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10곳 중 7곳 적자 경영 ‘몸살’…“의료급여환자의 정액수가제를 행위별수가로 돌려야”
정신병원 10곳 중 7곳 적자 경영 ‘몸살’…“의료급여환자의 정액수가제를 행위별수가로 돌려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3.10.12 2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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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순·신동근 의원, 정신의료기관협회 공동 설문 조사...정신병원 73% 적자 상태
이대로면 5년 이후 전국 정신병상 2만4000여 개로 ‘반토막’...지역사회 인프라 부실
정액수가제 없애고 행위별수가제로 통합시켜야...병원의 손실 보전 필요
사진=연합뉴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연합뉴스.

우리나라 정신병원 10곳 중 7곳은 적자 경영에 허덕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5년 이내에 정신병원의 절반이 문을 닫을 거라는 분석도 나왔다. 병원의 손실을 보전하고 경영 안정을 위해서는 정신질환 의료급여 환자의 정액수가제를 행위별수가제로 통합해야 한다는 권고도 나왔다.

이는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와 공동으로 정신병원 대상의 경영실태 설문조사 결과에서 나온 전망치다. 남 의원 등은 전국 283개 정신병원에 설문을 보내 이중 응답한 34개 병원을 대상으로 분석했다. 응답률은 12.0%이다.

먼저 병원 재무 상태를 분석한 결과 25개 병원(73.5%)이 ‘적자 상태’라고 응답했다. 흑자가 난 병원은 6곳(17.6%)에 불과했다. 또 10개 중 1개 병원이 인건비 지급을 위해 매월 외부에서 자금을 차입하고 있었다.

지금 상태가 지속될 경우 향후 몇 년 동안 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지 질문에는 41.2%는 ‘3년 이내’, 14.7%는 ‘5년 이내’라고 답했다. 5년 이내 폐업할 병원이 55.9%라는 분석이다.

이를 전체 정신병원으로 환산하면 283곳 중 158곳이 5년 이내에 문을 닫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2023년 8월 기준 전국 5만5180병상이 5년 안에 3만845 병상이 줄어 2만4335 병상만 남게 되는 수치다. 병상 수의 축소는 입원환자 수의 축소로 이어진다.

남 의원은 “5년 이내에 3만여 명의 정신입원 환자가 사회로 나오게 된다”며 “지역사회에서 치료와 재활, 회복 등 인프라가 미흡한 상태에서 대거 사회로 나올 경우 사회적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정신병원의 경영 악화의 한 원인으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목된다. 당시 정신과 폐쇄병동의 입원환자들이 감염병으로 잇따라 사망하면서 정부가 기존 10인실 입원실을 6인실로 축소하라고 권고해 각 정신병원이 시설 개선에 평균 9억 원을 지출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또 코로나19 기간 동안 입원환자의 감소, 전기료 등 물가 인상, 인건비 상승 등이 맞물려 경영난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이다.

10인실에서 6인실로의 시설 개선 이전인 2021년 2월과 시설 개선 완료 이후인 2023년 6월 두 시점을 기준으로 병원 부채와 이자 부담 변화를 분석하면 52.9%(18개 병원)에서 부채가 증가했다. 감소한 병원은 20.6%(7개 병원)에 불과했다.

또 67.6%(23개 병원)는 이자 부담이 늘었다고 응답했다.

인건비 지출 문제도 병원의 수입 감소 원인으로 지목됐다. 코로나19와 입원실 축소로 환자는 지속 감소했지만 전체 직원수는 변동이 거의 없었다. 환자가 줄면서 의사는 평균 8명이 감소했지만 병실수가 증가하면서 간호사를 포함한 병원 운영 직원은 오히려 5명 증가했다. 전체 인건비는 2년 전에 비해 9% 상승했다.

폐업 병원도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대구 소재 ‘제2미주병원’이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5월 3일 폐원했다. 이 병원은 2020년 3월 135명의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환자수가 줄고 6인실 시설 기준에 맞추면서 기존 179병상이 120병상으로 40% 줄었다. 이후 전문의를 5명에서 3명으로 줄이는 자구책을 썼지만 경영난을 이기지는 못했다.

