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질 때 가슴 아파하는 사람은 오늘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꽃이 질 때 가슴 아파하는 사람은 오늘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 박목우 작가
  • 승인 2023.11.13 2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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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작가 박목우 에세이
사랑보다 소중한 것이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인생은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나눠 준 사랑이 돌아오는 과정
사랑은 자기책임에서 시작돼…선택한 그 길에 책임을 다해야
픽사베이.
픽사베이.

⁂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 놓아야 함을 나는 배웠다. 어느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이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소중함이 전해지도록, 그의 존재 자체에 기뻐하도록 오랫동안 정향되어 왔기 때문이겠지요. 꽃이 질 때 가슴 아파하는 사람은 오늘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별은 꽃처럼 지지 않아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가을꽃 저무는 들녘에서 홀로 우는 이, 그가 당신이었나요.

당신이 꽃의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했던 모든 말들이 잿빛으로 무너지는 때. 그 흰 재 속에서 새 한 마리 날아오릅니다. 불꽃 속에서 태어나는 새가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당신의 말. 그 말만큼은 죽지도 나이가 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했던 날들은 새의 몸이 되어 세상 더 먼 곳으로 향하는 당신의 비상을 지키겠지요. 어쩌면 이별이란 불멸하는 사랑의 시작인지 모르겠습니다.

⁂ 상처 주지 않고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소리 없이 아픔을 감싸 준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소리 없이 깊어가는 연인들의 사랑을 봅니다. 언젠가 나도 사랑한 적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가득 넘치는 것이라서 가슴으로부터 사랑의 언어들이 밝게 비치기 시작합니다. 세상의 풍랑은 거세어 풀빛처럼 여리게 우러나온 빛과 소리들을 쉽게 삼키려 듭니다. 사랑은 늘 꽃등처럼 위태롭습니다. 마음만이 아는 침묵하는 꽃빛이어서 기댈 곳이 없습니다. 마음이 아니라면 오래 전에 꽃들은 빛깔을 잃었겠지요. 그 다정한 표정도 함께 말입니다.

꽃이 돋운 불빛이 꺼질 때마다 남겨지는 씨앗은 그 사랑이 결코 끝나지 않으리라는, 희망이 남아 있으리라는 약속입니다. 그 씨앗의 처음을 품고 어쩌면 우리는 매번의 사랑을 다시 틔워내고 있는지도요. 내게 비밀이 있어야 한다면 그런 것. 영원한 반복 속에서 당신을 찾아가는 일입니다. 엽서처럼 접힌 마음을 품고 나는 오늘도 당신 곁입니다. 당신은 아주 먼 곳에서 오고 마음은 정박지를 알아 여기 머뭅니다. 한밤내 그리움이 밀려갔다 밀려옵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 사랑보다 소중한 것,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

흔히 처음에 사랑을 할 때는 나의 마음이 먼저 보이게 마련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깊어지면 사랑하는 이의 안부를 먼저 묻게 됩니다. 사랑보다 소중한 것이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가장 조용한 목소리로 나는 사랑을 노래합니다. 그의 주변을 노래로 둘러쌉니다. 들리지 않는 그 노래. 그저 잠시 구름에 젖었다 당신은 생각하시겠지요. 소리 없이 머물다 소리 없이 저물 노래이니까요.

낡은 책장을 넘기며 사랑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아름답게 깨우쳐 갑니다. 당신의 손을 붙잡지 못한다 해도 오롯이 내 가슴에 남아 있을 마음이 당신을 지킬 것입니다. 언젠가 불씨를 되살리듯 살려내는 저녁놀이 푸르고 붉게 연보랏빛으로 펼쳐질 때 나의 사랑도 끝이 날 것입니다. 이제 당신을 아름다운 풍경에 두었으니까요.

내 마음속에도 노을빛은 머물러 삶의 어려운 과제를 놓고서 하늘에 거듭 여쭈면서 살아가고 있겠지요. 불구인 몸이 떠오를 수 있는 가장 가벼운 무게로 노을빛으로 스며 들어갈 것입니다. 사랑했다는 것은 어쩌면 생에 가장 순수했던 기억. 당신의 이름이 아름다움에 쓰이기를 바라요. 아마도 당신은 그 일을 해낼 것입니다. 당신의 자유 안에서요.

