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정신과에서는 정신질환을 약물로만 치료하려는 ‘약물 만능주의’는 존재하지 않아요”
“노르웨이 정신과에서는 정신질환을 약물로만 치료하려는 ‘약물 만능주의’는 존재하지 않아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3.08.2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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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배준표 씨 서면 인터뷰
노르웨이 언론도 정신질환 사건 보도하지만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지 않아
노르웨이에서 정신과 진료기록을 환자 동의 없이 보도하는 건 위법
언론 역할은 보도로 발생할 대중의 착각을 수정할 의무 있어
노르웨이 총리는 재임 기간 중 정신질환 커밍아웃...오히려 국민적 지지 받아
노르웨이 정신보건 서비스는 전액 국비로 지원...비약물 치료도 선택 가능해
배준표 씨.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배준표 씨.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지난 3일, 분당구 서현역 일대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 최원종은 구속됐지만 14명의 사상자와 가족은 깊은 트라우마의 강을 건너야 했다. 어쩌면 이 사건으로 정신과 약물을 먹어야 잠들 수 있을 정도로 심신이 피폐해진 이들도 있을 것이다.

역시나 언론은 정신질환자의 ‘약물 중단’을 범죄의 제 일 원인으로 지목했고 일부 의사집단은 ‘약 잘 먹고 관리하면 치료될 수 있다’고 약물에 의한 치료만을 강조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의 대안적 치료 서비스가 없고, 있어도 정신질환자 인구집단에 비해 너무나 열악한 구조에서 오직 ‘약물’만을 강조할 경우 평생을 그렇게 증상만 지우면서 살아가라는 정치적 억압이 돼 버린다.

인간은 증상을 제거하고 지우는 것만으로 사는 게 아니다. 증상이 있어도 주어진 삶을 자기결정권에 따라 선택해 살아가고 그 모든 행위에 자신이 책임지는, 곧 평범하면서도 의미 있게 살아가는 삶이 곧 인간의 총체적 의미인 것이다.

서현역 사건 이후 경찰은 총기로 무장하고 일부 치안 거점에 장갑차까지 동원해 경계를 벌였다. 한국처럼 총기 소지가 엄격히 제한된 사회에서 경찰의 이 같은 ‘도를 넘은’ 치안 태도는 시민의 잠재적 불안을 재우는 게 아니라 무장된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심화시킨다는 것을 권력자들은 알까. 곧 모든 시민을 ‘잠재적 범죄자’이자 ‘잠재적 피해자’로 이분화해 바라보는 경찰의 시선은 그 자체로 분열적 성격을 담고 있다.

이분법의 논리는 적 아니면 동지라는 전체주의의 극단적 논리를 닮은 것으로 현재의 권력자가 시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태도다.

기자는 문득 한 사람을 떠올렸다. 노르웨이에 살고 있는 배준표(47) 씨였다. 그는 서현역 사건의 최원종처럼 어린시절부터 대인공포증을 앓았고 깊은 좌절과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청춘을 관통해 왔지만 최원종처럼 세상에 흉기를 들이밀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 모든 약점들을 소화해 더 넓은 세상의 의미를 깨닫고 자기 삶을 온전히 살아가고 있는, 정신질환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이다. 그에게 서면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일문일답.

서현역 흉기 난동 이후 강화된 경찰 경계. 지난 6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인근에 경찰특공대원과 전술 장갑차가 배치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현역 흉기 난동 이후 강화된 경찰 경계. 지난 6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인근에 경찰특공대원과 전술 장갑차가 배치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경기도 분당구 서현역에서 칼부림 사건이 발생했다. 피의자가 대인공포증과 피해망상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어떤 생각이 들던가.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로 피해자분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차량 돌진으로 사망 및 부상당한 행인, 백화점에서 부상당한 피해자들과 사건을 목격한 분들이 앞으로 시달릴 트라우마를 생각하며 가슴이 아팠다. 둘째로 피의자가 정신질환이 있었다는 보도를 읽으며 안 그래도 정신질환자 편견이 극심한 한국에서 모든 정신질환자가 잠재적 묻지마 범죄자라는 편견이 더 심화될 것이라는 걱정도 들었다.”

