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왜 조현병 당사자의 아주 작은 잘못도 ‘비난’하는가
언론은 왜 조현병 당사자의 아주 작은 잘못도 ‘비난’하는가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11.18 2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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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이 개입되면 기사 가치가 생긴다고 생각해
위험성 프레임으로 조현병을 해석하는 언론들 성찰 필요
언론이 주는 학습을 통해 사회는 정신장애 격리에 합의

지난 16일, 일부 언론에서는 조현병 당사자인 딸이 어머니를 폭행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매체들은 경기도 파주경찰서 발표를 인용해 15일 저녁 7시 30분쯤 파주시 야당동의 한 아파트에서 이모(41·여) 씨가 어머니 A(69) 씨의 얼굴을 때렸다고 보도했다.

A씨는 안구가 손상돼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태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씨는 오래 전부터 조현병을 앓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언론은 왜 이토록 조현병에 관해 극단적 보도만을 즐기는 것일까. 사람이 살아가면서 일어날 수 있는 일탈적 부분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위의 사건도 마찬가지다. 딸이 어머니를 때렸다는 게 팩트다. 그런데 어머니를 때렸다는 이유로 기사화가 된다는, 현재 기자들이 갖고 있는 뉴스가치 분류가 과연 옳은 것인지 묻고 싶다.

MBC, SBS, 연합뉴스, 노컷뉴스, 경기일보, 경인일보, 스포츠경향은 이 사건을 보도했다. 제목을 보면 ‘조현병 딸이 60대 모친 때려’라는 식이다. 그리고 일부 보도 언론은 ‘(어머니) 안구 손상’이라고 적었다.

언론에서는 그렇게 얘기한다.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화된다고. 그럼 저 폭행의 부분은 일반 비정신장애인이 자신의 부모를 때리면 기사화되기 어렵지만 조현병 환자가 부모를 때리면 기사가 된다는 것과 고스란히 포개진다. 왜냐하면 폭행을 한 당사자가 ‘조현병’ 환자이기 때문이다.

기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조현병 환자는 그 어떤 행동도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언론의 먹잇감이 되기에 충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조현병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당사자들은 잠재적 범죄자로 표상되고 아주 작은 행위에 대해, 그것이 불법이라면 보도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정신장애인은 아플 자유가 없다. 부당한 부분에 대해 항의를 해도 그가 정신장애인이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도 정신질환자이기 때문에 병원에 들어가게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언론은 정신장애인들이 ‘사고’를 너무 쳤기 때문에 지난해만 해도 9천여 건의 조현병 당사자의 범죄가 있었다는 소스를 인용한다. 같은 해 일반인(비정신장애인)이 저지른 범죄가 2백만 건에 육박하는 것을 숨긴 채 말이다. 프레임을 짜놓고 거기에 범죄를 저지른 정신장애인이 걸리기만 기다리는 식이다.

형사정책연구 논문에 따르면 2016년 검거된 범죄인은 184만여 명이었다. 이중 정신감정 결과 조현병 진단을 받은 이는 82명 정도였다. 전체 범죄의 0.04%. 그렇다면 언론은 도대체 왜 정신장애인의 위험성을 그토록 사회에 전파하는 것일까.

혹 기자들 스스로도 정신장애인에 대한 부당한 두려움을 가진 건 아닐까. 사회적 메신저로서의 언론이 특정 인구집단을 범죄시화하고 두려움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그 우려가 ‘현실화’됐을 때 낚싯바늘에 걸린 고기를 릴로 끌어당기듯 정신장애인을 끌어당기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한 사람의 사회적 일탈, 그것도 가정 내에서 벌어진 한 번의 폭행사건을 갖고 그토록 사회적 위험을 강조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비정신장애인이 자신의 부모를 때리면 언론은 그 부모의 손상의 정도가 심하거나 사망했을 경우 ‘패륜아’라는 이미지를 씌어 피의자를 비난한다. 그러나 한 번 아버지를, 어머니를 주먹으로 때렸다고 해서 언론이 이를 보도하지는 않는다. 왜? 기사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현병 환자는 부모를 한 차례 때리면 보도가 된다. 아까 말한 것처럼 ‘사람이 개를 물었기’ 때문이다. 이를 특이성이라고 한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위험성 프레임은 사회가 정신장애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변하지 않는 이상 끊임없이 재생산될 것이다. 그리고 사회는 정신장애인의 격리에 대해 손쉽게 합의해 버릴 것이다. 언론은 잘못이 없는가.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일반인이 정신장애인을 두렵게 바라보는 시선은 언론매체를 통해 학습된 불안함이라고 했다.

언론은 정신장애인에 대해 끊임없이 위험하다는 신화를 만들어 낸다. 현실에 소환되는 정신장애인은 늘 위험하고 예측불가능하며 공동체에서 격리 외에는 대안이 없는 존재들로 표상된다. 정신장애인이 침을 뱉었다는 이유도 어쩌면 언론은 기사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고 보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침을 뱉는 수십만 명의 비정신장애인들의 행위는 모른 채 하면서 말이다.

언론에 바란다. 당신들이 만든 위험성 프레임은 잘못된 사유에서 출발한 것이다. 정신장애인을 폭력적으로 이미지화하는 것에 대해 당신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당신들의 보도 태도 하나로 정신장애인은 격리라는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 같은 보도태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정신장애인은 늘 당신들의 기사 먹잇감이 될 것이고 이를 학습한 사회 구성원들의 시선은 정신장애인을 ‘불가촉천민’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는 걸 명심했으면 한다.

그리고 하나 더, 당신들은 조현병을 모른다. 정신장애가 무엇인지, 정신장애인이 무엇을 욕구하는지, 당신들의 기사 하나가 정신장애인을 어떻게 공동체에서 격리하고 가둬버리는 건지 당신들은 모른다.

언론은 성찰해 주기 바란다. 정신장애 극복이라는 서사를 보도하는 것만큼 정신장애 위험 서사를 구성하는 것은 둘 다 정신장애인의 본질을 훼손하고 만다. 정신장애인도 인간이며 존엄할 권리가 있다. 그 존엄을 현실화하기 위해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의 정책적 어젠다를 만들어낼 수는 없는가. 늘 위험하다는 익숙한 사고 틀에 묶여 정신장애인의 아플 자유마저 범죄시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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