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인아메리카] WHO와 UN의 새 지침 "정신의학계는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매드인아메리카] WHO와 UN의 새 지침 "정신의학계는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 김근영 기자
  • 승인 2024.01.1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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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수십 개국의 수백 명이 참여한 수년간의 작업 끝에 '인권 중심 정신건강 법률을 위한 지침 및 실천'(이하 WHO2023)을 발표했다.

이 지침은 회원국의 정신건강법률이 준수해야 할 현행 국제 입법 체계를 상당히 상세하게 설명하고, 법률의 각 요소를 어떻게 구현하고 테스트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현재 국제법의 근간은 장애인권리협약(CRPD, 2006)이며, 호주는 이 협약의 서명국이다. 전체 목록은 124쪽 Box 9에 나와 있으며, 정신장애 분야를 담당하는 4개의 인권이사회 결의안과 3개의 특별보고관도 함께 나와 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CRPD는 정신장애를 포함한 장애를 이유로 어떠한 형태의 차별, 자유의 상실 또는 권리 침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지침의 제1장 '정신건강에 관한 법률 재고'에서는 정신건강을 정의하면서 그 전제조건을 개인의 신체적, 사회적 환경에서 찾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러한 광범위한 정의는 립서비스에 불과하다. 전 세계적으로 정신건강은 정부 보건 지출의 약 2.1%를 차지하며, 이 가운데 대부분은 기관과 신체 장애 치료에 지출된다.

진단, 약물치료, 증상완화에 주로 초점을 맞추는 생의학적 모델이 기존 정신건강 시스템 전반에 걸쳐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인은 종종 경시된다(WHO2023, 10쪽).

현행 국내법이 정신건강과 관련해 저지르는 세 가지 주요 실수는 구금과 비자의 치료에 대한 강조, 생의학 모델에 대한 과도한 의존, 정신장애인을 의사결정과정에 참여시키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들은 CRPD에서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거나 정신장애의 본질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잘못'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러한 특징들이 현대의 정신과적 관행을 어느 정도 정의하고 있으므로 국제인권계와 정신의료권력이 충돌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WHO2023은 묻는다. "왜 이 지침이 중요한가?" 여러 가지 이유를 살펴본 후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정신건강 분야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 치료 방식, 입원 서비스 및 치료에 대한 생의학적 접근 방식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으며, 사회적 요인과 지역사회 기반의 개인 중심 개입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다.

정신건강에 관한 대부분의 법률은 권리 기반 접근법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 법 앞에서나 법에 따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차별을 받는다. (...) (정신장애인은) 일상적으로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 이러한 인권 침해 및 기타 인권 침해를 예방, 감지 또는 구제할 적절한 메커니즘이 없다(다시 말해, 일반적인 현행 정신병원의 절차는 불가피하게 인권을 침해한다).

국제 인권 체제는 정신건강 서비스 제공방식에 변화를 요구한다. 모든 사람은 정신건강 시스템에서 치료를 받거나 거부할 수 있는 자유롭고 정보에 입각한 동의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법적 권한(능력)에 대한 거부, 강압적 관행, 제도화는 종식돼야 한다.

법률은 (...) 정신건강 영역에서 사회적 변화를 촉진하는 문화적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 (...) 생의학 접근방식에 대한 편협한 초점에서 벗어나 정신건강에 대한 보다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이해를 향한 (...)

다시 말해, 기존 정신의학 시스템이 모조리 잘못됐다는 것이다. 얼마나 잘못됐을까?

1장에서는 정신건강 관련 법률의 현황을 설명하고 건강 및 장애와 관련된 국제 협약을 소개한다. 이 장은 정의부터 시작한다. "정신 건강은 개인과 사회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는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사회적 안녕의 상태다." 이미 1장 1쪽에서 우리는 양측이 치열한 공방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정신장애는 뇌 기능의 유전적 장애인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가짜 생물학-심리사회 모델과 절충주의 정신의학으로 두 가지를 모두 취할 수는 없지만, WHO2023 저자들은 시도했다. 안내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생각하고, 감각하고, 표현하고,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은 인간 다양성의 일부다. '정상적'이라거나 '올바른'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지 않으면 고립과 차별을 초래할 수 있다(9쪽).

이는 '정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을 의학화하려는 정신의료권력의 끊임없는 요구, 예를 들어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진단에 대한 집요한 요구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다. 그런 다음 저자들은 정신의학 구조의 일부인 강압과 선택의 자유가 상실됐다는 현안을 다룬다. "정신건강 법률은 계속해서 강압적 관행의 근본적인 정확성을 가정하고 있으며, 이는 합법적인 형태의 '환자 관리'로 간주된다"(12쪽). 독방 감금, 구속, 족쇄는 특히 "정신보건법이 제공할 수 있는 몇 가지 보호조치를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은" 소수자 및 소외 계층과 관련해 언급된다. 15쪽은 "강압에 대한 사례"를 설명한다.

