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치료와 쉬운 입·퇴원, 거부감 없는 강제입원...이제 그 실현 방법에 집중해야”
“빠른 치료와 쉬운 입·퇴원, 거부감 없는 강제입원...이제 그 실현 방법에 집중해야”
  • 제철웅 교수
  • 승인 2023.08.23 20:1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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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악한 정신병원, 전문가 윤리의 실종 외면한 사법입원 논의는 사회적 스티그마만 높여
미국, 사법입원에서 변호사도 절차조력인 참여...공중에 기여하는 윤리의 실천
정신과 의사의 전문가 윤리는 당사자 상황과 법의 개입에 대한 ‘정직한 설명’
입적심과 인신보호법, 국선변호사 선임 고지는 ‘환자에 대한 충실성’ 의미
병상 부족이 아니라 장기입원 폐해 때문...거부감 없는 강제입원 정책 제시해야
사법입원·국민안심입원 등 강제입원 논의의 최종 피해자는 국민
분노범죄와 정신질환은 인과관계가 없다. 하지만 언론과 치안은 이 둘을 늘 연결시킨다. 지난 3일 발생한 분당구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이미지. [사진=연합뉴스]
분노범죄와 정신질환은 인과관계가 없다. 하지만 언론과 치안은 이 둘을 늘 연결시킨다. 지난 3일 발생한 분당구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이미지. [사진=연합뉴스]

◆…분노범죄와 정신질환은 인과관계가 없다

신림동과 서현동 묻지마 칼부림에 이어 신림동 강간살인 사건이 이어져 국민들의 불안은 더욱 높아졌다. 언론은 경찰이 신림동 강간살인자의 정신병력을 수사한다고도 보도했다.

이런 범죄를 정신질환과 연결짓는 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위험하다. 분노, 성욕을 정신질환과 연계하면 정신질환자가 아닌 국민이 어디에 있을까? 무모한 일이다. 범죄를 정신질환과 연계해서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법원 판결 또는 정신건강심판원 결정으로 "치료받지 않는 정신질환자를 강제입원"시키자는 주장은 더 무모한 주장이다.

타인을 폭행·상해·강간·살해하는 범죄는 대부분 분노, 충족되지 않은 욕구, 불안 등 불안정한 심리상태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정신질환자도 분노, 충족되지 않은 욕구, 불안 등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이것과 정신질환이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누구라도 이런 심리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중대범죄일수록 범죄자의 전력을 종합적으로, 생애사적으로 조사 분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정신질환에 초점을 맞춰 조사하는 것은 전근대적이다.

총기범죄, 증오범죄가 빈발하는 미국에서 범죄자의 정신질환을 부각시켜 조사하지 않는다. 그런 사건을 빌미로 치료받지 않는 정신질환자를 강제입원시키자는 논의는 더더욱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선진국에서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전문가라면 전문가윤리에 충실해야 한다

‘국민 안심’을 위해 법원 판결로 강제입원시키자는 주장이 극히 일부지만 정신과 의사들이 주장하는 것은 우려할 일이다. 전문가윤리를 실천해야 할 사람들이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국민이 위험해지는데, 이런 주장이 전문가윤리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구체적 내용은 다르지만 법률가나 의사, 기타 전문가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윤리가 ‘정직성(honesty)’, ‘고객에 대한 충실성(loyalty)’, ‘공중(또는 국민)에 대한 기여(contribution to the Public)’이다. 정신병원 평균 입원 기간이 6.4일이고, 강제입원도 대부분 2주를 넘지 않는 미국은 사법입원에서 변호사도 절차조력인으로 참여한다. 이때 강제입원에 반대할 논거와 증거를 찾아야 하는 것이 변호사의 윤리다.

강제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환자의 편에 서서 이를 설득한다. 공중에 기여할 윤리가 있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서비스 제공자에게 기대하는 전문가윤리

이런 윤리에 익숙한 필자로서는 보호의무자가 신청해서 정신병원의 장이 강제입원을 결정할 때 정신과 의사에게 다음과 같은 전문가윤리를 기대해 왔다.

“당신은 입원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정신질환이 있고, 지금 상당히 정도로 위험한 자해 또는 타해의 우려가 있습니다. 우리 법제도는 당신을 강제입원시켜 조사할 권한을 정신병원의 장에게 주었습니다. 당신은 치료가 필요하고 또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에 입원시킨 것이니 1~2주 치료받은 후 자해·타해의 위험이 줄어들면 퇴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자해·타해 위험이 줄어들지 않으면 치료 목적으로 3개월까지 강제입원시킬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당신이 치료를 동의하면 자의입원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아니면 강제입원을 시키려고 합니다.”

이런 설명이 정신건강복지법 제43조에 부합하는 전문가로서의 정직한 설명이다. 가족의 강제입원 신청으로 퇴원 후 가족관계가 악화돼 정신질환이 재발되거나 악화될지 모른다고 우려할수록 이런 정직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것은 동시에 ‘환자에 대한 충실성’이기도 하다.

