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연의 리뷰]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
[송승연의 리뷰]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
  • 송승연
  • 승인 2024.03.2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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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토록 찬란한: 빛과 그림자와 빛깔, 동료상담이 남긴 어떤 욕망에 대하여》(박목우 소설집, 공간잇기, 2023) 리뷰
박목우, '이토록 찬란한', 옥탑방프로덕션, 2024.
박목우, '이토록 찬란한', 옥탑방프로덕션, 2024.

책 《돌봄이 돌보는 세계》, 《질병과 함께 춤을》, 《아픈 몸, 무대에 서다》,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등에 공저로 참여하며 활발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 박목우 작가가 첫 단독 소설집을 발표했다. 박목우 작가는 조현 당사자로 26년째 살아오고 있으며, 동료지원가로 활동한 바 있다.

동료지원가(Peer Support Worker)는 국제적으로 정신건강 영역에서 빠르게 확장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당사자 주도의 대안 서비스로, 일반적으로 정신적 고난, 회복, 서비스이용 등에 대한 ‘살아있는 경험’을 활용하여 지원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최근 국내에서도 당사자단체(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를 중심으로 동료지원은 대표적인 지역사회 기반의 사람중심서비스로 부각되고 있다.

책 《이토록 찬란한》은 박목우 작가가 약 3년간 동료지원가로 일하면서 직접적으로 경험한 것을 기반으로 탄생한 소설집이다. 인간적이며 따뜻한 시선으로 자신의 삶, 우리의 삶, 당사자의 삶을 바라보며, 그 삶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간다. 그 경험들 속에서 탄생한 이야기는 때로는 뭉클하기도, 따스함을 주기도 한다.

‘관계’로서의 깊은 충돌

소설 속 인물들은 주로 동료지원가이거나 동료지원서비스를 이용하는 당사자이다. 이들은 모두 다양한 시기에서, (유사하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정신적 고난에 대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동료지원’의 핵심은 무엇일까? ‘신뢰, 다양성, 평등, 연대, 공감, 공동의식, 자기결정, 상호이익, 희망’ 등의 다양한 요인들은 동료지원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이지만, 어쩌면 핵심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관계’일 수 있다.

"우리는 만나서 이만큼 서로의 자리를 옮겨 보았다. 느리게 유동하는 세계의 리듬이 마음속으로 천천히 흘러든다. 우리가 변화하는 존재라는 것이 좋다. 누군가의 진실은 우리의 위치를 바꾸어 놓기도 한다는 것도. 나는 그 진실을 얼핏 본 듯하다. 이렇게 낯선 이들과 함께 말이다." (14.p)

저자는 말한다. 동료지원에서의 관계는 ‘서로의 자리’를 ‘서로의 위치’를 바꿔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이는 단순히 피상적 관계가 아닌 ‘입장의 변화, 입장의 공감’으로서의 관계를 추구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각자가 살아오면서 지닌 경험들은 다양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관계라는 과정 속에서 ‘갈등, 차이, 껄끄러움’ 등이 발생할 수도 있고, 우리는 이를 피해가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책 《이토록 찬란한》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동료지원은 이 과정에서 ‘충돌’을 회피하지 않음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충돌에 다가감을 말이다. 더 나아가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서로 다른 경험을 공유함으로 인한 충돌의 과정 안에서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너는 약물을 먹어서 표정이 생기고 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늘 그것을 기억하고자 한다. 의사에게는 한없이 증상이 악화되어 가는 환자에 불과했던 네가 동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의 지혜를 만나게 되면서 원인을 알게 되고 치유되었던 것처럼 증상은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상처가 일으키는 화학반응에 불과할지 모른다. 너는 생각한다. 그 진실을 찾아 함께 고쳐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그 진실의 이야기들을 발견해 가는 우리의 진심이 길을 잘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지식이 보다 연구되고 탐구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것은 동료상담을 통해 우리가 얻은 공동의 지혜였다. 증상을 편견으로 대하지 않고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경청하고 답을 모색했던 당사자들의 힘이었다." (22~23.p)

