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정유정 자폐’ 보도에 정신장애 인권 침해 유감 표명...“언론 보도 가이드라인 만들 것”
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정유정 자폐’ 보도에 정신장애 인권 침해 유감 표명...“언론 보도 가이드라인 만들 것”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3.06.2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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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가족 심층 면담 없이 자폐 성향 언급은 장애당사자에 고통 안겨
편견과 낙인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확대재생산해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과외 앱으로 만난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정유정(23)을 한 방송사가 ‘자폐 성향’으로 언급한 데 대해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가 정신적 장애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학회는 정신장애 보도와 관련한 언론 보도 가이드라인을 학회 차원에서 준비하겠다고도 밝혔다.

지난 17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밀실 안의 살인자, 정유정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정유정의 범행을 자세히 다뤘다.

이 방송에 출연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그 성격의 맨 바탕에는 자폐적인 성향이 엿보인다”며 “또 다른 특징이라면 독특한 말투와 걸음걸이가 있다. 이런 것도 자폐적인 특성을 조금 고려할 수 있는 요소”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심리학과 교수는 “본인이 원하는 것도 정확하게 물어보고 있었고 둘러댈 줄도 안다. 직접 대면했을 때 사회성이 더 떨어진다면 자폐 특성이라고 보는 게 맞다”고 분석했다.

이 프로그램은 자폐성향이 범죄와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부언 설명을 첨가했으나 상당 분량이 ‘자폐’에 대한 설명이었다.

이에 대해 학회는 지난 21일 성명서를 발표했다.

학회는 “최근 몇 년간 범죄 사건에 대한 보도에 있어 피의자가 특성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언급이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다”며 “특정 정신장애 진단에 대한 의견이 방송을 통해 마치 사실인양 삽시간에 퍼져나가 자극적인 보도와 소문들을 추가 생산하는 일을 야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방송에서 전문가를 인용해 피의자 정유정이 자폐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한 사실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히 학회는 정신과 전문의가 당사자와 가족을 직접 대면해 심층적으로 면담하고 평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폐 성향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장애를 겪고 있는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고통을 주고 사회적 편견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장애유형은 총 15개 유형으로 신체적 장애와 정신적 장애로 나뉜다. 이중 정신적 장애는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정신장애로 분류된다.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를 통상 발달장애로 통칭하는데 방송 보도는 자폐성장애 유형을 범죄의 원인과 동일시했다는 비판이다.

게다가 조현병 등 정신질환과 관련된 범죄가 발생할 경우 언론이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다는 자극적이고 혐오를 재생산하는 취재에 집중한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있어 왔다.

학회는 “정신장애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에서 기인하는 편견과 낙은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과 혐오를 확대 재생산할 수 있다”며 “정신장애인들이 잘못된 편견과 낙인에 노출되지 않도록 신중하고 사실관계에 입각한 보도를 당부한다”고 전했다.

특히 학회는 정신적 장애와 관련된 언론 보도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라며 가이드라인 준비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현재 한국기자협회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보도가이드라인은 자살, 재난, 성폭력, 감염병, 아동학대, 혐오 등으로 분류돼 있는데 정신장애와 정신질환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부재하는 상황이다.

기자협회의 혐오표현 반대 준칙에도 성소수자, 이주민, 난민 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정신질환은 제외돼 있다.

그간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 부산 송국클럽하우스와 침묵의소리 등이 산발적으로 자체 제작한 정신질환 인권보도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전국적으로 통용되지는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학회의 가이드라인 준비는 정신질환과 범죄가 연결고리를 가진다는 미디어의 편견이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범죄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의 10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언론과 미디어를 통한 정신질환에 대한 공포, 불안, 혐오와 같은 이미지와 기사를 통해 정신질환이 잠재적 범죄자로 구성되고 이를 통해 정신장애 당사자들은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캐나다, 아일랜드 등 다수 국가에서는 자신들의 언론보도 준칙에 따라 정신질환 용어는 인격장애 혹은 사이코패스와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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