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훈 “아픔을 받아들이면 감사하게 되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새롭게 보입니다”
조재훈 “아픔을 받아들이면 감사하게 되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새롭게 보입니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4.17 02: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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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훈 스텔라재단 대표 인터뷰
삶에 만족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하면 힘들어져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치부와 약점 드러내는 걸 꺼려해
정신병원은 가고 싶도록 하는 환경 안 갖춰져 있어
보여지지 않아도 우울증은 주변에 얘기해서 도움 받아야
수면을 죄악시하는 사회 구조가 문제…충분하게 자야
밥 잘 먹고 운동하고 잘 자야 정신적 문제 이겨낼 수 있어
문명 발전하면서 타인과 비교 통해 우울감 많이 느껴
우울증 방지와 행복의 추구 방향은 교집합 많아
춤출 때 가장 행복해…자신이 기뻐하는 것을 찾아야
진정성 있는 대화가 자살 예방에 큰 도움돼
호주는 심리상담가가 한국보다 64배나 많아
자신의 정신건강에 대해 솔직해져야 남을 도울 수 있어
스트레스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해야
자신의 기본욕망에 대해 알아보고 성찰해야
돈보다 많은 이들이 운동하는 사회가 선진국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대학 1년을 보내고 군에 입대를 했다. 어느 날 대대장이 자신을 불렀다. 어머니가 아프니까 병원에 다녀오라면서 2박3일 외박증을 끊어줬다. 그는 이상했다. 어머니가 아프면 잠깐 외출하고 오면 되는 건데 왜 외박증까지 해 준 것일까. 그리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는 어머니가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된다.

어머니는 명문대를 나왔고 미모도 있었고 안정적인 중산층 계층의 삶을 살고 있던 분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왜, 무슨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그는 처음에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명하다고 생각했던 삶의 질서가 무너져 버렸다. 그는 제대를 한 후 남미로 여행을 떠났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남미를 거쳐 유럽으로 존재를 이전했다.

네덜란드에서 스포츠 석사 과정이 있다는 알게 된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서 학사도 휴학한 상태였다. 들어갈 수 있을까. 지원 자격은 학사 이상, 올림픽 메달리스트, 스포츠 전문가로 3년 이상 종사한 사람이면 가능했다. 그는 자신이 한국체대생이고 군대에서 트레이너로 일한 경력을 모두 끌어 모아 지원을 했고 인터뷰를 마친 후 요한크루이프 인스티튜트 스포츠경영 석사 과정을 밟게 된다.

이후 석사를 마치고 졸업식이 끝난 그날 오후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80일이 넘는 자전거 여행이었다.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를 거쳐갈 때였다. 그 킬리만자로의 최고봉 이름이 스텔라 포인트였다. 스텔라는 어머니의 가톨릭 세례명이었다. 그는 무언가에 홀리듯 최고봉까지 올랐다. 거기서 그는 결국 눈물을 쏟았다. 어머니를 그렇게 그리워했다는 걸 거기서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네덜란드에서 공부할 무렵 그는 그곳에 파운데이션(재단)이 그렇게 많은 걸 보고 의문을 느꼈다. 심지어 난민을 위한 파운데이션까지 젊은 학생들이 만들고 있었다. 왜 이런 걸 할까. 어느 날 그곳의 외국인 친구들에게 어머니의 극단적 선택의 기억을 처음으로 고백했고 친구들과 교수님의 도움으로 스텔라재단을 만들 수 있었다. 우울감과 심리적 고통을 겪는 이들을 돌보는 비영리재단이다. 그는 현재 한국체대 학생으로 이 재단 대표를 맡고 있다.

무엇보다 우울감에는 운동과 햇볕 쬐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심리적 고통이 운동만으로 해결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는 운동과 적절한 수면을 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는 자신의 욕망에 대해 철저하게 알아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지를 깨닫고 친구와 가족, 정신과 전문의, 심리상담사 등 자신의 ‘심리적 트레이닝’을 도울 관계를 원만하게 맺어두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재훈(27) 스텔라재단 대표를 만난 건 완연한 봄 날씨의 16일 오후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조재훈 스텔라재단 대표 (c)마인드포스트
조재훈 스텔라재단 대표 (c)마인드포스트

-어머니는 고학력이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했다고 했는데 그 극단적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어머니 돌아가시고 무엇을 제 삶의 철칙으로 여기게 됐냐면 사람이 만족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였어요. 만족할 줄 모르면 자꾸 무언가를 원하게 되고 그게 만족되지 않으면 힘들어 지죠. 어머니는 고학력자에 얼굴도 예쁘고 안정된 직장이 있는 남편이 있었어요. 공부를 잘 해서 혜택을 받으신 거 같아요.