충돌을 통해 만들어진 ‘공동의 지혜’는 의료모델 기반의 주류적 담론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가령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정신적 고난의 현상에 대해 새로운 이해들이 생겨난다. 이는 어쩌면 동료지원이 ‘관계’라는 측면에서 가질 수 있는 중요한 힘일 수 있다. 공동의 지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활용된 각자의 고유한 경험은 ‘경험적 지식’(experiential knowledge, 개인적인 산 경험에서 산출된 사고, 감정, 통찰력 등) 개념과 연결될 수 있다. 동료지원가는 자신의 경험적 지식을 바탕으로 당사자의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경청하고, 상호작용하며, 이러한 진정성으로 인해 때로는 그 어떤 ‘관계’보다 더 큰 공감과 연결성을 느낄 수 있다.

관계로서의 깊은 충돌은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가령 소위 ‘환청’으로 지칭되는 현상에 대해 서로가 가지고 있는 인식은 다를 수 있다. 동료지원 과정에서 이 인식들은 충돌하지만, 서로 조금씩 인정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그리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환청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새로운 이해’로 나아간다.

"마른 체구에도 넌 충분히 강해 보였어. 함께 온 미경은 말이 별로 없었지. 짧은 커트 머리에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맺힌 물방울들을 자꾸 쓸어내리고 있었어. (중략) 미경이 말했어. 인생에서 친구는 단 하나로도 족하다고 말이야. 너무 많이 사람들을 사귀려 하지 말고 진심을 읽어주는 사람을 만나라고. (중략)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환청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미경의 환청은 겨울날 머그잔에 거품이 조금 일어난 상태로 채워진 달콤한 핫초코처럼 따듯하고 감미롭다고 했어. 환청이 아니라면 지금의 자신은 아마 더 불행했을 거라고 말야." (25.p)

환청? 환시? 사실 어떤 특정 용어로 이를 정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 있다. 더욱이 의료적 용어로 개념이 한정되는 순간, 우리는 그 현상을 단순히 병리적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이는 더 나아가면 특정 현상을 의미 없는 것으로, 그저 제거해야 하는 존재로 축소하거나 무시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어느 하나의 입장이 정답이라고 명확하게 규정할 수는 없지만, 이 과정에서 (권력의 불균형으로 인해) 당사자가 지니고 있는 입장은 소실될 수 있다. 소설 속 등장하는 ‘뮤이’라는 존재에 대해 2가지 입장은 충돌한다. 여기서도 어떤 한 하나만이 정답이라고 결론지어지지는 않는다. 서로의 관계 충돌로 인해 새로운 이해가 만들어진다. 서로는 서로의 영향으로 서서히 바뀌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에서 어떤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소설 속 당사자는 “내 안의 깊은 비밀을 공감할 수 있는 것을 통해 해방된 느낌”이 들었음을, 그리고 “경계 안에서만 맴돌던 발자국이 경계 밖으로 나가면서 오히려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 너는 뮤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 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어서요.

- 뮤이는 내 마음이고 사랑이고 내게 소중한 것의 전부야.

그러자 미경이 조심스레 나선다.

- 저는 뮤이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언니의 수호천사?

나와 같이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돼. 나와 같이 느끼지 못해도 곁에서 진심으로 염려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큰 힘이 되고 말야. 내가 현실에 패배해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지금 너와 미경이 내게 있는 거였어. 혼자서 공상하고 혼자서 노래를 듣고 혼자서 뮤이를 만나던 느른한 시간이 차츰 사라지고 있는 중이었지. 내 안의 깊은 비밀조차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되면서 나는 어쩐지 해방된 느낌이 들어. 어떤 경계의 안에서만 맴을 돌던 어지럽던 발자국이 경계 밖으로 나가면서 오히려 나아갈 길을 찾은 듯해. 나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어. 뼛속까지 지금의 이 공기가 머물러 주기를. 이제 나는 조금 다르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어. (29.p)

