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없는 조현병 치료가 완치로 이끈다
약물 없는 조현병 치료가 완치로 이끈다
  • 마인드포스트 편집부
  • 승인 2019.01.15 13:5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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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핀란드에서 시작된 오픈 다이얼로그 (c) Daniel Mackler
핀란드에서 시작된 오픈 다이얼로그 (c) Daniel Mackler

몇 년 전부터 각종 중범죄들이 정신장애인의 사건들이라고 보도되면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관리’와 ‘격리’가 강한 여론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해당 정신장애인이 약물을 한동안 복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뉘앙스의 보도들로 뒤덮이면서, 정신장애인의 약물 복용 중단은 매우 큰일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면 정신질환에 있어서 약물 복용이 정말 필수적인 것일까? 단지 정신장애인이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산타의 마법? 오픈다이얼로그

산타 마을로 알려져 있는 핀란드의 라플란드(Lapland)는 ‘오픈 다이얼로그(Open Dialogue)’라는 접근법에 대한 놀라운 연구 결과를 제시한 바 있다. 세이쿨라(Seikkula)와 올손(Olson)은 라플란드 지역에서 발생한 초발 정신증 환자에 대해 2년간 추적조사를 했고, 통상적인 치료를 실시한 집단과 오픈 다이얼로그를 실시한 집단을 비교, 분석했다(Seikkula, Olson, 2003). 연구 결과, 오픈 다이얼로그 집단은 통상적 치료집단에 비해 입원기간, 항정신성 약물복용, 재발률 등의 측면에서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다. 구체적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비교 통상적 치료집단 오픈 다이얼로그 집단
입원 일수 117일 14일
항정신성 약물 복용 100%가 약물 복용 약 30%가 약물 복용
재발률 71%가 최소 1회 재발 경험 25%가 최소 1회 재발 경험
정신증적 증상 유무 약 50%가 경증 증상 보임 약 17%가 경증 증상 보임

오픈 다이얼로그가 북유럽에서 주목을 받자, 그 성과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 요청되기도 했다. 이전의 성과연구들이 모두 오픈 다이얼로그의 개발자들에 의해 수행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구에 따라 알토넨은 오픈 다이얼로그가 도입되기 이전인 1985-1989년과 도입된 이후인 1990-1994년의 서부 라플란드 지역 초발 정신증 환자의 모든 사례기록을 상세하게 조사했다(Aaltonen 외, 2011). 전문가 2인이 사례를 상세히 기록하며 진단을 합의하여 내리도록 했고, 편향을 방지하기 위해 앞선 진단을 블라인드 처리한 후, 정신과 의사가 랜덤으로 추출한 사례기록을 읽고 다시 진단을 내리도록 했다. 연구 결과, 모든 조현적 장애(조현병 및 조현병적 정신증)의 연간 평균 발병률이 1985-1989년에는 10만 명당 33.3명이었던 반면에, 1990-1994년에는 10만 명당 17.1명으로 현저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픈 다이얼로그의 효과성은 가히 산타의 마법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이 산타의 마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오픈다이얼로그의 마법은 『․ ․ ․』에서 온다

오픈다이얼로그를 간단히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①당사자의 가족 및 사회적 관계망을 중심으로 ②불확실성에 대한 관용의 관점에서, 위기의 순간에 ③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④대화적 개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네 요소가 오픈 다이얼로그의 마법을 이끄는 가장 핵심적인 원칙이라 볼 수 있다.

 

'당사자의 가족 및 사회적 관계망' 중심

오픈 다이얼로그의 첫 미팅에는 환자와 환자의 가족, 환자의 사회적 관계망이 주요 구성원으로 초대된다. 이들을 초대할 때에도 전문가나 가족 구성원이 아닌 위기에 처한 당사자에게 물어보고 진행한다. 주변 인물들이 오픈 다이얼로그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환자가 스스로 내리는 정의뿐 아니라, 환자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의 정의를 통해 위기 상황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환자는 자신의 행동을 문제로 바라보지 않을 수 있지만, 그의 부모는 정신질환의 징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렇게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이 문제정의체계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더 이상 그것을 문제로 정의하지 않을 때에 그 문제는 비로소 해결된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의 과정의 일부인 가족과 사회적 관계망이 필수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불확실성에 대한 관용'

불확실성에 대한 관용이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성급히 결론내리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전통적인 정신의학 관점에서는 전문가에 의해 조언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고 환자의 상태에 대한 결론이 급하게 내려지곤 하는데, 세이쿨라와 알라카레는 이러한 개입이 정신증적인 위기를 진정으로 해결하는 것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언급했다(Seikkula & Alakare, 2007). 반면, 위기를 완화시킬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방법들을 찾을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하면, 오픈 다이얼로그의 ‘불확실성에 대한 관용’ 원칙은 일반적으로 매우 빠르게 처방되는 약물 치료를 가능하면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다. 항정신성 약물을 처음 몇 주 동안은 처방하지 않는데, 세이쿨라와 알라카레는 문제와 전체 상황을 이해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한다(Seikkula & Alakare, 2007). 이 시간에는 자연스러운 회복을 위한 시간이 포함되어 있고, 어떤 경우에는 문제가 저절로 사라질 수도 있다. 만일 전문가들이 약물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약물을 사용하기 전 최소한 3회 이상의 회의를 거쳐 항정신성 약물 권고에 대한 필수적인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

오픈 다이얼로그가 약물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한 치료방법 중 하나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때로는 환자에게 약물의 작용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항정신성 약물이 환자의 심리적 자원을 동시에 감소시켜 심리적 활동에 방해요인이 될 수도 있으므로 이를 늘 염두에 둔다. 기존의 헤게모니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오픈 다이얼로그는 ‘약물 복용’이 정신질환에 있어서 매우 필수적이고 즉각적인 효과를 가져다주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사상에서 탈피하고, 다양한 의견과 정성스러운 논의를 통해 진정한 회복의 길을 숙고한다는 것이다.

