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0.04%의 숫자가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킬까? (feat.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1화 리뷰)
[이관형 기자의 변론] 0.04%의 숫자가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킬까? (feat.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1화 리뷰)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4.01.15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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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넷플릭스 홈페이지 갈무리.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주인공 정다은 간호사가 버스를 타며 유튜브 채널 ‘뇌플릭스TV’를 시청한다. 정신건강 전문 채널로 보이는 ‘뇌플릭스TV’에 나오는 정신과 의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얼마 전에도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범인이 잡혔을 때, 환청 환시에 시달리는 조현병 환자였다는 사실이 뉴스에 크게 보도가 되면서 이슈가 됐었죠? 아, 안타까운 건 사람들의 인식입니다. 치료받지 않은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은 전체 범죄의 0.04%에 불과합니다. 정신질환은 관리의 병입니다. 무엇보다 병원에 빨리 오셔서 관리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2022년 경찰통계연보 갈무리

유튜브 속 의사의 설명대로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장애 범죄자의 수는 총 범죄자 숫자에 비해 매우 적다. 실제로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2022년 총 범죄자 125만330명 가운데 정신장애 범죄자 수는 9875명에 불과했다. 이는 총 범죄자의 0.8%에 불과하다. 물론 강력범죄의 경우, 그 비율은 늘어난다. 살인, 방화, 절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총 범죄자 수는 2만5017명이고, 이 가운데 정신장애 범죄자 수는 567명이다. 이는 전체 강력범죄자의 2.3%에 해당된다. 여기에 정신장애 범죄자 중 조울증,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제외한 조현병을 가진 범죄자만을 놓고 계산하면 0.04%까지 수치가 떨어진다. 사람들이 체감하는 조현병 환자에 대한 예측불가성과 공포심, 두려움은 실제 수치와 비교하면 굉장히 과장되고 부풀려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숫자와 통계로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정말 효과가 있을까? 기자는 이 부분에 회의적이다.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이 0.04%에서 10배 증가한 0.4%가 된다고 해서, 사람들의 인식이 10배 더 나빠지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0.04%에서 10배 감소하여 0.004%가 된다고 해서, 사람들의 인식이 그만큼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인식을 더 악화시킨다고 본다. 

'택시'와 '성폭행'으로 검색한 기사 목록 갈무리

만약 택시운전사의 성범죄율이 0.04%에 불과하다고 하면, 여성들이 안심하고 택시를 탈 수 있을까? 실제로 택시 운전사의 여성승객에 대한 성범죄 사건이 발생되고 나면, 언론들은 이를 반복적으로 집중 보도한다.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택시 운전사에 대한 불신과 공포심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이후에 언론이 기사 말미에 실제 택시기사의 성범죄율이 0.04%라는 수치를 덧붙여도 모든 택시 운전사들은 이미 잠재적 예비 성범죄자가 되어버린 상태다.

이 같은 흐름은 얼마든지 다른 집단, 다른 직업군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 특정 목사의 헌금 유용과 비리를 반복적으로 보도하면 모든 목사를 세속적으로 타락한 집단으로 만들 수 있다. 특정 연예인의 마약사건을 크게 보도하면 다른 연예인들도 약물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를 일반화의 오류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검색내용 갈무리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일부의 사례만을 제시하거나 대표성이 없는 불확실한 자료만을 가지고 바로 어떤 결론을 도출하는 데서 발생하는 오류를 가리킨다. 이것은 결론을 뒷받침하는 적절한 자료들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성급하게 일반화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류이다.”(두산백과)

다시 말해, 안인득 사건 같은 일부 사례만으로 조현병 환자가 모두 잠재적 범죄자라고 결론내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조현병 환자의 낮은 범죄율 ‘0.04%’라는 수치자료가 통하지 않는다. 대중들의 눈은 0.04%라는 숫자보다 사진 속 안인득의 험상궂은 얼굴과 자극적이고 공포스런 기사 제목과 썸네일만 뇌리에 깊이 박히기 때문이다.

1948년 11월 경찰 심문을 받기 위해 대기중인 제주도민들 [사진=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

극단적이지만, 역사적으로도 제주도 4.3사건을 통해서도 증명되는 이야기다. 북에서 지령을 받은 남로당이 제주도에 숨어들었다는 소문은 경찰과 군을 분개하게 만들었다. 레드 콤플렉스라는 광기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제주도 인구 중 0.04%만이 공산주의자라고 설득한다면 살육이 멈춰졌을까? 만약 0.04%만이 북에서 온 남로당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더라도, 그들 눈에는 나머지 모든 제주도 주민들도 공산주의에 협력하는 빨갱이로 보였을 것이다.

언론을 통해 사회는 조현병 환자들 중 누가 0.04%에 해당되는 범죄자인지, 아니면 누가 99.96%에 해당되는 선량한 조현병 환자인지를 가려 낼 여유가 없다. 그저 모든 조현병 환자들이 죄를 지은 범죄자이거나 죄를 지을 예비 범죄자로 보이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에 의해 이미 대한민국 사회는 조현병에 대한 심각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이다.

유튜브 ‘뇌플릭스’의 정신과 의사는 말미에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정신질환은 관리의 병입니다. 무엇보다 병원에 빨리 오셔서 관리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정신질환 치료와 관련해 약을 먹고 상담을 받으며 의학적 도움을 받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의 잘못된 인식의 문제까지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사회의 편견과 인식의 문제를 조현병을 완치하지 못한 당사자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아닐까?

언론은 조현병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앞다퉈 반복적으로 보도한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클릭수를 늘리기 위해 기사 제목과 썸네일을 자극적으로 과장한다. 기사를 심층적이고 분석적으로 쓰기보다는 동일한 보도자료를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하듯 짧고 단순하게 쓰는 언론사들이 대다수다. 간혹 뷰티풀 마인드와 같은 영화를 소개하며 정신장애인에게 주변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기사도 있다. 그래야 조현병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 0.04%이다. 모든 조현병 환자들이 위험한 것은 아니며, 이 병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흔한 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치료만 잘 받으면 충분히 정상적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많은 언론사의 기자들이 이렇게 기사를 훈훈하게 마무리 하는 것으로 언론인의 사명을 다했다고 만족할지도 모르겠다. 기자들이 자신이 쓴 기사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들의 기사가 우리 당사자들을 어떻게 비추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쓴 기사의 댓글을 보는 것이다. 그 기사가 사람들로 하여금 누군가에 대한 욕설과 비난, 분노와 혐오를 넘어 이 사회를 얼마나 분노의 광기로 물들이게 하는지 알 수 있다. 

정신장애 관련 어떤 기사의 댓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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