이처럼 10개 중 7개 병원이 적자 상태에 빠져 있고 정신병원 절반이 돈을 빌려 직원 인건비를 주고 있는 상태가 지속되면 3년 이내 문 닫는 병원이 40%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 의원은 “정신병원을 살리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적자 구조에 허덕이는 이유로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의료급여 환자와 건강보험 환자 사이의 차별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 의료수가는 행위별수가제로, 이는 외래환자든 입원환자든, 건강보험환자이든 의료급여환자이든 환자 신분에 구분 없이 행위별수가제를 적용받고 있다.

그러나 정신병원은 예외다. 정신병원 입원환자 중 의료급여환자는 정액수가제를 적용받고 있다. 입원한 건강보험환자는 행위별수가제를 적용받지만 유독 의료급여환자에 대해서만 정부는 입원 하루 정액을 6만 원으로 책정해 이 정액수가 내에서 의료행위를 진행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는 건강보험환자 하루 입원진료 비용의 70% 수준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의료급여환자의 정액수가제는 헌법 제11조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봤다. 인권위는 2009년 11월 인권위원장 명의로 “정신과 의료급여환자에게만 건강보험 환자와 차별해 낮은 수가를 적용하는 것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풀어야 할 정신보건의 문제를 의료급여 정신질환자에게 전가시키는 것으로 국가의 취약계층 보호 의무를 해태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1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정액수가제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 역시 의료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2019년 6월 약제비를 정액수가에서 행위별수가제로 돌렸다. 그 이전까지는 건강보험환자에게는 상대적으로 고가의 약을, 의료급여환자에게는 저가의 약을 처방했다. 복지부는 또 2021년 4월, 식대와 정신요법료를 정액수가에서 분리했다. 그 이전에는 건강보험환자와 의료급여환자의 밥의 양과 질이 달랐다. 의학적 필요가 있지만 의료급여환자에게는 상대적으로 정신요법을 덜 시행했다는 지적이다.

남 의원은 “의료급여환자의 ‘정해진 액수’가 건강보험환자의 70% 수준이므로 진료에 있어 딱 그만큼의 차별이 존재하는 것”이라며 “차별의 근본적 해소를 위해 정액수가제를 없애고 행위별수가제로 통일시키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구 소재 '제2미주병원'. 재정 악화로 지난 5월 폐원했다. [사진=연합뉴스]
대구 소재 '제2미주병원'. 재정 악화로 지난 5월 폐원했다. [사진=연합뉴스]

병원의 폐원을 막을 대책도 제시됐다. 2020년 정신병원 시설 개선이 논의될 때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국은 입원실 인원 축소에 따른 손실을 보전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제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게 병원들의 요구다.

정신병원은 ‘개방병동’과 ‘폐쇄병동’, ‘격리보호실’로 구성돼 있다. 폐쇄병동과 격리보호실은 직원을 더 많이 배치해야 해 운영 비용이 더 많이 든다. 정부는 이에 따라 폐쇄병동집중관리료와 격리보호료를 별도로 지급해 주고 있다. 하지만 이는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정신병동에 한해서다. 정신병원에도 폐쇄병동과 격리보호실을 운영하면서 직원을 더 많이 배치하고 있는데도 정신병원에는 이를 지급해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신병원이 차별받아온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2024년부터 정신병원에 폐쇄병동집중관리료와 격리보호료를 지급해주겠다고 했지만 건강보험환자에게만 이를 적용하고 의료급여환자에게는 적용하게 않겠다는 입장이다.

남 의원은 “의료급여환자도 폐쇄병동에 입원하고 격리보호실에서 별도로 보호받는다”며 “의료급여환자에게도 두 항목을 적용해 주는 것이 의료차별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남 의원 의견대로 의료급여환자에 대한 폐쇄병동집중관리료와 격리보호료 예산을 국회가 편성할 경우 예산 규모는 1900억 원 규모로 예상된다.

이는 정신병원 경영난을 개선하고 의료급여환자에 대한 의료차별을 시정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시설 개선으로 입원환자가 급감한 정신병원의 손실을 보전하는 복지부의 약속이 관철돼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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