-선생도 어린 시절부터 대인공포증을 가졌고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피의자도 그랬다. 저 피의자와 선생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저 역시 대인공포증, 조현병 증상으로 도저히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고등학교를 중퇴했다는 사실은 비슷하다. 하지만 피의자 관련해 언론에 공개된 정보는 지극히 편향적이고 제한돼서 나와의 차이점을 비교하기가 힘들다.”

-어쩌면 저 피의자는 심리적으로 ‘분노조절장애’가 있지 않았을까 유추된다. 선생도 그런 증상이 있었나.

“없었다.”

-한국 언론은 정신질환자를 ‘괴물’로 만드는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 노르웨이 언론도 비슷한 사건이 생기면 그 같은 집단 광기에 가까운 기사들을 쏟아내는가.

“노르웨이 언론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기사를 쏟아내지만 정신질환자는 곧 잠재적 범죄자라는 분위기를 조장하지는 않는다.”

-한국 언론은 칼부림을 한 피의자가 ‘약물 치료를 중단했다’는 점을 문제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이는 ‘약물 만능주의’인데 어떤 오류를 담고 있는 것일까.

“정신질환자들은 모두 뇌 질환자들이기 때문에 약물 치료를 중단할 경우 모든 정신질환자들이 범죄를 일으킬 수 있으며, 정신질환은 약물로만 치료가 가능하다는 착각을 대중에게 심어준다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보는 정신질환에 대한 관점은 다르다. 정신질환은 당뇨병 같은 신체적 질병이 아니라 삶의 무수한 잘못된 경험들이 이상심리적 증상들로 표출된 상태라고 생각한다. 물론 정신질환도 무수한 신체적 증상을 동반하기에 신체적인 질병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다만 그 신체적인 증상들도 자세히 관찰해보면 심리적인 경험들이 만들어 놓은 신체적 증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서현역 칼부림 사건 이후 언론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면 그 범인이 ‘10년 전에 정신과를 방문한 적이 있다’라는 기사까지 내놓는다. 한 번 상담받은 것까지도 기사화되는 거다. 노르웨이 시선으로 봤을 때 이 보도 행태는 어떤 잘못을 하는 것일까.

“노르웨이의 경우 구체적인 정신과 진료기록을 환자와 동의 없이 언론에서 그대로 공개하는 보도형태는 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위법행위라고 생각한다.”

-노르웨이도 물론 정신질환과 관련된 보도에서 편견을 조장할 수도 있겠다. 이 경우 이에 대항하는 시민조직들이 많이 있는 편인가.

“시민조직도 있고 환자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전문가들도 편향된 보도에 대항하기도 한다.”

-한국 언론이 정신질환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과 노르웨이 언론이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어떤 극명한 차이가 있는 것 같나.

“한국 언론은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고, 정신질환자들의 강제 약물치료, 격리입원 치료를 조장하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편향된 보도가 대중들에게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회적 책임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한국 언론사들이 써놓은 서현역 사건 기사나 유튜브에 ‘정신병자는 사형만이 답. 정신질환자들은 다 격리시키고 사회로 못 나오게 하라!’는 몰상식한 댓글을 읽어보면 한국에서 정신질환자의 편견이 극심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언론의 역할은 사실을 전달하되 자신들의 보도로 인해 대중에게 발생하는 착각을 수정할 의무도 있다고 생각한다. 흑인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모든 흑인이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아선 안 되듯이, 언론의 편향된 보도로 발생하는 대중들의 정신질환자에 대한 착각은 언론이 반드시 바로 잡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2022년 스페인 가족 여행 중인 배준표 씨와 아내, 아이들. (c)배준표 씨 제공.
2022년 스페인 가족 여행 중인 배준표 씨와 아내, 아이들. [사진=배준표 제공]

-어쩌면 사회지도층이 잘못을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 권력자가 자기 잘못에 대해 어떤 사과도 하지 않는 태도, 가진 자들을 위한 권력 태도에 좌절한 한 가난한 청년이 세상에 복수하려는 심리가 저 안에 개입돼 있지 않을까.

“잘 모른다. 언론에 공개된 정보만으로 피의자의 심리를 이해하려다가는 또 다른 오해와 편견이 발생할 수 있기에 개인적인 판단은 자제하겠다.”

-선생도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에 세상에 대한 복수심 같은 게 있었나.