제가 공부를 잘 못했어요.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안 나오는 거예요. 어머니가 이해를 못 해요. 왜 이게 안 되냐. 저도 스트레스였죠. 대신 저는 운동을 잘 했거든요. 운동을 잘 하는 게 공부에 방해요소가 된 거예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운동해서 뭐할 거야가 돼 버린 거죠. 어머니의 경우 집을 샀을 때 빚을 진 게 있었나 봐요. 그리고 폐경기 오고 호르몬적인 문제도 있고 뭔가 원하는 대로 안 되니까 그걸 극복하시는 게 힘들었나 봐요. 항상 잘 됐던 사람들은 실패했을 때 그 대처법을 잘 모르잖아요. 거기서 많이 힘이 드셨던 거 같아요.

성공을 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치부나 약점을 공개하는 것에 어려워해요. 그래서 도움도 잘 못 구하고 군대에 있는 저에게 힘들다고 내색하지 않고 완전히 고립된 거죠. 약도 부작용이 있었던 같아요.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해도 아버지 제외하고 아무도 못 오게 했어요. 별로 위로받고 싶지 않은 거죠. 내가 왜 여기 있지? 그런 것에 대한 힘듦. 그리고 병원을 바꾸고 아버지가 픽업하러 간 그날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환자로서 병원에 가서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희망보다는 나는 가도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을 하신 거 같아요.

저도 눈이 환절기가 오면 가려워요. 병원에서 약 받아오면 되니까 가고 싶거든요. 그런데 정신병원은 환자가 가고 싶게끔 만든 환경이 아직 시스템적으로 한계가 있는 거 같아요.”

-우울증을 숨기고 살아갈 경우 어떤 위험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십자인대가 나가서 다리에 인대가 없는데 도움을 안 구하고 없는 채로 사는 거죠. 제가 이걸 안 고치면 사는 데는 지장이 없는데 운동을 할 때는 인대가 빠지는 기분이 들어요. 사람들은 제가 멀쩡히 걸어다니니까 인대가 나간 건지 모르죠. 그런데 제가 뛸 때는 느리고 공을 차도 세게 안 나가는 거예요. 왜 이러지.

MRI 찍어보니까 인대가 완파돼서 치료를 받아야 된다고 해요. 그것처럼 우울증도 보여지지는 않지만 이걸 얘기하지 않았을 때 자신의 원래 능력보다 표현도 안 되고 일도 제대로 안 되죠. 보여지지 않으니까 자기 상황을 얘기하지 않으면 사람들도 기피하게 돼요.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해요.”

-우울증을 이기는 데 스포츠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했습니다.

“몸과 정신은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한국체대를 나왔는데 한국체대에는 자살한 사람이 학교 역사상 한 명도 없어요. 그렇게 총장님이 말씀하실 때 ‘아, 그렇구나’ 정도로만 들었는데 실제 다른 대학교나 여러 조사 통계를 보니까 이거는 정말 중요한 거구나 싶더라고요. 신체적 건강을 위해 의사뿐만 아니라 심리학자들도 몸을 움직이라고 강조하잖아요.

어머니가 탁구를 좋아했어요. 탁구를 할 때 유산소 운동을 하니까 어머니의 에너지가 너무 좋았어요. 그 에너지가 좋으니까 주변 사람들도 좋고. 그래서 운동과 정신건강은 따로 분리되기 보다는 하나로서 같이 융합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불어 수면도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운동과 수면이 가장 중요합니까.

“물론 가장 중요하다고 얘기하기에는 논란의 여지도 있지만 그게 바탕이 안 되면 더 나은 걸 못하더라고요. 몸을 움직이고 잘 자고 하는 신진대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기초적인 게 막혀 있으니까 항상 뭔가 부족한 걸 느끼죠.

