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랑함은 온전함을 믿고 지금 상한 마음을 감싸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랑함은 온전함을 믿고 지금 상한 마음을 감싸주는 것입니다”
  • 박목우 작가
  • 승인 2023.11.17 2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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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작가 박목우 에세이
내 마음의 습지에 놓은 쇠스랑, 그 위로 피는 연꽃이여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도 나는 그 자리에 있을 그런 사랑
거짓을 짓지 말고 온전히 순명하는 마음으로 미래를 만들고 싶어
픽사베이.
픽사베이.

 

흐린 하늘이 보이는 창가, 상처가 그 흰 빛 속으로 스밉니다. 마음은 아파서 자꾸 붉은 아침놀에게 가자고 하고 부질없는 일이라고 걸음은 길을 재촉하지 않습니다. 흐린 빛 속에 유령처럼 어른거리는 것. 아마도 지나간 마음이겠지요.

당신이 어디에 계시든 흰 빛은 남아 아직 더 아파해야 한다고 저 빛이 붉어질 때까지 내 마음으로 적셔야 한다고 합니다. 붉은 비단처럼 당신을 감싸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희망의 전언을 옮기겠습니다. 이제 우리 다시 만날 수 없지만 당신이 내게 준 마음만은 간직하겠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내 안에서 다시 말을 시작할 때 그때 당신께로 가겠습니다.

아픔은 제 몫으로 하겠습니다. 당신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잔잔히 다가온 행복으로 매일이 따듯하기를.

픽사베이.
픽사베이.

 

근원적인 따뜻함을 품은 눈길이 한참을 깊이 누군가를 바라볼 때, 그 눈길은 경쟁하기보다는 도움을 주고,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해도 그것을 배척하지 않고 늘 또다른 아름다움을 찾아 끊임없이 이야기해 주는 따뜻함일 것입니다. 높은 가지까지 꽃눈을 틔우듯 타자를 상승하게 하는 선의 밝은 빛을 찾아보고 그 가능성을 함께 피워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하며 세상의 복잡함을 이해하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이르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시작을 말할 수 있는 용기이고 싶습니다. 봄꽃이 번지는 산마루처럼 갇힌 세상의 울타리를 고요하게 넘어서면서 바깥에서 머물 수 있도록 내면을 이루고 싶습니다. 조용한 열정과 용기는 단번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느리게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안으로부터의 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평화를 전할 수 있는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내 마음의 습지에는 쇠스랑이 잠겨 있습니다. 진흙과 풀포기들이 바람에 한 번씩 흔들릴 때마다 마음을 찢습니다. 수없이 마음이 찢겨 지더라도 나는 이 사랑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쇠스랑 위로 연꽃이 핍니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움을 줄 수 있는 사람. 그것이 아름다움이 아니라 부족한 나의 최선이라 하더라도 상처 받지 않겠습니다.

나의 노동은 사랑. 댓가도 없고 무엇을 살 수도 없지만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을 비추기 위해 그 가느다란 빛이 되기 위해 인내하고 화해할 것입니다. 언젠가는 나도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조금씩 누구에게나 따뜻한 말을 건네는 사람이 되어 깊은 상흔에 머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둠을 감싸 매어 주고 싶습니다. 이제 홀로 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가졌습니다. 비록 그가 떠나더라도 나는 그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이별을 한없는 눈물로 채우며 그의 행복을 빌겠습니다. 가슴이 아파오겠지만 나는 기나긴 시간 앞에서 약속했습니다. 그런 사랑을. 삶의 끝까지 가는 사랑을, 죽어서야 이루어질 사랑을.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겠습니다. 사랑 앞에서 단호히 나는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집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한 죽음이 있어 세계가 넓게 패입니다. 낙과처럼 물러집니다. 닿을 수 없는 세계가 많아집니다. 가고 있습니다. 그 무른 세계로.