“없었다. 아주 가끔 부모나 형제들에게 분노를 표출했던 적은 있었다. 세상에 대한 복수심이라는 건 삶에 의욕이라도 있어야 생기는 거다. 나는 삶에 의욕이 아주 저하된 채로 청년 시절을 보냈다.”

-피해망상이 있는 사람들에게 선생님은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피해망상 자체는 질병이 아니라 삶의 무수한 잘못된 경험들이 만들어 놓은 혼란스러운 마음상태, 착각, 왜곡된 표현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본의 아니게 겪게 된 수많은 부정적 경험들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올바로 소화되고 정립되면 피해망상은 저절로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2021년 10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한 남성이 화살로 시민 5명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 사회적 분위기는 어땠나.

“피의자에 대한 공포와 피해자들을 향한 애도의 분위기였다. 정정하자면 오슬로가 아니라 노르웨이 콩스버그에서 덴마크인이 노르웨이 시민 5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경찰이 정신질환 유무를 조사한다고 했는데 그 피의자가 정신질환이 있었다고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나.

“그렇다. 언론에 보도됐다.”

-그 사건 이후 노르웨이 정부는 정신질환과 관련해 어떤 정책을 내놓았나.

“그 사건 이후 정부에서 특별한 정책을 내놓지는 않았다. 피의자는 감옥에 가지 않고 강제입원 치료 판정을 받았다.”

-노르웨이에서는 정치인이 사기를 치거나 부정부패에 연루되면 국가권력은 어떻게 대응하나.

“모든 범죄 사실이 투명하게 국민에게 공개되고 그에 따른 법적 처벌을 받는다.”

-노르웨이 정치인이나 유명인들 중에 자신의 정신질환을 ‘커밍아웃’한 이들도 있나.

“셸 망네 본데비크(Kjell Magne Bondevik) 전 노르웨이 총리는 재임 기간(1997~2000년) 중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4주간 병가를 내고 입원치료를 받았다고 커밍아웃했었다. 커밍아웃 후에도 그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2001년 재당선돼 2005년까지 총리로 지냈다.”

-노르웨이에서는 시민에게 ‘나는 정신장애인이다’라고 밝히면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어떤 태도를 취하나.

“노르웨이에서도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은 일부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처럼 극심하지는 않다. 정신질환자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조화를 이루며 더불어 살아가야 된다는 대중 의식이 지배적이다.”

-자신이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는 걸 주변 지인에게 알리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그렇다. 한국보다는 현저히 많다고 생각한다.”

2019년 한국 여행중 찍은 가족사진. (c)배준표 씨 제공.
2019년 한국 여행중 찍은 가족사진. [사진=배준표 제공]

-노르웨이인들은 정신질환을 감기처럼 클리닉에서 상담받고 치유받아야 한다는 개방적 의식이 한국보다 더 강할 거라 생각된다. 

“그렇다. 다만 노르웨이 정신과에서는 정신질환을 약물로 치료하려는 약물 만능주의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정신질환의 종류에 상관없이 약물치료 없는 상담, 운동, 식이, 자연, 정신요법으로 정신질환 치료에 도움을 주는 공공기관들도 많이 존재한다.”

-노르웨이는 강제입원의 경우 법원이 그 입원 여부를 판단하나. 아니면 다른 입원제도가 있나.

“범죄를 일으켰을 경우에 법원과 의사가 입원 여부를 판단한다. 범죄를 일으키지 않았더라도 자신이나 타인에게 상해를 일으킬 우려가 있을 경우 강제입원이 가능하다.”

-한국 정부는 서현역 칼부림 사건을 테러에 준한다고 보면서 도심에 장갑차까지 배치했다. 총기 소지가 엄격히 제한된 한국 시민들에게 불필요한 장갑차까지 동원하는 건 국가가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짓거리 같다. 노르웨이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나.

“테러가 아닌 일반 범죄의 경우 장갑차까지 동원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일반 범죄에 불필요한 장갑차까지 동원한다면 국민들에게 안정보다는 오히려 전쟁에 준하는 공포와 불안을 조장하지 않을까?”

-노르웨이에서 자랑할 수 있는 정신보건 정책은 어떤 게 있나.

“노르웨이의 정신보건 시스템은 전액 국비로 지원돼서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필요 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환자가 원할 경우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치료방식을 고를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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