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에 진정했다고 정신병원에 보내려 해요. 무섭고 두려워요”
“인권위에 진정했다고 정신병원에 보내려 해요. 무섭고 두려워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09.30 2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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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한 보육시설이 드러내는 폭력의 민낯
쌍꺼풀 수술 했다고 정신병원 넣으려 시도
시설 내 일상적인 욕설과 학대로 아이들 ‘공포’
인권위 진정하자 보복성 학대 더 불거져
인권위, 첫 진정에 손 놓았다가 뒤늦게 권고 조치
인권위 징계 요청에도 원장 여전히 자리 지켜
고모 양, “요청할 곳 없어 청와대청원란에 하소연”

고모 (여·19)양은 1999년 5월 17일 밤 10시 30분께 광주시 동구 학2동의 한 아파트 입구 계단에서 보자기에 싸인 채 발견됐다.

광주영아일시보호소 등을 전전하던 고 양은 5살 되던 2004년 광주YWCA 부속시설이자 아동복지시설인 지금의 K보육시설로 들어와 14년째 지내고 있다.

보육시설은 매일 욕설과 협박이 난무하는 공간이었다.

2008년 보육원은 각종 아동학대가 드러나 원장과 담당자가 사법처리되고 지역사회에도 파장을 몰고 왔다. 그때 고 양은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이후 몇 년 간 보육시설 내 학대행위가 사라진 듯 했지만 2013년 새 원장이 부임하면서 학대 행위는 다시 시작됐다.

새 원장 A씨는 아이들에게 폭언을 일상적으로 했고 잘못하면 정신병원에 보내겠다고 협박했다. 아동이 잘못을 하면 원장실로 불러 욕설을 하거나 폭언을 하고 소지품 검사를 비롯해 외부 세계와 차단시키고 분리시켰다.

고 양의 꿈은 호텔리어와 사업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늘 작은 눈이 콤플렉스였다고 한다.

“항상 작은 눈이 콤플렉스였어요. 친구들처럼 쌍꺼풀 수술을 하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부모도 없는 고아가 돈이 어이 있겠어요. 궁리 끝에 그동안 모아놓은 3천 원으로 계란 한 판을 사 삶은 뒤 새벽시장에 팔아 7천 원 정도를 남겼어요. 시간 날 때마다 3년 정도 삶은 달걀을 팔았더니 40만 원이 모아졌고 쌍꺼풀 수술도 했어요.”

당시 그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쌍꺼풀 수술을 한 그날 고 양은 주저했다. 이대로 보육시설로 들어가면 원장이 징벌을 내릴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갈 곳이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보육시설로 들어간 그는 숙소 책상 밑에 숨어 있었다.

원장이 직원들에게 고 양을 찾게 했고 고 양은 그날 하루 종일 원장에게 혼이 났다. 원장은 고 양에 대한 징계를 논의하기 위해 연속 회의를 했고 사흘 뒤 그를 불렀다. 운영위원 10여 명이 있는 사무실에서 원장은 고 양에게 인격적으로 모욕을 주는 말들을 퍼부었고 운영위원들이 돌아가자 그녀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고 양이 그 목소리를 녹취하려 하자 휴대폰을 강제로 빼앗고 그 자리에서 소지품 검사를 당했다. 휴대폰의 비밀번호를 풀라는 협박도 받았다.

이어 원장은 직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고 양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며 정신병원에 전화를 했다.

정신병원에 보내겠다는 말은 헛소리가 아니었다. 원장은 직원들 여섯 명을 동행시켜 봉고차에 태워 정신병원으로 고 양을 데려갔다.

원장과 직원들은 병원 정신과 의사에게 고 양을 입원시킬 것을 요청했다.

의사는 쌍꺼풀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입원을 거부했다. 원장은 고 양이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입원을 재차 요구했으나 의사는 오히려 화를 냈다. 원장이 바라던 입원은 실패로 끝났다.

의사는 고 양을 따로 불러 “지금 원장이 너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하는데 입원하게 되면 최소 6개월 간 입원해야 되니 평소에 행동을 조심하라”고 조언을 해줬다.