19쪽에는 법적 권한(능력), 자유와 신변의 안전, 자유롭고 정보에 입각한 동의, 독립적인 생활, 지역사회에 포용되는 문제, 사법에 대한 접근 등 "정신건강에 대한 권리 기반 접근을 위한 CRPD 조항"이 나열돼 있다. 조약에 의해 확립된 이러한 권리는 분명 정신의료권력에 의해 일상적으로 침해되고 있다. 실제로 현재의 정신과 진료는 WHO2023의 원칙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이 모든 잘못은 내가 수년 동안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온 '생의학 모델'이라는 토대 위에 놓여 있다. 이 용어는 용어집, p. xiii에 정의돼 있다. 

정신건강의 생의학적 모델은 정신건강 상태가 신경생물학적 요인에 의해 유발된다는 개념에 기초한다. 그 결과, 치료는 종종 사회적, 환경적 요인을 모두 고려하기보다는 진단, 약물치료, 증상완화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고통과 트라우마의 근본원인을 해결하지 못할 수 있다.

정신의학에서 모든 나쁜 것의 원인이 되는 중심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이 전설적인 생의학 모델에 대한 언급은 2013년 브렛 디콘의 논문(클릭하면 연결됩니다) 한 편뿐이다. 혹시나 놓친 부분이 있을까 싶어 재빨리 사본을 찾아 다시 확인해보니 내 말이 맞다. 그 논문에는 그런 모델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내용이 전혀 없다. 정신과 의사, 신경과학자, 철학자, 심리학자 중 어느 누구도 정신장애에 대한 환원주의적 모델에 해당하는 글을 쓴 적이 없다. 물론 모든 정신장애가 뇌의 생물학적 질병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참고글(클릭하면 연결됩니다)), 믿는다는 것은 증명하는 것과는 다르다. 철학자 다니엘 스톨자르의 말이 맞다면, 정신장애를 신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헛수고를 하는 것이다.

이 지침은 어두침침한 '생의학 모델' 대신 인간 중심, 권리 기반, 지역사회 기반, 책임감 있는 정신의학을 제안한다. 나머지 두 장에서는 이 광범위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신보건법이 어떻게 마련돼야 하는지, CRPD와 다른 8개 관련 조약의 준수 여부를 어떻게 검토해야 하는지를 세세하게 설명한다.

이 인상적인 보고서는 필연적으로 두 가지 결론으로 이어진다. 

*정신의학계는 과학적 근거 없이 국제적으로 승인된 거의 모든 인권 관련 법률과 조약을 일상적이고 체계적으로 위반하고 있다.

*정신의학계를 제외하면 세계는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대할 때 100년 전의 형식과 치료 기준이 괜찮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딜레마다. 세계 유수의 건강 및 인권 단체에 따르면 정신의학계는 변해야 한다. 얼마나 바뀌어야 할까? "법적 권한(능력)에 대한 부정, 강압적 관행, 제도화를 끝내야 한다"는 정도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아무도 정신과 의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언론도 특별히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정신의학계는 이빨로 물어뜯고 손톱으로 할퀴면서 변화에 저항할 것이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듯이 정신의학계의 목표는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의학화하는 것이다. 이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분명히 "반정신과"로 간주된다. 유엔 기구들은 폭넓게 협의하고 천천히 사례를 구축하면서 올바른 일을 할 것이지만, 정신의학계와 제약회사는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만한 조짐이 보이면 정부에 있는 친구들에게 '우리 다 죽는다'는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 대안단체들에게 매우 혹독한 엄벌을 내릴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전 세계 주류 정신의학계가 비정신과 의사들의 계획을 보고 집단적으로 반발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이 지침에 제시된 진료 모델로 전환하려면 정신의학계에 엄청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선 모든 국가에서 정신건강 수련 프로그램을 전면적으로 갈아 엎어야 하겠지만, 가장 큰 저항은 기관의 태도와 신념 체계에서 나올 것이다. 이러한 특징의 변화를 실행에 옮기려면 몇 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간의 기록을 고려할 때 제도권 정신의학계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학술지 편집자들을 보라. 그들은 WHO나 OHCHR의 존재조차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은 최근에 발표된 지침이 정신의학계의 수뇌부를 겨누는 총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시작부터 썩 반가운 일은 아니다. 

 

*외부 필진의 기고(번역)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진

Niall McLaren
Niall McLaren

니얼 맥라렌은 호주의 정신과 의사로, 호주의 외딴 북부에서 25년간 근무했다. 정신의학에 철학적 기초가 없다는 것을 알게 돼 정신의학의 철학적 기초를 파헤치는 데 몰두했다. 이로 인해 동료들 사이에서 그의 인기는 이제 마이너스 영역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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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김근영 (가비노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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