환자에 대한 충실성을 실천하려면 다음과 같은 설명도 필요하다.

“정신병원의 장이 강제입원 결정을 하지만 그것이 적법한지는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가 조사해서 결정합니다. 당신이 이런 결정에 반대한다면 인신보호법에 따라 법원에 퇴원시켜달라고 신청할 수 있습니다. 국선변호사 선임도 신청하세요. 또 보건복지부에 연락해서 당신을 도와줄 지원자를 보내달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강제입원은 모두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만든 제도입니다. 내 말이 사실이니 휴대폰으로 확인해서 연락을 취하기 바랍니다.”

열악한 정신병원의 풍경. 침대가 아닌 매트리스를 깔고 누워있는 입원환자들. 정신병원의 환경을 외면한 강제입원 논의는 정신질환 치료에 대한 두려움을 키워 사회적 스티그마를 높일 뿐이다. [사진=연합뉴스]
열악한 정신병원의 풍경. 침대가 아닌 매트리스를 깔고 누워있는 입원환자들. 정신병원의 환경을 외면한 강제입원 논의는 정신질환 치료에 대한 두려움을 키워 사회적 스티그마를 높일 뿐이다. [사진=연합뉴스]

치료를 불신할 수 있는 환자를 안심시키고 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제도를 적극 활용하도록 지원함으로써 사회와 그 제도에 대한 신뢰를 확인할 기회를 주는 것이 정신질환자의 치료에도 긍정적일 수 있다.

물론 입원환자 60명을 1명의 의사가 보는 정신병원에서 의사가 직접 이런 설명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정신건강전문요원에게 그 역할을 맡겨야 할 것이다. 환자 100명당 1명의 정신건강전문요원이 있기 때문에 그들 역시 이런 일을 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면 간호사, 활동지원사에게라도 그 역할을 맡겨야 할 것이다. 그런 인력도 부족하다면 휴대폰이라도 주어 입원환자가 스스로 확인하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공중에 대한 기여라는 윤리를 실천하기 위해서라면 거부감 없는 강제입원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말이 좋아 정신병원 병상이지, 좁은 한 방에 이불 깔아 8명까지 있는 감옥 같은 병상이 실상이다. 일부 정신과 의사는 그 인원을 6명으로 제한하는 정부 정책을 대책 없는 병상 줄이기라고 비판한다.

인구 3억3000만 명의 미국 정신병상이 5만7192개(2022년 기준), 인구 6천700만 명의 영국 정신병상이 2만3140개, 인구 5천100만 명인 우리나라 정신병상은 5만1000개이다.

입원할 병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해·타해 위험이 없고 지역사회에서 외래치료를 받아도 되는 정신질환자가 평균 200일이 넘게 장기입원하기 때문에 정작 입원이 필요한 환자가 제때 입원하지 못하는 것이다.

응급입원을 하는데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이유가 퇴원해도 되지만 지역사회에 갈 곳이 없는 장기입원 환자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일반 질환자 입원실과 정신병원 입원실은 현저히 다르다. 오죽하면 코로나 발발 때 최초 사망자가 정신병원 입원 환자였겠는가?

정신병원 강제입원은 열악한 감옥 같은 환경에 기약 없는 입원이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절대 가지 않으려는 것이 이해되고도 남는다. 감옥 한 번 다녀온 보통사람들이 두 번 다시 그 기억을 떠올리기 싫어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공중에 기여해야 하는 전문가윤리를 실천하는 전문가라면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제안해야 할 것이다.

◆…영국식, 프랑스식을 절충한 우리 강제입원제도 자체는 문제가 없다

우리나라 강제입원은 제도로는 큰 문제가 없다. 영국과 프랑스의 강제입원 제도를 절충한 것으로 나름의 장점도 있다. 문제는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가 너무 없어서 퇴원하지 못하는 장기 입원환자가 너무 많고, 그 때문에 입원이 어렵다는 것이다.

입원에 대한 거부감도 문제이다. 60명의 환자에 의사 1명만 있어도 되는 병원인데다 밀집 공간에 많은 정신질환자가 입원해 있기 때문에 환자는 의사를 만날 기회가 없고, 환자는 약 먹는 것 이외에 제대로 된 정신건강 서비스는 전무하다시피하다.

인권친화적 치료를 고민하는 정신병원 의사를 찾기란 매우 힘들다. 정신건강복지센터장으로 상근하면서 현장을 누비는 선진국 정신과 의사와 비교하면 우리나라 의사가 인권친화적 치료를 고민할 존재론적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지금과 같은 열악한 정신병원 입원 환경, 전문가윤리를 실천하지 않는 의사가 다수인 환경을 개선하지 않은 상태에서 치료받지 않는 정신질환자를 어떻게 하면 쉽게, 오래 강제입원시킬 방법을 논의하는 것은 정신질환 치료에 대한 두려움을 키워 사회적 스티그마를 더욱 높일 것이다. 스티그마는 늦은 치료 개입, 늦은 입원, 강제입원에 대한 거부감만 높인다.