철학자 한병철은 오늘날의 사회를 ‘피로사회’로 규정하며, 자유와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자기착취’로 형성된 사회적 우울 속에 빠져들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문득 이 책을 읽으며, 동료지원이 추구하는 관계로서의 깊은 충돌이 ‘자기착취’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충돌과 같은 일종의 ‘부정’ 속에서 서서히 시작되는 작지만 새로운 이야기들. 그것이 동료지원이 지닌 독특하지만 강렬한 힘이 아닐까. 《이토록 찬란한》은 “타자의 그림자가 깃들기 시작”할 때 “자신의 슬픔을 알아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충돌, 거기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지현은 울상이 되어 지하철에 서 있다. 손에는 편의점에서 파는 작은 쇼핑백에 천혜향을 들고서 경혜를 기다리고 있다. 경혜는 그 얼굴이 왜인지 안심이 된다. 지금까지의 지현은 자신이 왜 방황하는지도 모른 채, 시간을 탕진하며 겨우겨우 죽음에의 충동을 견디고 있었다. 그런데 울상을 짓고 있다니. 자신의 슬픔을 알아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어느 자리에 서 있는지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로소 타자의 그림자가 지현에게 깃들기 시작했다는 것." (46.p)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말의 부정도 허용치 않는 완벽성에 대한 집착은 강해지고 있고, 신체적 건강과 더불어 정신‘건강’에 대한 관리는 강화되고 있다.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 하더라도,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토록 찬란한》은 많은 고민을 던져주었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삶이란 직선의 구조가 아니라고. 물러터진 과일처럼 곳곳에 상처들이 포진해 있는 것이 바로 삶이라고 말이다.

"그날 밤, 상희에게 전화를 걸어 펑펑 운다. 그냥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숨을 참으며, 겨우 말을 뱉는다. 상희는 아무 말 없이 내 울음을 받아준다. 삶이란 건축기사가 긋는 직선의 구조와는 다르다. 물러터진 과일처럼 곳곳에 상처들이 포진해 있는 것. 그것이 삶이다." (11.p)

철학자 미하일 바흐친은 다음이 같이 이야기했다. “삶은 본질적으로 대화다. 산다는 것은 대화에 참여한다는 걸 의미한다. 묻고 귀를 기울이고 대답하고 동의하는 것이 삶의 본성이다. 하나의 목소리는 아무것도 종결시키지 않으며,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최소한 두 개의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대화’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늘 ‘독백’ 속에 갇혀 있을 수 있다. 특히 정신장애인의 목소리는 외면당하기 쉬운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더욱이 대화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저자는 그렇기에 ‘공간’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공간으로서 동료지원가들이 모일 수 있는 당사자단체의 중요성.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 판단 받지 않으면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 공간에서부터 새로운 창문을 만들어 나가는 변화는 조금씩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이다.

"대화가 증발된 가족. 아버지만의 호령만이 의미를 갖던 집. (중략) 친구들 이야기도, 선생님 이야기도, 할 수 없던 숨 막히던 집. 학교에서 점점 외톨이가 되었지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몰라 막막히 고립되어 가던 학창 시절. (중략) 어쩌면 정순이 끊임없이 말을 하는 것은 의미를 찾고 싶은, 확정하고 싶은, 마음의 열망 때문이지 않을까. 세상을 알지 못하기에 세상을 알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돌려받고 싶은 마음. 하지만 에코의 간절한 목소리에 나르시스트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정순은 파도손이라는 공간이 좋았고 그 이유는 되돌려 받는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신의 삶만을 추구한 채 이웃을 돌보지 않는 세상에서 자신의 목소리에 응답해 주는 이곳이 정순은 좋다." (20.p)

"가족들의 의사 결정에서도 지현은 제외된 존재였고, 그 모든 학대를 참고 견디며 보여 준 지현의 진심에도 가족들은 혐오로 답했다. (중략) 지현에게 미안해지고, 경혜에게 고마웠다. 지현의 마음을 잘 보살펴 주어서 이만큼 아픈 이야기도 꺼내놓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말들을 경청하고 다정히 어루만질 때 사람의 마음은 열리기도 하는가. 지금껏 동료상담에 이론적으로만 접근했던 자신의 메마름이 보였다. 어쩌면 마음이란 정확히 한 발자국만 더 그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일일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44.p)

사실 직접 경험을 하지 않은 비당사자 입장에서, 당사자의 삶은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고난이 있을 수 있다. 동료지원은 그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비롯된 정신적 고난 또한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해’라는 단순한 언어에 담겨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복잡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로 나아가기도 하며, 그 경험 자체가 이미 살아있는 저항과 긍지의 원천이 될 수도 있음을 제시한다.

