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신질환을 경험했느냐보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이어야”
“어떤 정신질환을 경험했느냐보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이어야”
  • 이상석 작가
  • 승인 2023.11.08 2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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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인식개선 활동가 이상석 작가의 에세이
공정한 시선과 관심, 정신장애인의 지속가능한 삶 꿈꿔
우리 국민 27%는 정신질환 경험…정신질환에 공정한 관심 필요
정신장애인 바깥 활동 않는 이유 “주위 사람 시선 때문”
동정과 과잉 친절은 No, 서로를 배려하는 사회 구성돼야

*조현한 생활

저는 조현병 당사자입니다. 정신질환을 경험하며 느낀 감정과 생활 속 이야기를 나눕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이야기뿐 아니라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들도 기록하려 합니다. 같은 정신질환 당사자분들은 공감, 비당사자분들은 오해가 아닌 이해의 계기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지난 10월은 여느 때보다 빠르고 다채롭게 지나갔습니다. 10월 10일 세계 정신건강의 날을 맞아 진행된 여러 기관 행사에 정신질환 당사자, 비당사자가 한데 모여 축제를 즐겼고, 저 또한 광명시정신건강복지센터의 회원이자 인식개선 활동가, 드림합창단원으로 전시, 합창 공연·경연 등의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여러 경험을 통해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정신건강 합창대회에서는 동상 수상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었지만, 한편으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정신건강의 날, 정신건강 홍보 주간이 아니어도 사람들이 정신건강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공정한 시선과 관심의 요청

정신장애는 육안으로 쉽게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유형의 장애에 비해, 실생활에서 필요한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령, 일터에서 정신과적 증상으로 힘든 순간에 비전문가에게 도움받기가 어렵고, 장애인 편의시설과 정당한 편의 제공도 신체장애를 중심으로 제도화된 것이 사실입니다. 때로는 “겉보기엔 멀쩡한데, 뭐가 힘드냐?”라는 말에 상처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신질환을 둘러싼 시선에는 아직도 ‘두려움, 범죄’라는 단어가 따라다닙니다. 우울, 불안 등의 문제로 정신의료기관에 간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를 ‘나쁜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론과 미디어는 유독 강력범죄자에 대한 보도에 정신질환력을 크게 표기하곤 합니다.

어떤 유형의 장애를 갖고, 어떤 정신질환을 경험했느냐보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앞에 놓인 수식어는, 우리를 쉽게 설명하는 방법일 뿐 우리를 100%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2022년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추계 중증정신질환자 수는 70만 명 이상이며, 2021년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발표한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사’에 의하면 정신장애 평생 유병률은 27.8%로 ‘국민 중 1/4은 정신과적 문제를 경험할 수 있다’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정신질환, 정신장애인은 우리 일상과 맞닿아 있기에, 서로에 대한 공정한 시선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정신장애인의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며

정신건강의 날은 정신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저와 동료들에게, 매해 또 다른 희망과 감동을 줍니다. 적어도 정신건강의 날이 속한 10월만큼은 정신장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시적인 관심으로는 해결되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장애등급, 주거, 일자리, 치료와 관련된 문제 등 삶을 둘러싼 문제, 환경이 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지속적인 관심이 있어야만, 지속 가능한 삶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최근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등의 개념이 화두(話頭)가 되었습니다. 성별, 나이,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인데 이 또한 장애 분야에서는 신체장애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포털 화면 갈무리.
포털 화면 갈무리.

실제로 포털 사이트에 ‘정신장애 배리어프리’를 검색하면 조합된 검색어에 따른 결과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검색을 통해 다소 흥미로운 점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한 수족관 홈페이지에는 ‘신체·정신장애인 보건복지수첩, 요육수첩(지적장애인)을 가진 사람은 입장료가 무료입니다’라고 적혀있습니다. 수첩은 우리나라 장애인에게 발부되는 복지카드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 같은데, 카드가 아닌 수첩 형태인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수첩은 카드에 비해 많은 내용을 적을 수 있습니다. 가령 비상 연락망, 정신건강 상담전화 연락처, 정신의료기관의 위치, 이용할 수 있는 복지제도 정보 등이 담길 수 있어 실생활 또는 정신과적 위기 상황에서 빠르게 도움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이것도 배리어프리의 한 형태가 되지 않을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를 둘러싼 시선이 조금 더 유연해지는 것입니다.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장애인의 사회활동 및 문화·여가 활동 실태와 정책과제’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이 바깥 활동을 하지 않는 이유로 35.9%의 응답자가 ‘주위 사람의 시선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글의 서두에 ‘정신장애는 육안으로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라고 언급한 것과 배치되는 내용일 수 있으나, 우리 중 일부는 소통 과정에서 말과 행동이 다소 자연스럽지 못하거나 위축, 과장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모습은 비단 정신장애인이 아니어도 사람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특징일 겁니다.

다만, 피해 사고나 자존감 저하가 동반된 경우가 많아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 피드백에 쉽게 상처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동정, 과잉 친절과 같은 인위적인 반응을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우리가 지금껏 그래왔듯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조금 기다리고 양해를 구하며 살 수 있는 건강한 사회가 되기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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