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부, 정신장애인 지원 예산 전액 삭감…당사자 주도 사업마저 백지화시켜
[기고] 정부, 정신장애인 지원 예산 전액 삭감…당사자 주도 사업마저 백지화시켜
  • 하경희 교수
  • 승인 2023.11.12 2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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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희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기고
절차보조·위기쉼터·동료지원은 세계보건기구 핵심 서비스
한국, 입원 중심 정책으로는 세계적 패러다임 못 따라가
정신장애 당사자 지원 예산 반드시 지켜내야…29일 토론회 개최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회원들이 지난 8월 22일 용산구에서 가두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회원들이 지난 8월 22일 용산구에서 가두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김예지 국회의원 주최로 정신건강 정책 혁신을 위한 긴급토론회가 11월 29일 개최 예정이다. 이번 토론회는 2024년 예산안에 정신장애 당사자 지원 사업이 전액 삭감된 것에 대한 문제 제기다.

여기에는 비자의입원 정신질환자를 위한 절차보조사업도 포함됐다. 10억여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 전액 삭감된 것이다. 이는 보건복지부 정신건강 관련 예산 1천300억 원 중 1%도 안 되는 적은 금액이지만, 정신장애 당사자가 직접 참여하는 유일한 사업들이다.

정신장애 당사자지원 사업으로 추진해왔던 절차보조, 위기쉼터, 동료지원 등의 사업은 세계보건기구(WHO)가 퀄리티라이츠(QualityRights)에서 제시하고 있는 핵심 서비스이다. WHO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서 명시하고 있는, 장애인이 사회에서 한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누려야 할 권리를 정신건강 영역에서도 보장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방법을 제시해왔다.

그중 절차보조는 비자의입원 상황에서도 당사자의 권리와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권리를 옹호하며, 위기쉼터는 입원하지 않고도 지역사회에서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전환하도록 지원하며, 동료지원은 같은 어려움을 경험한 당사자들 간의 지지를 통해 회복을 촉진하는 핵심 서비스이다.

한국은 1995년 정신보건법 제정 이후 지역사회 기반의 정신건강체계를 구축하며, 정신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정책을 지속해서 추진해왔다. 하지만 국민 4명 중 1명이 정신적 어려움을 경험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10년 이상 유지하고 있다. 여전히 입원 중심의 정책과 전문가 주도의 서비스는 WHO에서 제시하고 있는 정신건강 패러다임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치료는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이 회복하는 과정의 한 요소이다.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정신장애인은 치료를 받고, 약을 먹으면서도 살아내야 하는 하루하루의 삶이 있다. 사회적 편견과 낙인에도 불구하고 지켜내야 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있다. 이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동료로부터의 공감과 지지, 위기를 함께 버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원, 그리고 강제치료 상황에서도 자신의 권리와 의사를 지켜낼 수 있는 옹호이다.

정신장애 당사자 지원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한국 정부가 국제적인 정신건강 정책의 방향에 명백히 역행하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지속적인 요구로 간신히 얻어낸 아주 작은 예산마저 삭감하는 것은, 게다가 다른 예산보다 우선하여 삭감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예산안이 결정되기까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정신장애 당사자와 함께 힘을 쏟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들이 결코 헛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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