"문호는 경혜의 울음 섞인 전화를 받는다. 지현의 작은 몸에 촘촘히 그어진 핏빛 직선들과 종아리의 푸른 멍을 보았냐는 것이다. 가족들에게 영혼이 상할 때마다 그 아픔이 너무 커서 더 큰 아픔으로 잠재울 수밖에 없어 지현이 자해를 한다는 것이다. 날카로운 칼로 팔을 베고 혁대로 종아리를 친다는 것이다. 그래야 겨우 분노가 가라앉고 찢어질 듯 아팠던 가슴이 진정된다고 한다." (44.p)

"살아서 지옥을 경험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너는 아느냐.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괴로움으로 신을 원망해 본 적 있느냐. 대학교도 들어가기 전 발병해서 30여 년을 증상에 시달리며 삼킨 신음들이 나의 인생 전부이다. 나는 애인도 없고 돈도 못 벌지만 나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며 삶 역시 지켜가고 있다. 이 모든 고통 너머에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 불현 듯 내게 미소 짓는 세상이 있다. 그 세상 안에서 나는 모든 이의 환대를 받는다. (중략) 우리를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승민의 세계가 세계 그대로 온전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 자신의 세계도 부서진 채로 완성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 부서짐을 복원하지 않고 그 부서짐을 노래하는 것. (중략) 비로소 승민의 세계가 승민의 세계로 온전해지는 날. 승민의 세계가 우리를 설득할 날이 올 것이다. 우리에게 질문을 남길 것이다. 질문 뿐 아니라 그의 아픈 몸 자체가 이미 살아 있는 저항과 긍지의 원천이다." (38~39.p)

동료지원이 지니고 있는 힘. 어쩌면 그것은 객관적으로 정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 다만 그것을 우리가 제도화하려 할 때, 오히려 동료지원이 지니고 있는 중요한 힘은 사라질 수도 있다. 그 힘은 무엇일까. 다소 빤할 수 있지만, 그것은 바로 ‘사랑’일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너무나 흔한 질문일 수 있지만,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이토록 찬란한》은 다시 한 번 알려주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가슴으로 따스하게 퍼져나가는 그 감정은 보이지 않는 투쟁을 펼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다.

"동료상담을 받던 네가 동료상담가가 되어 동료 당사자들을 만나가려 한다. 네가 받았던 위로와 희망을 전해주고 싶어서이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 진실은 아주 어렵지만 밝혀진다는 것. 우리가 희망과 의지를 잃지 않는다면 말이다. (중략) 은영 언니는 세상이 무서워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은영 언니가 물파스가 필요하다고 할 때, 라면이 떨어졌다고 할 때, 소화가 안 되니 활명수가 필요하다고 할 때, 너는 지체 없이 그 자리를 뜬다. 너의 그 발걸음이 전해줄 용기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백 년 전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빵으로 산다고 할 수도, 장미로 산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의 대답은 톨스토이의 그것과 같았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 (22.p)

멀리 있고 거창한 것이 아닌. 답은 ‘일상’에 있다.

우리는 늘 답을 찾아 헤맨다.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보이지 않는 그 답을 찾아 돌아다닌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주변과 일상을 둘러싸고 있는 중요한 의미와 가치들을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다. 저자는 답은 멀리 있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바로 ‘일상 속에 있는 작은 것들’이라고 말이다.

"우리를 일깨우는 건 벼락처럼 떨어지는 계시가 아니라 일상 속에 있는 작은 것들이지요. 그 작은 것들의 하느님이 늘 우리의 축복을 빌어주고 잊었던 천국을 되찾게 해 주는 듯해요. 숨결을 느끼듯 축복을 느끼며 사는 일. 그건 서로가 서로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일 거에요." (13.p)

어쩌면 우리 삶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일상을 구성하는 작은 기억들이 모인 총체일 수도 있다. 동료지원은 그 일상의 소박한 추억들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이유일 수 있음을 알려준다.