'즉각적인 개입'

오픈 다이얼로그는 ‘위기’에 대한 관점을 전환시킨다. 오픈 다이얼로그는 정신증적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환자가 좀 더 이성을 되찾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즉각적으로 개입한다. 첫 대응이 24시간 이내에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러한 빠른 대응은 가능한 한 입원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기도 하다.

특이한 것은, 환자가 가장 극심한 시기에 오픈 다이얼로그의 첫 미팅을 열기 때문에 환자의 서술이 다소 이해하기 힘든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오히려 현재의 위기 상황에 대해 당사자가 보다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게 되는 하나의 기회로 바라본다. 위기의 첫 며칠 동안에는 환각과 망상에 대해 더욱 자세히 다룰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의 시기가 흐르고 나면 이를 다룰 수 있는 기회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픈 다이얼로그는 이러한 가장 극심한 상태를 ‘처음 며칠 간 창문이 열려 있는 상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불확실성에 대한 관용’의 원칙과 연결되어, ‘열려 있는 창문’을 섣불리 닫지 않기 위해 약물 치료는 유보된다.

'대화주의'

오픈 다이얼로그가 정신증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의 대화를 바라보는 관점은 독특하다. 소위 ‘정신증적 말(psychotic speech)’이라고 불리는 독백은 자신이나 타인들과 대화할 방법을 찾지 못한 당사자가 스스로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때문에 환자의 정신증적 환각이나 망상을 하나의 목소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일련의 독백들은 서로 연결되어 위기 경험을 구성하고 있으며, 종종 당사자 자신의 고통,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확신 등에 대해 독백으로 답변하며 스스로 확실성을 찾는다.

오픈 다이얼로그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대화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한다. 참여자 모두가 자신의 견해를 밝힐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전문가들의 의견은 진행 중인 대화에 방해가 되어선 안 된다. 다양한 전문가들의 견해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으나, 이 때 오픈다이얼로그는 옳고 그름을 가르기보다 모든 이들에게 발언권을 주어 듣고 교류하는 것을 도모한다. 모든 의견을 동일하게 일치시키고자 하기보다, 서로 연결되고 이해되는 과정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오픈 다이얼로그의 시사점

오픈 다이얼로그가 약물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수차례의 논의 결과 약물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를 경우 약물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약물’에는 화학적 구성물뿐만이 아니라 정신의학의 권력 등도 함께 뒤엉켜 있다. 진료실에 들어선 당사자의 서술은 짧은 시간 내에 진단 내려지고, 전문의의 즉각적인 판단에 의해 ‘약물’이 빠르게 처방된다. 오픈 다이얼로그는 이러한 포괄적인 의미의 ‘약물’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픈 다이얼로그는 많은 비율의 조현병 환자들을 완치로 이끌었다.

핀란드에서 오픈 다이얼로그를 연구하고 실천해오고 있는 주카 피이포(Jukka Piippo) 박사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오픈 다이얼로그는 반정신의학(anti-psychiatry,정신의학에 반하는 일련의 움직임)이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많은 정신의학계 관련자들은 오픈 다이얼로그가 반정신의학으로 생각하고 이를 저지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 상황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오픈 다이얼로그는 정신의학을 반대하고자 형성된 접근법이 아니다. 단지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정신장애인의 문제를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인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일 뿐이다. 이러한 노력이 반정신의학으로 읽히는 것은 안타까움을 넘어 아이러니 그 자체다.

주카 피이포 박사 (c) ResearchGate
주카 피이포 박사 (c) ResearchGate

정신장애인의 정신증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은 약물이 아니다. 그것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이고, 우리의 관심이다. 인간은 모두 사회 안에서 구성되고 사회 안에서 가치를 발견한다. 정신장애인도 예외는 아니다. 정신장애인에게 "약 먹었냐, 안 먹었냐"와 같은 이분법적인 잣대를 들이밀기 전에 그들에게 어떤 도움들이 제공되었는지부터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본 원고는 [이용표, 송승연, 배진영 (2018). 핀란드 오픈다이얼로그에 관한 탐색적 연구. 한국장애인복지학, 40(0): 291-319.]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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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석 2019-08-13 14:28:10
오픈다이얼로그는 초발자에게 주로 효과적인 것이고 지역사회인프라가 부족한 한국 현실에는 풀어야할 과제가 많네요~!
주로 조기발견 초기치료에 적용될 수 있는 개입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현실에는 가야할 길이 아직 멀어 보이나
이런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장창현 2019-08-10 20:35:43
‘오픈 다이알로그’에 대한 칼럼이군요. 당사자 중심, 관계 중심의 치료적 접근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생물의학으로 경도된 현재의 정신의학계에서 소홀히 하고 있지만 분명 필요한 지점을 짚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오픈 다이얼로그는 많은 비율의 조현병 환자들을 완치로 이끌었다.” 라는 내용과 “약물없는 조현병 치료가 완치로 이끈다”는 글의 제목은 다소 자극적이고 비약적으로 느껴집니다. 약을 잘 ‘이용’한다면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 분명 도움이 된다고 경험했기에... 100% 선도 100% 악도 이 세상엔 없다고 생각해요.

반정신의학(antipsychiatry)을 넘어 어떻게 기존의 정신의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모자란 부분을 채워갈지를 생각하는 ‘비평 정신의학(critical psychiatry)’이 필요한 때 같습니다. 이를 위해선 군형적 관점이 무엇보다 중요하겠고요.

-장원장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