⁂ 인생은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나눠 준 사랑이 돌아오는 과정입니다

해가 지고 달이 뜹니다. 달빛은 햇빛의 상흔인 것처럼 빛을 흘리고 있습니다. 깊은 산마저 달빛에 젖습니다. 하나씩 돌아옵니다. 우리가 잊었던 진실들이 이 어두운 밤을 타고 문을 두드립니다. 다시 심장이 뜁니다. 달빛에 흠뻑 빠진 듯 빛을 내는 당신. 언젠가는 당신이 그렇게 빛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죠. 가장 순수하게 빛나기를 바랐던 당신이니까요.

나의 생은 책갈피 꽂힌 책장처럼 더 이상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머금고 있을 뿐. 살아가면서 사랑하지 못한 회한이 깊은 빛의 물결을 타고 내게로 옵니다. 나는 그저 해변이 되고 싶어요. 끝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소리를 노래인 것처럼 듣고 싶어요. 홀로 생성이고 변화인 파도가 밀려들 때마다 우리는 바다의 깊이에 대해 말하곤 했지요.

이제 육지와 함께 깊어가는 당신. 그런 당신을 응원합니다.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에 그렇습니다. 슬픔만이 바다를 채우는 것을 당신은 몰랐으면 합니다. 마지막 물결이 그리 부드러운 빛이라는 것만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 꿈은 제2의 사춘기에 필수적인 요소다. 꿈을 꾸는 것은 경험과 감정의 새로운 영역을 탐색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멀리 보이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지도를 제작하는 측량기사의 수고로움처럼 당신이 자세히 열어놓은 세상이 어둠과 빛을 번갈아 갈아입습니다. 지도의 영역에서 꿈의 영역으로 가는 당신. 저 먼 곳으로부터 햇빛이 세상을 덮어 옵니다. 어두웠던 대지가 천천히 밝아옵니다. 어둡기만 하던 세상을 들어올리는 당신의 아름다움. 그것은 사랑일까요. 아니면 어떤 힘일까요. 흉내낼 수 없는 유일한 실존일까요.

당신으로 하여 알려지는 존재의 새로운 영역에 잠들었던 것들 깨어나 아우성 칩니다. 가만히 풀꽃들도 흔들립니다. 세상의 작은 당신들이 자유를 위해 하늘을 풀어놓는 모습을 보며 별빛이 드러내는 밤하늘이 깊었던 것을 떠올립니다. 아무 빛이나 우리에게 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간절히 바라던 빛이 닿는다는 것. 염원을 담은 당신의 행로는 봄처럼 피어나는 길. 꽃맥처럼 섬세하게 뻗어가는 형상을 빚는 길입니다. 아주 작은 존재를 태어나게 하는 힘입니다. 당신은 우리 모두가 다다를 수 있는 평화로운 역량입니다.

⁂ 인생에는 좋았던 순간에 집착하며, 사라지는 것을 미리 두려워하고 서글퍼하는 것과는 다른 길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 예배당에서 기도를 하다가 모든 사랑의 시작은 자기책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의 삶과 행로를 고민하고 스스로 선택한 그 길에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타자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나의 이야기가 있어야 비로소 다른 이야기 속으로 스며들 수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랑이란 보챈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건 당신의 빛깔에 나를 온전히 스미게 하는 일입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로에게 스미는 일입니다. 그 순간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그것을 알기에 오늘도 다만 당신을 꿈꿀 뿐입니다. 당신 앞에 부려놓을 이야기들을 잠잠히 써 내려갈 뿐입니다. 글이 가진 미덕을 믿어보고 싶을 뿐입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 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시간에는 모르는 사람이 아는 사람이 되는 다정한 친밀함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연인들은 마치 처음으로 사랑을 하는 것처럼, 사랑을 만들어 갑니다. 이미 숱한 사람들이 반복했을 사랑의 고백을 위해 고심합니다. 사랑할 때 우리는 시원이 됩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할 때 우리는 그의 바탕을 알게 됩니다. 가장 깊이 숨어 있는 아름다움에 마음이 떨려옵니다.

