의 전쟁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약류관리법 시행령인 ‘마약류중독자치료보호규정’은 신청권자(검사, 교정시설의 장, 중독자 본인, 배우자, 직계존속, 법정대리인)의 신청에 의해 중독 여부를 검사하여 치료보호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 마약사범이 기소된 경우 마약류관리법에 따라 선고유예, 집행유예를 하면서 치료보호를 받게 할 수도 있다.

마약류관리법에 따른 치료보호제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마약사범을 처벌에 덧붙여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에 있다. 처벌로 인한 스티그마를 두려워하는 중독자의 관점에서는 마약복용이 드러나지 않도록 감추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협박, 유혹 등 다양한 연관 범죄는 이런 약점을 파고 드는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경찰, 검사, 판사 등의 법률가들의 역할을 마약사범에 해당되는지를 밝히는 것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에 있다.

범죄가 밝혀진 후 비로소 처벌의 강도를 조절하여 기소유예, 선고유예, 집행유예로 할 것인지를 검토하도록 한다. 그 과정도 피의자, 그의 변호인, 그리고 수사기관, 법원 간에 진실 발견을 둘러싼 치열한 숨바꼭질이 되도록 설계돼 있다. 불안, 우울의 심리를 가진 중독질환자는 수사와 재판의 과정에서 그 감정이 더욱 증폭되기도 한다. 중독자가 이런 절차의 최대의 피해자가 될 위험이 있다.

세 번째의 특징은 중독에서의 치료가 의사에게 맡겨져 있고, 중독자는 치료대상으로 전락한다. 의사 중심의 치료에서는 개인 특성에 맞는 다양한 치유활동이 고려되기 어렵다. 중독에 이르게 된 삶의 궤적, 내면의 갈등, 자아의 손상과 충돌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중독자의 삶의 무게와 번뇌를 공감의 심정으로 경청할 사람이 없다. 강한 사회적 비난 앞에 스스로를 탓함으로써 스티그마의 내재화가 진행된다. 불안하고 힘들었던 자신의 과거를 되짚어 보면서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기 위한 여정, 즉 회복의 여정을 걸을 내적 동기가 생기지 어렵다.

엄벌주의만이 지배하는 사회환경에서는 역설적으로 마약중독에서 쉽게 벗어나기도 어렵다. 사회적 비난이 강하기 때문에 자기결정권의 존중, 선경험 있는 동료들과의 소통과 지원 등을 기대하기 어렵다. 선진국에서는 흔한 중독자 자조모임이 우리나라에서 드문 것도 이런 사회환경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엄벌주의와 전환(diversion) 정책의 병존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도 미국 등 선진국처럼 마약제조, 공급, 유통, 확산에 관여하지 않은 비폭력적인 중독자에게 처벌 대신 자발적 치료와 치유의 길로 나설 수 있는 우회로를 제공해야 한다. 이런 전환(diversion) 정책이 마약중독자 대응정책의 핵심 부분의 하나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처벌에 갈음하여 자발적 치료 참여에 나설 수 있게 촉진하는 제도가 도입되면 수사기관, 법관, 서비스제공자, 마약중독자의 자세도 달라질 것이다. 제도가 사람을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그래야만 마약과의 전쟁에서 빚어지는 부작용이 최소화될 것이다.

정의의 여신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연합뉴스]
정의의 여신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연합뉴스]

시야를 돌려 우리 사회의 다른 부분을 보더라도 엄벌주의가 너무 만연해 있다. 정신질환 의심자의 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범죄자 아닌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을 쉽게 할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런 사회환경의 영향 때문이다. 양 극단의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는 불모의 사회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법률가 출신 정치인들은 정신질환 치료를 앞당기기 위해서도 정신질환을 다른 질환과 차별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정신질환자의 시민권 회복 운동에 앞장섰던 미국 법률가들의 활동과 업적이 정신건강 정책만이 아니라 마약 정책, 아동학대 정책, 치료감호 정책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에 주목하면서 그들의 활동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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