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정책 공약 시리즈 2. 보호의무자 제도 및 입원 제도 개선
[이관형 기자의 변론] 정책 공약 시리즈 2. 보호의무자 제도 및 입원 제도 개선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4.03.18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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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3일 여의도에 위치한 이룸 센터에서 “정신질환 및 정신장애 당사자 중심 아젠다 형성을 위한 정책제도 제안 간담회”가 열렸다. 현장에는 준비된 좌석이 모자라 일부 참가자들이 서 있어야 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과 열의 속에서 진행되었다. 이 간담회는 당사자와 가족, 종사자는 물론 정책과 관련된 정당 관계자들까지 참여하여 한 목소리를 외치는 의미 깊은 자리였다. 구체적으로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과 관련된 5가지 정책과 인권 기반 지역사회 지원체계 구축과 관련된 5가지 정책까지 총 10가지 정책을 요구했다. 그리고 각 정당의 관계자들은 10가지 정책에 대해 대체로 동의한다는 당의 입장을 밝혔다. 얼마 남지 않은 총선은 당사자와 가족들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좋은 기회다. 좀 더 많은 정치인들에게 우리들의 목소리를 내야 새롭게 구성될 국회에서 10가지 정책이 모두 시행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본 기자는 10가지 정책을 당사자로서의 경험과 시각으로 하나씩 다루어 보고자 한다.
정신건강복지 분야 10대 정책 제안 [이미지=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정신건강복지 분야 10대 정책 제안 [이미지=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말이 있습니다. “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 이 말은 자녀보다도 오래 장수하고 싶다는 욕심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부모가 죽고 나면 남은 아이를 누가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정신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들도 같은 심정입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남은 자녀들이 자립해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치매처럼 중증정신질환을 가진 당사자들에게도 국가책임제가 시행되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주장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가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중 삼중 어쩌면 그 이상의 고통과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자녀의 정신질환 증상을 곁에서 지켜봐야하고, 타인들의 따가운 시선과 편견에 위축됩니다. 부모 스스로도 자녀의 아픔에 대해 본인에게서 원인을 찾으며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죠. 또한 노년기에 이르러도 가사와 경제적 부담을 계속 짊어져야 합니다. 때로는 왜 내 자녀가 아파야 하는지 분노하거나 암울한 현실과 미래에 우울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여기에 보호의무자 제도는 아픈 가슴에 더 큰 못을 박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자녀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데 동의하는 부모들 마음이 어떨까요. 마음이 홀가분할까요. 그 심정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누가 알 수 있을까요. 자녀 입장에서는 자신을 입원시킨 부모가 밉고 원망스러울 겁니다. 그걸 알면서도 입원에 동의하는 싸인을 하는 부모는 얼마나 억장이 무너져 내릴까요.

정신건강복지 분야 10대 정책 제안 [이미지=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정신건강복지 분야 10대 정책 제안 [이미지=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이러한 우리나라의 보호의무자 제도는 먼 과거인 조선시대보다도 퇴행된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창권 교수의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책을 보면 앞으로의 제도가 변화되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부르는 명칭이 다를 뿐,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했습니다. 이 때도 장애인에 대해서는 가족부양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지금의 핵가족이 아닌 대가족으로 이루어진 사회였습니다. 가족 구성원 중 한명이 장애가 있어도 온 친척과 형제들이 돌아가며 도움을 줄 수 있어서 큰 부담이 되지 않았죠. 또한 농사 등을 통해 형성된 끈끈한 공동체 안에서는 이웃 간에도 도움을 주고받으며 장애인을 돕기도 했습니다.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농촌 일손에 보탬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차별이나 배제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농사일을 하며 당당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죠. 부모가 먼저 돌아가셔도 함께 살아갈 친천과 형제들이 많고, 스스로도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먹고사는 걱정을 덜 수 있었죠.

또한 조선시대에는 수준 높은 복지정책으로 자립이 힘든 장애인의 가족들 짐을 덜어 주었습니다. 장애인을 잘 부양하면 포상하고, 그렇지 않으면 처벌을 했죠. 선조 37년에 정희개라는 아전이 시각장애를 가진 어머니를 훌륭히 돌봐 임금으로부터 효자로 상을 받았고, 중종 35년에는 맹인 아버지를 살해한 아들에게 사형을 내리는가 하면 그 고을의 읍호까지 강등했었습니다. 또한 정종 2년에는 임금이 직접 신하들에게 명하여, 장애 등으로 스스로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돕도록 명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조선실록에는 대표적인 복지제도인 구휼(사회적 또는 국가적 차원에서 재난을 당한 사람이나 빈민에게 금품을 주어 구제함), 진휼(흉년을 당하여 가난한 백성을 도와줌.), 진제(흉년으로 굶주린 사람이 많아질 때 죽이나 곡물을 무상으로 나눔) 같은 제도가 있었습니다.

위 책에 따르면 조선시대 정신장애인들에 처우와 인식도 지금보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조현병을 가진 사람들도 능력과 조건만 허락한다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일하고 결혼해서 자식도 낳고 살 수 있었습니다. 공자의 후손으로서 조선 전기 문신이었던 ‘공서린’이라는 사람은 기묘사화 때 동료들이 죽어가는 과정에서 충격을 받아 조현병을 가졌지만, 부제학을 거쳐 대사헌에 올릴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결국 증상이 심해져 더 이상 업무를 볼 수 없어 파직당하지만, 오늘날처럼 병에 대한 편견과 인식만으로 부당하게 퇴사 당한 건 아니었죠.

이처럼 당시는 대가족과 이웃 공동체에서 장애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었고, 정신장애인도 시설이나 의료시설에 격리되어 살아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보호의무자 제도 자체가 필요 없을 정도로 정신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쁘지 않았죠. 그만큼 전통사회는 정신장애인들을 수용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인식과 인프라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보호의무자 제도 및 입원 제도의 개선은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쉽게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신장애 당사자의 권익도 보호해야 하고, 보호의무자의 부담도 덜어야 하죠. 또한 사회적인 인식개선도 필요하고, 당사자들이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법과 제도적인 기반도 필요합니다. 자신의 역할을 해나갈 때 입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으니까요. 이를 위해선 국가가 노력해야 할 과제라고 봅니다. 그 노력을 부모와 당사자들에게 떠안기며 부담을 줘서는 안됩니다. 당사자와 가족들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덜 수 있도록 국가가 고민하며 나서야 합니다. 또한 정치인들도 정신장애 관련 정책에 관심을 갖고 귀 기울어야 합니다. 앞으로도 당사자와 가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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