그래도 사적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범죄와 정신질환을 연계시키는 논의는 남는 장사다. 사람들의 무의식에 행동문제를 모두 정신질환과 연계시켜 약 복용에 의지하는 사람을 증가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샤먼과 선지자의 예에서 보듯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전문가가 두려움을 전파하면 할수록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는 역설도 작용할 것이다.

정신장애인 단체들이 지난 22일 정신장애 권리선언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를 전문가와 정책입안자 그룹은 들어야 한다. [사진=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정신장애인 단체들이 지난 22일 정신장애 권리선언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를 전문가와 정책입안자 그룹은 들어야 한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사진=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정책입안자도 지켜야 할 윤리가 있다

정책입안자도 윤리적이어야 한다. 범죄와 정신질환 사이의 인과관계는 입증되지 않았다. 범죄자의 질환을 전수조사하면 정신질환 이외의 질환 있는 사람이 월등히 많을 것이다.

설사 자연과학적 인과관계가 있다손 치더라도 사회과학적 인과관계를 인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범죄를 질환과 연계하는 순간 정작 형사정책의 문제점에 주목하기보다 정신건강 정책에 관심이 쏠려 형사정책 개선의 논의를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작금의 범죄는 전통적인 형사정책 패러다임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자, 그 실패다. ‘검수완박’ 쟁점에 너무 많은 사회적 에너지를 집중하였기 때문에 이 문제를 놓쳤을 수 있다.

◆…형사정책을 정신건강 정책으로 대체하려 할 때 국민이 피해를 입는다

일부 정신과 의사가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법원 판결로 정신질환자를 강제입원시키겠다는 논의를 지속할 때 가장 큰 피해는 국민이 입는다. 작금의 범죄는 은둔형 외톨이나 그 부류들이 저지르는 것이다.

"외톨이" 현상은 하나의 잣대로 성공을 평가하고, 성공을 칭송하는 사회문화의 부산물이다. 성공집단에 속하지 않아서 다양한 이유로 비난을 받게 되면 깊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타인과의 교류에 소극적이 된다. 부모나 교사는 대부분 이런 현상을 잘 이해할 수 없다. 그들 역시 성공을 칭송하고, 실패를 비난하는 사회문화의 영향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공동의 문제 해결보다는 각자도생이 사회 가치가 된다. 사회문제를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고 깊이 있는 원인 분석과 대책을 마련하기보다, 남들은 어떻게 되더라도 내 살길을 보장받자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사회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문제 없는 사회가 어디 있겠는가만 그래도 사회 다수는 공동체 의식을 갖고 살아갈 수 있어야 지속가능한 성장이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지금은 각자도생, 남 탓하는 것이 주류문화로 부상하는 것 같아 걱정이 태산이다. 전문가마저 거기에 물들면 고스란히 그 피해는 국민이 입는다.

선진화된 형사정책적 대응 방안을 마련해 범죄를 예방하고, 발생한 범죄에 대해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하고, 또 범죄자의 재발 방지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할 지점에 애꿎은 정신건강 정책이 대신 자리잡게 되면 안전이 위험해지는 국민이 피해를 입는다.

국민의 정신건강을 증진시켜 정신질환의 예방과 조기개입, 빠른 치료와 쉬운 입·퇴원, 거부감 없는 강제입원을 실현할 정신건강 정책은 더 멀어질 것이다. 그 때문에 발생하는 피해는 자녀를 둔 나와 같은 부모들이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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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23-08-26 13:32:01
칼럼 길게 써야해서 그런가 초점이 자꾸 이리저리 부유해서 여러번 읽었습니다
관련자 모두 보다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지적 온당하나 그런 식으로 사회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어디에나 윤리의식 있는 자 희박한자 다 있지 않겠나 싶어요. 이런 에헴하는 말씀 말고 무얼해야 실질적 변화가 생길 수 있을지 진지한 성찰과 의견 바랍니다

놀라서 2023-08-24 08:40:00
현실을 크게 잘 못 알고 계시는 것같습니다. 현행 법이 문제가 없다고 하시니 깜짝 놀랐습니다. 보호의무자입원제도가 비자의입원의 80%에요. 보호자가 책임지고 병원으로 함께 와서 동의해야 입원하고 철회하면 바로 퇴원이에요. 보호자들은 고령이 되어가고 이역할을 못하면 사고가 나서 비극적인 일이 반복되는 겁니다. 인권을 주장하시고 본인 일 하시는건 좋은데 대책없이 이렇게 하시면 의도와 달리 전체 아픈 사람과 가족이 이 비난받는 사회를 조장하시는게 됩니다.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일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