처음 인류가 나왔을 때도 짐승을 잡아서 같이 먹고, 짐승이 힘이 세면 도망가야 하기 때문에 항상 몸이 긴장을 해서 스트레스를 해소를 머리보다는 몸으로 움직여서 했어요. 사람들이 돈을 앉아서도 벌 수 있게 문명이 발달하니까 이 스트레스가 몸으로 풀어줘야 하는데 그게 머리로 올라온 거예요. 그래서 몸이 움직여야 생각도 건강하게 할 수 있다는 원초적인 얘기를 미국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한 말이 있어요.

수면도 잠을 안 잤을 때와 잠을 잘 잤을 때와는 너무나 다르잖아요. 저의 작은아버지가 공부를 잘했어요. 그래서 네 시간 자면서 공부하면 된다(라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학급 교훈에도 ‘지금 자면 꿈을 못 이루고 안 자면 꿈을 이룬다’라고 하면서 수면을 굉장히 사치스럽게 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강해요. 제가 체대생으로서 느꼈던 사회적 시선, 운동해서 뭐할 거야. 그게 밥 먹여 주나.

우리나라는 수면도 사치스럽게 생각하고 운동하면 무식하다고 여기는 게 정신건강의 과학적 배경을 등한시하게 만든 거죠. 우울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햇빛도 너무 중요해요.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3년 전만 해도 여자들이 피부가 까맣게 되면 촌스럽다고 했어요.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체육시간이면 여자 애들은 나가지 않았어요. 다 앉아 있고 소극적으로 몸을 잘 쓰지 않죠. 여자가 몸을 쓰면 어떻게 할 거냐라는 사회적 인식들이 강했죠. 우리나라가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는 그런 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조재훈 스텔라재단 대표 (c)마인드포스트
조재훈 스텔라재단 대표 (c)마인드포스트

-자칫 운동만 강조하면 심리적 부분을 무시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심리적인 부분과 운동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절대 하나를 강조해서는 안 되고요. 몸을 움직이는 것 중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 뛰는 건데 몸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에게 억지로 하라고 할 수는 없죠. 그런 사람들에게는 본인이 좋아하고 열정을 찾을 수 있는 거를 주변에서 권유하고 같이 해 줄 수 있으면 더 좋겠죠. 약만 강조하고 운동만 강조하고 심리상담만 강조하면 그건 안 맞는 거 같아요. 밸런스가 가장 중요해요.”

-하루에 몇 시간 주무십니까.

“저는 한 8시간.”

-하루에 운동을 몇 시간 정도 합니까.

“하루에 10분 정도. 옥상에서 철봉이랑 팔굽혀펴기 같은 가슴과 하체 큰 근육을 중심으로. 햇볕을 쬐면서 하는 게 너무 중요하더라고요.”

-어머니 이야기를 한국에서는 안 하고 해외여행을 가서 했습니다. 함께 있던 외국인들이 우울증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우울증을 바라보던 시선이 한국과 비교해 어떻게 틀리던가요.

“물론 네덜란드나 제가 있었던 나라에서도 우리처럼 이런 타부화(금기시)되는 시점이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얘기를 하면서 인식개선이 됐거든요. 유럽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항상 저한테 ‘아, 우리도 그랬었다’라고 말씀을 하시니까 우리도 그 과정을 같이 겪고 있고 외국도 이런 적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이게 시간의 문제이겠구나. 결국 우리도 그쪽 길로 갈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을 느낄 수 있었어요.”

-세계의 우울증 전문가들을 만나러 다녔습니다. 이들 전문가들은 우울증을 어떻게 바라보던가요.

“행복 전문가들을 만났어요. 조울증 강연이나 행복 강연을 들었는데 우울증 강의라고 하면 사람들이 안 오는 경향이 있어요. 대신 행복 강의라고 하면 사람들이 막 오는 거예요. 그런데 들어보면 말씀하는 내용들이 비슷해요. 우울증 방지하고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에 대한 강연은 상충되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무슨 말씀입니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우울하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강연과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요소들에 대한 강연이 굉장히 비슷한 점이 많더라고요. 예를 들면 운동, 햇빛이요. 우울증 전문가가 말한 여섯 가지 요소를 보면 숙면, 운동, 오메가3, 햇빛, 긍정적인 이야기, 사회적 활동이거든요. 행복에 대한 강연도 세 명 이상의 사람이랑 서클 활동을 같이 하고 같이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잘 자고가 주된 강조점이에요. 그러니까 비슷한 얘기들을 하는 거예요.