돌아오는 길에 원장은 차 안에서 “의사는 너를 입원시켜야 한다고 했는데 내가 너를 한 번만 봐준다”고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숙소로 돌아온 고 양은 원장의 마음에 들 때까지 반성문을 수차례 썼고 시설 6개 숙소로 돌아다니면서 아동들 앞에서 큰 소리로 반성문을 읽었다.

“그날 이후 원장은 툭하면 정신병원, 보호관찰소에 보낸다고 협박했어요. 실제로 5명 정도가 정신병원에 수용되기도 했고 나처럼 보육생 중 부모가 없는 경우 더욱 심하게 대했어요.”

원장은 정신병원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에게 고통과 공포를 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한 예로 교소도에서 출소해 갈 곳이 없는 아이에게 자립해 나가지 않으면 정신병원에 보내겠다고 협박했다. 또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아이를 아빠에게 한 달 동안 보내기도 했다. 아이는 울면서 폭력을 피해 나온 원 가정에 가야 했다. 아이들은 원장이 무서워 떨었다.

고 양은 2017년 6월 정신병원 강제입원 사건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국가인권위는 현장에 나오는 대신 고 양에게 전화를 했다. 시설 내 학대에 지친 고 양은 조사를 원치 않는다고 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진정에서 손을 뗐다.

이후 고 양은 한 시민단체에 학대 사건들을 제보했고 이를 통해 국가인권위는 직권 조사에 나섰다. 2018년 1월이었다.

당시 국가인권위는 시설 아동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문제 행동을 일으키면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는 사실을 들어본 적이 있거나 실제 입원한 아동을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아이들의 78%가 “그렇다”고 답했다. 실제 인권위 조사 결과 2012년 이후 이 시설에서 생활한 아동 중 5명이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아동의 동의 없이 원 가정에 돌려보내거나 다른 시설로 옮기려 한 사실도 확인됐다.

인권위는 원장의 해임 등 중징계와 함께 아동과 시설 종사자 간 관계회복 대책 실행을 권고했다. 자치단체장에게는 관내 아동 양육시설의 관리·감독을 강화하라고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원장을 그 자리를 지켰고 학대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원장 측은 도리어 고 양을 강제 퇴소시키겠다는 협박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 조사 후에 저에 대한 보복성 학대는 더욱 노골적이라서 하루하루가 너무 무섭습니다. 저를 보호해 주어야 할 직원들은 저에게 ‘너는 어차피 을(乙)이다. 이제 그만해라’라고 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싶냐’고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고 양은 이런 사실을 광주YWCA 사회복지 법인 관계자에게 말했지만 돌아온 답은 “광주YWCA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말고 조용히 있어라”는 말뿐이었다.

“원장은 제가 나쁜 애이고 미친 X이라 정신병원에 보내라는 의사의 진단서가 있다고 하면서 국가인권위 조사가 잘못됐다고 말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광주 YWCA 회장, 사무총장 등 집행부는 국가인권위의 결정을 무시하고 언론 보도를 막고 있습니다. 오히려 원장님이 잘 하고 있다고 칭찬을 하고 있는 실정에서 저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무섭고 두렵습니다.”

지난 13일 고 양과 상담한 광주의 인권시설은 지난 13일 현 원장과 당시 복지법인 대표이사 등을 아동 학대 등의 혐의로 광주지검에 고발했다. 검찰은 광주 동부경찰서에 고발장 내용을 수사하도록 했다.

고 양은 “원장님으로 인해 한참 배우고 사랑받을 꽃 같은 동생, 언니, 친구들이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는데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저뿐만 아니라 정신병원, 보호관찰소(에) 보내진 저희들(을) 도와주세요”라고 요청했다.

고 양은 이 사건에 대해 지난달 29일 청와대국민청원 홈페이지에 글을 게시했다. <마인드포스트>는 고 양의 청원글과 해당 사건 등을 종합해 이를 기사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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