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등 의사집단의 반대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존폐의 기로'...“우리는 사회 속에서 회복하고 싶다”
의협 등 의사집단의 반대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존폐의 기로'...“우리는 사회 속에서 회복하고 싶다”
  • 조유진 기자
  • 승인 2023.08.22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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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사회적 당사자 해방선언 권리행동, 22일 대한의사협회 앞서 빗속 집회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법사위 제2소위에 회부...의료집단의 반대가 영향 끼쳐
추가 심의를 위한 회부라지만 ‘법안의 무덤’ 속에서 폐기 가능성도 있어 우려
동료지원·절차지원제도, 자기결정권 강화 제도지만 의협이 “전문성 없다”며 반대
절차보조서비스는 병원 격리 아닌 사회 속 회복 의미...“의료기관 혁신해야”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등 단체 회원들이 22일 용산구 의협 회관 앞에서 가두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등 단체 회원들이 22일 용산구 의협 회관 앞에서 가두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등 22개 연대단체는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촌역에서 대한의사협회건물까지 행진하며 정신질환 등 심리사회적 당사자의 해방선언 권리행동 집회를 진행했다. 참여자 60여 명은 빗속에서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인권 옹호 의제들을 의협이 직·간접적으로 가로막아온 것에 대해 항의하는 구호를 외쳤다.

지난 7월 정신건강복지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2법안소위에 회부됐다. 제2법안소위는 법 체계 정비가 필요하고 추가 심의가 필요할 때 회부되는데 이로 인해 법안이 폐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의협은 전문의가 아닌 특정인이 정신질환자를 상담하는 것은 의료법에 배치된다며 동료상담의 법제화를 반대해왔다. 또 개정안의 여러 진보적 의제들이 사회적 갈등을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며 역시 반대해 개정안의 법사위 통과가 어려움에 봉착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실정이다.

집회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에 대한 의협의 ‘정치적’ 개입을 경고하고 정신장애인 인권과 회복을 위한 민주적 정신보건 시스템의 구축을 촉구하는 목적으로 진행됐다.

지난해 8월,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한국을 대상으로 강제적인 약물치료를 비롯한 모든 강제적 수단이 ‘고문’에 해당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위원회는 또 심리사회적 장애인이 자유권과 더불어 의학적 치료에 동의할 수 있는 권리 보장마저 박탈된 데 대한 우려도 표명했다.

한정연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 제12조 ‘법 앞에서의 동등한 입장’에 기반해 장애인이 완전한 법적 능력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협약에 따라 국가와 사회가 정신장애인의 법적 능력을 인정하고 이를 회복시킬 수 있도록 제12조를 위반하는 모든 관행을 폐지하라는 권고도 인용해 이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한국에서 정신장애인의 법적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의사결정 지원 역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한정연의 주장이다.

협약은 또 당사자의 의사결정 지원을 위한 법적 장치를 설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에 담긴 동료지원제도와 절차지원제도는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옹호하는 진보적 의제이지만 의료집단은 전문성이 간과됐다며 이를 반대했다.

한정연 측은 “우리 스스로는 가족에게 부담을 전가하지 않고 지역에서 독립하여 살아갈 권리가 있다”며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동료지원 등 심리사회적 특성에 맞는 정당한 편의 제공과 공공일자리 등을 국가가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또 “우리 스스로는 독특한 현실 지각과 정신적 상태로 인하여 남들과 다른 어려움과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으나 이 역시 우리의 정체성”이라며 “우리가 치료를 선택하지 않는 한 강제적인 치료와 입원은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경기도 정신질환자 절차보조사업단 이유영 절차보조인은 “처음 입원했을 당시 저의 목적은 안정적인 치료였으나 실상은 안전을 이유로 외출과 핸드폰 사용이 금지됐다”며 “내가 먹는 약에 어떤 성분이 들었는지,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왜 먹어야 하는지조차 이야기해 주는 사람 없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고 호소했다.

또한 “절차보조 서비스는 정서적 지지부터 각종 권리 절차까지 정당한 권리와 자기 의사결정 및 의사를 소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며 “이 과정에서 병원의 격리된 환경이 아닌 사회 속에서 회복하고 있다는 것을 당사자가 느낄 수 있도록 의료기관의 혁신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신석철 한정연 상임대표(오른쪽)가 의협 관계자에게 요구안을 전달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신석철 한정연 상임대표(오른쪽)가 의협 관계자에게 요구안을 전달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관악 동료지원쉼터 정유석 센터장은 “당사자가 경험하는 위기의 범위는 너무나 넓지만 강제입원으로 귀결되는 작금의 현실에서 위기 쉼터가 생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는다”며 “쉼터는 지역사회에서 불필요하게 격리되지 않고 당사자가 위기의 시간을 보내면서 바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사자의 위기는 약물로만 해결될 수 없다. 당사자의 위기와 정신적 고난은 자신의 삶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에서, 우리 사회의 심리사회적 장벽에서 오기 때문”이라며 “우리의 위기를 의사에게만 전적으로 위임하지 않겠다. 우리는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위기 지원을 비롯한 우리가 마땅히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존중받기 위해 처절하게 싸울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법무법인 이공의 정제형 변호사는 “정신장애를 치료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는 이 산업에 의해서 정신건강복지법의 개정안이 표류되고 있다”며 “더이상 강제로 입원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게 지역사회 기반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지난 2023년 2월 전면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위기쉼터, 동료지원 교육, 절차조력인, 공공후견 단 네 가지만 남게 됐다”며 “이 법안마저도 법사위에서 여러 의원들과 대한의사협회의 반대로 ‘법안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제2소위의 재료가 돼 참담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정 변호사는 “그럼에도 당사자들의 힘으로 법 개정안을 이끌어내는 기적을 이루고 싶다”며 “당사자들의 치료와 회복의 측면에서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 이 자리에서 대한의사협회 역시 문을 열어 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정연은 이날 오후 대한의사협회 측에 요구안을 전달하고 29일까지 질의에 대한 답변서를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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