우울증을 사회적 현상이라고 말하죠. 원래는 없었던 질환이니까. 아프리카에서는 우울증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 못하거든요. 그런데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쉽게 타인과 비교를 하잖아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지면 우울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덜 심해질 거라고 생각 안 해요.”

-스텔라재단은 우울증 방지 인식개선을 위한 비영리단체입니다. 어떻게 만들어진 겁니까.

“네덜란드에서 공부할 때 거기에 재단(foundation)이 많아요. 젊은 친구들이 시작한 재단도 많았고. 얘들은 나랑 나이도 비슷한데 어떻게 이런 것들을 시작했지, 얘들 돈은 어디서 난 거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라는 궁금증이 들었어요). 그런데 네덜란드에는 이런 재단 설립의 기반이 많이 형성돼 있어서 자신의 미션(임무)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더라고요. 베풀어야 할 때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베푼다는 의미를 넘어서 이걸 통해 큰 만족을 느끼는 거예요. 이유를 물어보면 어떤 게 부족해서 한다, 혹은 난민들을 위해서 재단을 만든다고 해요. 그걸 용기 있게 얘기할 수 있는 사회적 철학과 주변에서 사람들이 도와주는 문화가 있으니까 하루에도 몇 개씩 재단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아, 이런 건 좋은 문화구나.

저도 우리나라에 이런 문제가 있어서 이 일을 하고 싶다고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듣던 친구가 이건 도와줄게라고 말해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석사 과정에 마스터 파이널 플랜이라고 논문을 내는 것처럼 팀 당 세 명씩 짝을 만들어서 사업을 기획해 내는 과정이 있어요. 그런데 아이템들을 발표할 때마다 교수님이 별로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쳐서 안 되겠다. 우리 여행이나 가자고 해서 팀원들이랑 갔어요. 거기서 가족 얘기도 나오고 해서 드디어 제가 어머니 얘기를 꺼냈거든요.

졸업하고 뭐할 거냐는 주제로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어머니 이름의 재단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어요. 친구들이 교수님께 말씀을 드리는 게 어때라고 얘기했어요. 그래서 이게 갑자기 학교에 전달이 됐고 교수님이 이걸 혼자 힘으로 할 수 없고 우리가 같이 힘을 합쳐야 된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학교에서 지원을 해 주고 그렇게 시작이 됐어요.”

-2015년 네덜란드 요한크루이프 인스티튜트에서 스포츠경영 석사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요한크루이프 인스티튜트는 석사 과정이고요. 제가 체대생인데 항상 저는 경영을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유럽인들이 생각하는 스포츠에 대한 인식을 너무 배우고 싶었어요. 우울증도 결국 인식이 중요해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걸 다르게 받아들이잖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걸로 만족하려면 이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에 대해 배워야겠다 생각을 해서 접근을 했죠. 그래서 스포츠경영이나 스포츠 코칭 수업 등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제 성격과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스포츠경영을 선택한 거죠.”

-거길 졸업하고 다시 한국으로 와서 한국체육대학교 스포츠레저학과 학사 과정에 다시 들어온 이유는 뭡니까.

“제가 2학년 1학기 마치고 네덜란드 가서 석사 받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죠. 한국체대가 싫었어요. 수업도 너무 재미없고. 제가 후배니까 술도 받아 마셔야 되고. 제가 마시면 선배들이 좋아하겠지만 저는 술로 만들어진 인연은 술이 깨면 다시 형성이 안 되는 걸 느끼고 있었거든요. 불만이 있었어요. 좀 더 가까워지고 싶은데 가까워지기 힘든 그런 불만. 그리고 수업의 질도 제가 생각한 만큼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네덜란드 석사 마치고 한국체대 오니까 학교가 너무 좋아 보이는 거예요. 네덜란드는 학교가 작아서 스포츠마케팅의 경우 저명한 스포츠 마케터를 같이 데리고 와서 수업을 진행해요. 그리고 시설 경영 같은 경우 올림픽 경기장으로 가는 거예요. 밖에서 배우는 거죠. 그런데 한국체대는 그 안에 모든 게 다 있는데 그걸 활용을 못하고 있었던 거죠. 올림픽 공원도 있고 올림픽 경기장도 있어요.