서로를 알아 가고 느낀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요. 그 천상의 기쁨을 지상으로 불러오는 사랑은 놀랍기만 합니다. 일상이 듣는 이의 귀에서 반짝이는 평온이 되고 가만가만 마음 속으로 적어 내려간 밀어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세상은 아름다움을 덧입습니다. 다만 나는 지켜보고 염원합니다. 풀꽃처럼 작은 것들이 피어나는 언덕에 설 수 있기를, 바다처럼 끝없는 영원의 숨을 쉴 수 있기를, 그리고 진정으로 한 사람을 사랑하기를.

⁂ 사랑하는 사람은 이해하고, 이해하는 사람은 사랑한다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기뻤던 순간을 떠올려봅니다. 그 풍경은 늘 누군가와 함깨 있는 곳에서 발원합니다. 함께 샘의 처음으로 갔던 사람. 거기서 얕은 물줄기가 끝없이 흐르는 것을 보았던 사람. 그 작은 시작이 강을 이루듯 어쩌면 그때의 우리는 조금씩 시작되고 있는 사랑이 먼 바다의 물결에 스미기를 기원하기도 했을지 모릅니다.

산과 골짜기를 지나 강으로 가서 사람과 함께 흐르다 항구와 선착장과 등대가 있는 곳, 끼룩이는 갈매기들이 높이 나는 바다를 꿈꾸기도 했을까요. 가다가다 삶의 마지막으로 닿는 바다는 하늘을 비추며 고요하지만, 바다에도 삶은 있어 비탄에 서린 파도가 낮은 인가를 적시기도 합니다. 어쩌면 사람의 미약한 일생과 해변의 묘지는 삶의 처음과 끝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밀려오는 파도처럼 덧없이 흐르는 것이 인생이어도 아직 우리에게는 이해와 사랑이 필요한 이웃이 있고 삶에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와 모순이 존재하고 사랑과 전쟁이 공존합니다. 우리에겐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럴 수 없으리만큼 성실했습니다. 삶의 끝에 이르러 한 목숨이 저물 때 그에게 손을 내밀고 싶습니다. 잘 살아왔다고,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을 기억해 줄 거라고요. 기억 안에서 당신은 끝없이 꿈꾸게 하는 맑은 날의 파랗고 눈시린 바다와 같았다고, 깊고도 드넓었다고 말해줄 것입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 한 방향으로 깊이 사랑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모든 것을 더 사랑하게 만든다

누군가를 오래 깊이 바라보고 있는다는 것. 바라봄 속에는 천천히 마음이 깃들고 하나하나 빚어지는 깃털들로 작은 새는 날개가 젖습니다. 알을 깨고 나왔을 때 바람이 말려준 깃털은 아직 하얀 솜털이어서 날기에는 아득하지만, 바람의 소리를 듣습니다. 저 먼 곳까지 닿았던 날들의 이야기가 새들의 귀에 선명합니다. 악기를 연주하듯 바람과 바람을 타며 날아온 어미새는 모아두었던 먹이를 아기새들에게 전해줍니다.

아득히 먼 곳에서 바람이 불어옵니다. 아기새를 돌보는 당신을 바라보며, 나는 새들이 활공하며 하늘 멀리 자신들의 귀착지로 갈 수 있는 날을 꿈꿉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은 언젠가 그곳의 이야기에 흠뻑 젖었던 이들. 그래서일까요. 가까이 있어도 느껴지는 당신의 먼 곳은 사무치기도 한 것이어서 눈시울이 젖습니다.

우리는 눈물에 대해 말했습니다. 눈물이 흘러서야 눈을 감고 잠을 청할 수 있었던 행복한 영혼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새들은 오늘도 흐린 하늘 아래 모여졌다 흩어집니다. 새들을 이웃이라 불러봅니다. 그들이 날 때 아직 남겨둔 꿈이 있다고. 비 내리는 궂은 날, 그들의 날개가 젖을수록 더 침잠하는 꿈이 하늘 깊이 잠겨있는 당신의 눈동자 같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자의 눈동자는 허름한 생의 미약한 기척을 알아채는 영혼처럼 깊이 품어준 검은 빛이라고, 이미 오래전에 품고 있던 마음이었다고, 발 끝에 고이는 그림자였다고, 내게서 떨어진 적 없는 숨은 빛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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