수확하는 손은 상한 것들을 빠르게 지워내고 과수원에는 흔들리지 않던 드문 과실들이 남습니다. 비가 너무 내립니다. 등을 치는 세찬 비에 길가의 피츄니아도 고개를 꺾습니다. 충만하던 꽃빛이 시듭니다. 사람이 사랑함은 온전함을 믿고 지금 상한 마음을 감싸주는 것입니다. 그의 주변에 대해 느린 목소리로 이야기해 주며 편안히 세계로 스밀 수 있도록 함입니다.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삶이 상해도 멈추지 못하는 헤맴은 빛입니다. 헤매는 것들은 소유하려 하지 않습니다. 숨쉬는 동안만은 자기 안의 빛이 환하게 비어 있는 몸에 불을 켜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영혼이 눈을 뜨고 자신의 불행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는 보이지 않고 타인에게만 보이는 빛. 그 맹목 때문에 한 죽음이 있었습니다. 아름답다고 더 말해주기도 전에 숨을 놓은 슬픔에, 젖지 않는 가로등이 웁니다. 마지막으로 안아보아서 애틋했던 심장, 그 고동소리. 표정조차 지운 얼굴에는 상흔의 얼개가 잠겨 있습니다.

아마 나무들도 그러할 것입니다. 열매가 떨어져 내린 빈 곳으로 빗물은 흘러 나이테 속으로 스미겠지요. 나무의 가슴을 저리게 할 것입니다. 움츠리게 할 것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생사의 인연에 매해 주름이 집니다. 그 늙은 나무가 다시 열매를 매달며 서 있다는 것은 아직 이 미만한 침묵 속에 빛을 입고 태어나는 것이 있어서입니다. 삶이 흔들릴 때 기억을 지키도록 소리 없이, 형태조차 없이, 부풀어 오르는 온기, 그리고 빛으로 인함입니다. 한 생명 속의 기억이 어린 추억을 감싸 안아야 하는 눈물 어린 갸륵함 때문입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영혼의 반쪽을 찾은 두 사람, 축복합니다. 바라기는, 서로가 서로를 존재하게 하여, 두 사람의 사이가 깊은 강물처럼 흐르기를. 그렇게 함께 시간의 흐름에 함께 하며 낮고 잔잔히 존재를 새겨넣을 수 있는 사랑을 하기를. 깊어지고 깊어져 저 푸른 바다조차 부끄러운 마음이 되기를. 하루하루 일궈갈 사랑이 부디 많은 사람의 빛이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 세상에 유일한 사랑이 되어 저 강물을 이끌고 함께 나아가기를. 두 사람의 가슴 속 소박한 진실이 아름다움을 입고 햇살처럼 빛나기를

픽사베이.
픽사베이.

 

행복을 빌어주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저 나의 마음을 조금 내려놓으면 될 뿐. 상실한 채 남겨진 시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뼈아플 뿐입니다.

내가 썼던 다짐들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나는 비밀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조용히 드러나지 않게 사랑했던 기억들을 세상 속에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영혼이라는 것을 처음 가지게 될지도요. 그리고 영혼을 찾는 일에 대해 동행이 될 사람들을 만날지 모릅니다.

거짓을 짓지 말고, 온전히 순명하는 마음으로, 나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그 미래에 당신이 있었더라면 나는 외롭지 않았을 텐데요. 하지만 당신이 남긴 과제들을 나는 실현해 나가야 합니다. 그게 사랑을 살지 못한 나의 속죄가 되어줄 것입니다.

자꾸만 생겨나는 욕망들, 희망의 이름으로 때로 나를 덮치는 미련들… 날이 다 가기 전에 이 모든 것을 놓아주고 사랑만을 남겨야 합니다.

하루는 너무 짧고, 그 안에서 내가 이룰 수 있는 아름다움도 지극히 적습니다. 그러나 저녁 끼니를 해결할 수 있게 된 노숙인처럼 감사해야 합니다. 가난하게라도 나를 믿어줄 수 있는 날들을 이어갔으면 합니다. 아주 적게 맺히는 누군가의 믿음도 늘 고마워하고 가느다란 털실이 한 벌의 옷을 완성하는 것처럼 관계를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연결된 존재들이라는 것, 그 따스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죽는 날까지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그를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깊은 우울을 가져오겠지만 사랑의 미래를 나는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불가능을 살아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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