또 네덜란드는 1928년 올림픽을 개최하고 이후 백 년 뒤에 올림픽 개최에 도전했는데 안 됐어요. 실망을 했는데 우리나라는 성공을 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다르게 보이는 거예요.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네덜란드 대학들은 강의실과 학교가 좁다는 말입니까.

“학교가 작은데 그게 장점이죠. 오히려 학비를 건물 올리는 데 쓰는 게 아니라 밖에 이미 있는 시설과 이미 잘하고 있는 사람을 써서 활용을 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석사 과정은 집에서 돈을 지원해 준 건가요.

“네 아버지께서.”

조재훈 스텔라재단 대표 (c)마인드포스트
조재훈 스텔라재단 대표 (c)마인드포스트

-스포츠를 통해 행복의 비밀을 찾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행복의 비밀을 찾았습니까.

“행복은 꾸준히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행복은 정말 단순하면서도 어려워요. 그래서 스포츠를 통한다기보다는 내면의 성찰이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그 성찰도 성찰만 하는 게 아니라 움직이면서 해야죠.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사실 전 세계적으로 행복에 대해 연구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걸 제 삶에 적용을 시켰을 때 보편적인 만족을 느낄 수도 있고 또 저만 행복한 어떤 것이 있잖아요. 저는 춤을 출 때 정말 행복해요. 살사나 라틴 춤을 출 때 행복도가 엄청 높아져요. 그런 걸 발견하는 거죠. 자기에게 맞는 걸 찾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9월 10일이 세계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한국 최초로 ‘아유오케이(RUOK)’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호주 단체들과도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하는데 어떤 행사입니까.

“아유오케이데이(RUOKDAY) 라는 조직이고요. 호주의 비영리단체인데 처음 시작이 창립자의 아버지가 우울증으로 돌아가신 후에 만들어졌어요. 제가 재단을 만들려고 모금활동을 하면서 조사를 했어요. 어떤 식으로 재단을 운영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과학적 근거가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 세계 단체들에게 이메일을 보냈죠. 그 중에서 호주가 가장 관심을 가졌어요. 당시 호주는 정신건강 기관들 중에 비염블루, RUOK, 블랙독 인스티튜트 등이 활동하고 있었죠. 그 단체들과 미팅을 하고 호주에 가서 배워온 거죠. 그쪽에서 자료도 많이 줬어요. 그리고 제가 네덜란드에서 배운 걸 최대한 활용하는 게 좋겠더라고요. 나는 학생이고 대관을 하자니 비싸고 그래서 총장님께 말씀드렸죠. 이거 우리 학교에서 해야 됩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진행했어요.”

-진행하면 음료수를 주면서 대화하는 겁니까.

“RUOKDAY는 캠페인이에요. 그래서 그날만큼은 가족이나 친구한테 안부 인사를 전하라는 캠페인인데 거기에 네 가지 단계가 있어요. 괜찮아라고 물어보기, 편견 없이 듣기, 격려하면서 북돋아주기, 체크인이라고 해서 일주일 뒤에 다시 한 번 안부를 물어보기.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죠. 이건 게이트키퍼 운동이라고 봤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인식 개선 차원에서 피어스포터(동료지원가)나 조현병, 우울증을 앓아본 사람들끼리 서로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거죠. 건강한 사람도 그런 것에 대해 알아야 되는 교육이 필요했고 그래서 RUOKDAY를 했어요.”

-가장 가까운 이에게 ‘아유 오케이’ 혹은 지금 괜찮은지를 물어보는 것이 자살 예방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실제 그렇게 하면 어떤 효과가 있습니까.