"전시를 보고 나서 밥을 먹으러 근처에 있는 밥집을 찾는다. 지현이 비건이었기 때문에 장소를 고르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것도 함께 함의 즐거움이라 경혜는 생각한다. 따듯하고 편안한 자리에서 편안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한 끼의 밥, 얼마나 뽀얀 추억이 될까." (45.p)

정신장애인의 일상은 어떻게 인식될까. 동료지원은 당사자를 둘러싼 일상의 중요성을 포착한다. 간과되기 쉬운 일상의 시간들. 동료지원은 그 관점을 뒤집는다. 당사자의 일상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그 일상의 시간들 속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던 ‘반짝임’에 초점을 둔다.

"저는 쓸모 없음의 쓸모를 지현님을 보며 배웠어요. 처음에는 헤매고 방황하는 지현님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죠. 그것은 고통을 이겨내는 지현님만의 방식이었는데 그걸 증상으로 해석하고 귀찮은 일로 여길 수도 있었어요. 약 좀 먹어. 세상의 방식은 그런 방식으로 말하겠죠. 홀로 헤매는 시간은 지현님에게는 지현님을 더 파괴적인 것들로부터 담담히 지켜준 시간이라 생각해요. 그 시간이 쓸모 없었기에 지현님 안에 맺히는 삶의 이토록 작은 것들이 반짝이는 것을 보게 된 것이라고요." (47.p)

때로 우린 당사자의 일상을 이해하는 것에 있어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료지원가의 경험적 지식은 그 일상을 새롭게 이해하고 수용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처음 지현이 나타나지 않고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 때 문호는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자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경혜의 말에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자기 자신도 약 기운에 취해 늦잠을 자다가 약속 장소에 나가지 못했던 기억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주어진 규정을 잘 지키는 사람이지만 그때는 몸의 상태 때문에 어떤 의지도 어떤 기대도 가질 수 없던 상태였다. 그때 생각했다. 아, 이건 어쩌면 당사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기다림이겠구나. 인내이겠구나. 한 번의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배제하고 추방하는 이유로 사용하거나 자신이 상담자이므로 자신에게는 당사자의 잘못을 지적할 당연한 권리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행동하지 않았다. 우리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그 인내가 한 사람을 살렸구나. 그녀에게 다시 삶을 허락하게 하였구나.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게 하겠구나." (49.p)

책을 읽으며 느꼈다. 동료지원은 어떤 거창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늘 파랑새를 쫓아가며 살아가고 있었음을. 때로는 일상에서 빤히 보이는 것을 거부하기도 하며, 때로는 본질을 찾아야 한다고, 진짜를 찾아야 한다고 외치면서 돌아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 정작 우리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을 수 있다.

질 들뢰즈는 극적인 구성에서의 사건은 시작과 끝만을 보여줄 뿐이지만, 지속이라는 의미에서 사건은 일상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말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지금 이 순간, 아주 사소한 에피소드들, 사실 여기에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담겨 있을 수 있다.

삶은 생각보다 성대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소박하고 작은 기억과 추억들로 구성된다. 거대한 사건과 이벤트가 아닌. 일상의 기억들. 작디작은 일상들. 멀리 있고 거창한 것이 아닌 답은 ‘일상’에 있다. 그리고 그 작은 일상의 기억들은. 이토록 찬란하다.

The world's smallest violin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바이올린도

Really needs an audience

연주를 들어 줄 사람이 필요해요

So if I do not find somebody soon

그러니 어서 들어 줄 사람을 찾지 못하면

I'll blow up into smithereens

난 '펑'하고 터져 버리고

And spew my tiny symphony

내 작은 교향곡을 뿜어내겠죠

just let me play my violin for you

그러니 나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어줘요

- 밴드 AJR 노래 'World's Smallest Violin(세상에서 가장 작은 바이올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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