“진심으로 물어봐줘야 돼요. 그냥 아유오케이라든가 괜찮냐, 괜찮아 이거 말고 진정성 있게요. 예를 들면 요즘 안색이 좀 달라보여서 그래. 요즘 무슨 일 있어. 나한테 얘기해 줘. 이런 식으로요. 그리고 친구가 얘기할 때도 야, 다 그래, 술 한잔하자. 이런 식으로 가볍게 쳐내면 오히려 악영향이 있어요. 판단 없이 들어주고 친구로서 가족으로서 여유 있게 받아들이는 게 중요해요. 아, 이 친구가 의사나 심리학자는 아니지만 진짜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구나.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이걸 느끼게 해야죠. 진정성 있게 들어주고 그의 곁에 내가 있다는 걸 이 사람이 느낀다면 정말 많이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목표가 한국에서 우울증을 감기처럼 쉽게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사실 제가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는 거 같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얘기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사람들이 재훈아, 너는 잘 알잖아요. 우울증, 자살예방, 행복에 대해 강연도 하고 강연도 듣고 잘 하잖아. 이런 편견들이 오히려 제가 도움을 못 구하게 부담을 주더라고요. 제가 쿠바를 갔다 와서 한국의 속도에 적응을 잘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사람을 기피하게 되고 제가 그 우울 현상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어요. 잠을 자는데도 자꾸 늘어지게 되고. 그래서 의욕도 없어지고. 약속도 했다가 마지막에 회피하게 되고. 내가 왜 이러지. 나는 나를 잘 아는데 왜 이러지. 운동하면 되잖아요. 운동을 해도 예전 같지가 않은 거예요. 감기는 약국에 가면 되잖아요. 약 한 알이면 되는데 이 우울증 증상은 분무기로 얼굴에 축축 뿌려서 젖어드는 기분이 들어요.

이런 경험을 예전에는 정말 몰랐어요. 더 힘들었으면 오늘 (만남에도)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런 초기 증상을 인지할 수 있다는 거. 저도 (우울증에) 대비하는 게 쉽지는 않겠죠. 하지만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게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저부터 얘기하지 않으면 누구한테 감기처럼 얘기하세요라고 할 수 있겠어요. 저는 자신의 정신건강에 대해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신장애인의 자살률이 비정신장애인들에 비해 최소 8배에서 20배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인 사람들이 많다는 통계니까 그건 사실이잖아요. 그런데 그 이유는 말 그대로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일 거예요. 저의 어머니도 정작 가족인 제가 못 도와줬어요. 그게 너무 가슴이 아프고 정신장애인 자살 인구 통계가 20배 넘는다는 통계보다 주변 사람들이 도움을 못 주는 상황이라는 것이 문제죠. 우리나라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자살률 1위라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그게 자기 가족에게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본인이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걸 안다면 유가족들이 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사회적 자원이 동원돼야 합니까.

“심리상담가들이 더 많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호주는 우리나라보다 땅이 큰데 인구는 3천만 명이에요. 그런데 제가 2년 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심리학자 수는 호주가 한국보다 64배 많더라고요. 인구 대비 심리상담을 해 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도움을 구하기도 쉽고 우울증 약 등 약 소비도 호주가 많아요. 우리나라는 굉장히 적죠. 저희 어머니도 심리상담 없이 바로 병원으로 갔거든요.

병원 가기 전에 피어서포터나 심리상담가들이 개입하고 그 이후에 의사가 이 게이트키퍼를 거친 사람들에게 현실성 있는 진단이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을 거 같아요. 제 친구가 병원에 갔는데 15분도 안 들어줬다 하더라고요. 상담비는 너무 비싸고. 그래서 가기에 부담스럽대요. 누구한테 도움을 구해야 하죠. 지역사회 심리상담소를 연락해 보면 바로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고 예약을 해야 돼요. 예약도 일주일 정도씩 밀려 있고.

제 생각은 심리적인 지지가 필요하고 일반 시민들이 심리상담을 부담 없이 갈 수 있도록 이런 정신적 증상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어요.”

-한국 국민은 운동이 부족하고 수면 또한 부족한 나라로 꼽힙니다.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누군가 성공 사례를 말할 때 제가 이래서 성공했습니다는 곧 제가 잠을 안 자고 악착같이 해서 성공했습니라는 이야기가 되거든요. 저는 그런 거 말고 오히려 제 성공의 비결은 제 삶이 안정되고 건강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라고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해요.

그래서 언론이 중요해요. 언론은 자극적으로 잠을 두 시간만 자고 공부를 해서 서울대 갔다고 하잖아요. 그걸 다르게 표현하면 사람들이 적절한 수면과 운동이 강조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거에 대한 인식을 정말 바꿀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는 운동을 함으로써 잘 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조재훈 스텔라재단 대표 (c)마인드포스트
조재훈 스텔라재단 대표 (c)마인드포스트

-네덜란드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아프리카로 자전거 여행을 떠났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졸업식 저녁에 바로 비행기 탔어요. 아프리카에서 80일을 보냈어요. 킬리만자로에서 시작했어요. 거기서 등산을 8일 하고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갔죠.”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에서 어머니 세례명 스텔라 포인트를 보고 울었다고 했습니다. 어떤 심정이었습니까.

“꼭대기 봉우리가 스텔라 포인트에요. 몰랐거든요. 어머니가 거기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름만 있잖아요. 그만큼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어머니는 안 계시지만 항상 같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유 하나로 아프리카의 가장 높은 봉우리 스텔라 포인트까지 올라갔어요. 사실은 거기 산 근처에서 자전거 타고 희망봉까지 갈려고 그랬었는데 그 산을 올라가고 싶더라고요. 막상 올라가 보니까 엄마가 여기 계신 건 아닌데 왜 내가 여기에 올라오고 싶었을까. 그만큼 뭔가 너무 힘들었었고 거기에 대한 위로를 어떻게든 받고 싶었던 같아요.”

-아프리카 여행을 어디로 다닌 겁니까.

“탄자니아에서 말라위, 잠비아, 보츠와나, 나미비아, 남아공 등.”

-68개국을 여행했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지금은 75개국인데. 몇 개국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아요. 예전에는 제 나름의 프로필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열심히 다녔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여행을 한 게 75개국 정도.

“제가 디제이(DJ)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여행을 더 좋아해서 군대 전역하자마자 여행을 떠났죠.”

-유럽으로 가신 거죠.

“남미에 먼저 갔다가요. 그렇게 다니니까 좋은 게 뭐냐면 어떤 나라든 그 나라 문화를 조금이라도 경험을 했던 게 소통하고 친해지기가 쉽더라고요. 그래서 많이 배우고 싶어서 다녔던 것 같아요.”

-뭘 배우고 싶었습니까.

“지금 저는 책을 들고 다니는데 이렇게 된 게 불과 몇 개월 전이에요. 저는 사실 책을 안 읽었어요. 어머니 돌아가시고 제가 책을 덮었어요. 왜냐하면 하도 사람들이 공부하라고 그러니까 이것만이 배움은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거든요. 책을 덮으니까 모든 게 배움인 거예요.

근데 여행은 움직여야 되고 사람도 만나고 하니까 잘 까먹지를 않더라고요. 엄청 자극적이죠. 세상에 그런 자극적인 배움이 어디 있겠어요. 책을 안 읽었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체험을 하니까 배움이 됐죠. 그게 여행이었어요. 그런데 여행이 끝나니까 다시 책을 보게 되더라고요.”

-선진국은 얼마나 돈이 많은 나라냐가 아니라 거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느냐로 구분된다고 했습니다.

“그게 제가 생각하는 선진국이에요. 저는 문화선진국이 결국에는 진짜 선진국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2년 전만 해도 올림픽 공원에서 푸시업(push up)을 하면 좀 창피했어요. 지금은 모르겠어요. 제가 거기서 웃통 벗고 운동하면 헬스장 가서 하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공원에서 운동하는 게 얼마나 건강해요. 자연이랑 함께 할 수 있는 건데. 그런 게 보편화되는 게 멋있는 나라, 선진국이라고 생각해요. 자연 안에서 운동하는 게 보편화되는 나라. 잔디를 밟을 수 있고.”

-스트레스 관리가 운동만으로 해결이 될까요.

“운동만으로는 안 되죠. 스트레스를 아는 게 중요해요. 내가 왜 스트레스를 받는가에 대해서 인지할 수 있어야 하고 제거를 할 수 있으면 가장 좋고요. 그걸 제거할 수 없으면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체크해야죠. 정말 힘에 부치면 나가서 운동을 하고 왔을 때 자기 기분을 체크하는 것도 중요한 거 같아요.”

-정신장애인은 약물 부작용 때문에 운동을 잘 수행하지 못합니다.

“저는 예방 차원에서 건강한 사람들이 우울증을 경험할 거 같은 시기에 운동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심해진 사람들은 전문적인 치료를 병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텔라를 운영하면서 오프라인 강연이나 이벤트를 많이 열었는데 진짜 우울한 사람들은 나올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느낀 게 뭐냐면 우리는 이 사람들 억지로 나오게 하지 말자였어요. 그건 우리가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사람들이 우울감을 느꼈을 때 우리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단체가 되자. 우울증으로 더 진입하지 않게끔 건강한 문화를 구축하는 게 우리의 활동 범위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스텔라재단 회원이 몇 명 쯤 됩니까.

“회원은 80명 정도. 같이 하는 친구는 8명이고요. 다 자원봉사자요. 그래서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요(웃음). 많이 힘들어요.”

-향후 계획은 무엇입니까.

“저는 유가족들이 아픔에서 조금 더 해방이 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렇게 느꼈고 그걸로 인해서 너무 힘든 시기를 겪었는데 나중에는 그 덕분에 얻은 게 있어요. 일단 아버지와 훨씬 더 연락을 많이 하게 되고 동생도 더 찾게 되고요. 사촌들과도 가까워지고 할머니하고 할아버지한테도 감사하게 되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조금씩 새롭게 보이는 거죠. 이런 아픔이 있었지만 이런 게 왔구나.

그런데 그 시작은 그걸 받아들였을 때예요. 제가 어머니의 죽음을 자꾸 교통사고라고 하면서 회피를 했을 때는 항상 아픔으로만 다가왔는데 그 우울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행복해지기 위한 중요한 과제예요. 그런데 대부분의 유가족들은 그걸 받아들이지 않아요. 제가 그래서 인식 개선을 위해 갈라쇼(gala show)를 하려고 해요.

정신 건강과 관련한 갈라쇼를 해서 유가족이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거기서 스피치도 하고 격려를 받을 수 있는 행사를요. 저는 제가 어머니를 잃은 안타까운 청년으로 비춰지고 싶지 않아요. 그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당당하게 감사하면서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할 거 같아요.

자기가 좋아하고 정말 즐거운 일을 할 때 몰입도 하고 즐겁잖아요. 우리 사회의 특징은 즐거운 시간이 없다는 거예요. 즐길 시간이 없다는 그런 문화를 바꾸고 싶어요.”

조재훈 스텔라재단 대표 (c)마인드포스트
조재훈 스텔라재단 대표 (c)마인드포스트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내가 다 없어져도 이것만은 내가 남겨놔야지. 이거에 내가 집중하고 있나.”

-이게 뭐죠.

“이것은 나머지가 다 없어져도 내가 놓치고 싶지 않은 거. 자신의 기본 욕망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이 너무 중요한 거 같아요. 기조욕망이라고 그러죠.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성찰, 그거를 생각이 아니라 글로 써보고 그걸 통해 자신을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중요한 거 같아요.

그 다음에는 친구들이나 가족, 의사 선생님이나 심리상담사들을 통해 심리 트레이닝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나만의 멘토, 심리적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알아두면 본인이 실패해서 힘들 때 언제든지 가서 트레이닝을 받을 길이 있잖아요. 그걸 구축하는 게 너무 중요해요. 이를테면 가지고 있는 게 없어졌을 때 그 상실감을 연습하는 거.

없었던 게 있으면 기분이 좋은데 있던 게 사라지면 상실감이 크잖아요. 그래서 그 연습을 해야 해요. 부자였던 사람은 돈이 없어지면 상실감을 입고 아내가 갑자기 없어지면 상실감이 있고 아들이 없어지면 상실감을 어떻게 하겠어요. 위기에 대해 심리적으로 준비를 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다음 친구와 가족, 심리상담을 알아두는 게 그 불안을 없앨 수 있는 요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사람들이 비교할 수 있는 환경을 없애고 사회 기초시스템이 튼튼하니까 사람들이 불만을 가질 게 없어요. 교육도 그렇고 의료 시스템도 그렇고요. 덴마크에서는 대학을 휴학해도 나라에서 월 150만 원씩 줘요. 그들은 그걸 나라가 투자하는 걸로 생각하더라고요. 우리는 학생들이 학자금 대출, 알바하면서 공부에 집중을 못하잖아요.

덴마크는 나라가 지원해 줄게, 대신 세금을 50~60%를 내라 그래요. 그걸 얘네들은 당연히 여기는 거예요. 나는 혜택을 받는다는 느낌이 드니까 나라에 감사하면서 살고 있더라고요.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고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불행할 요소들을 없애버리는 거죠. 우리나라는 왜 탈세를 하겠어요. 나라에서 받는 게 자기 생각보다 없으니까 그걸 숨기는 거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사랑할 수 있고 나라의 자존감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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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m 2019-05-15 11:08:53
좋은 내용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