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한 번 더 사랑하라고 우리를 부추긴다”
“슬픔은 한 번 더 사랑하라고 우리를 부추긴다”
  • 박목우 작가
  • 승인 2023.11.09 2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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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박목우 작가 에세이
“저는 행복해져야 해요”…사람에 대한 책임이 어찌 이리 고운지
내가 행복해지지 않으면 나를 둘러싼 이들도 행복하지 않을 것
사랑이란 돌보는 것…상대를, 관계를 돌보며 자신을 돌보는 것
“기뻐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와 함께 우십시오”
곁을 지켜준다는 건 그의 편이 되어 경청하는 것
픽사베이.
픽사베이.

⁂ 때로는 사랑하다가 균형을 잃지만 그래야 더 큰 균형을 찾아가는 거야

뜻하지 않게 찾아온 이별은 온 존재를 뒤흔드는 아픔입니다. 때이른 사별도 그렇지요. 사랑했던 존재들이었기에 더 부서지는 슬픔에 우리는 빠져듭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했었다는 실존의 증거. 앞으로도 사랑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의지가 됩니다.

사랑 앞에 포기는 없지요. 그것이 하나의 약속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억압하지 않겠노라고, 강요하지 않겠노라고, 사랑 자체와 언약을 지켜가면서 우리는 조금씩 성숙해갑니다. 이별 후에도, 사별 후에도 남아 있는 그리움이 그렇습니다.

다시 사랑할 수 있는 맑게 개인 하늘을 불러오는 환한 빛의 기운. 밀밭을 스치는 가을바람의 금빛이 무엇을 쓸어보듯 어루만지는지 그때야 우리는 이해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열려갑니다. 다른 균형 속에 사물들을 놓아둡니다. 아득히 먼 존재들의 아름다운 이름이 사라질 듯 사물의 표면에 새겨져 있겠지요. 마음도 머금겠지요

⁂ 사랑이란 상대방 덕분에 나 자신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은 타인을 통해서 나의 어떤 모습을 긍정하는 일이다

작게 작게 속삭여봅니다. 사랑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당신과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요. 바람인 듯 귓가를 스치며 연인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가 무얼까 생각해요. 사랑이 소유하지 않고 존재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 쓰라린 인연에서 저는 뒤로 물러납니다. 다만 먼 미래에 올 그녀를 꿈꿔요. 그리고 행복할 당신도요.

두 사람에게 제가 있어 서로에게 조금 더 다가설 수 있다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럴 때 저는 비로소 저 자신을 좋아하고 연인들을 경유해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저의 모습을 긍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연인들의 좋은 환경이 되어 주는 일. 저는 더 이상 당신을 가지려 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주변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할 뿐이에요. 기뻐도 하면서요. 하늘이 파랗게 맑아서 동이 터 오는 새벽물이 들었습니다. 당신이 언제나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사위를 밝힐 수 있도록, 오늘도 기도했습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행복하다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저는 행복해져야 해요. 지금까지 받은 사랑을 생각하면요." 수줍게 이야기하던 동생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바라는 이들의 마음을 늘 살펴오던 눈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작디작은 고마움이 모여 동생에게 맑은 샘 하나를 열어주었구나, 사람에 대한 책임감이 어찌 이리 고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타인의 사랑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보답하는 것, 내가 행복해지지 않으면 나를 둘러싼 이들도 행복하지 않을 거란 깊은 배려에서 나온 말이었어요. 사실 우리의 존재만큼 우리를 알고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있을까요.

누군가 제게 그랬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 자체가 사랑을 계속하게 하는 힘"이 되어 주는 것 같다고. 그래요. 우리는 기쁨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살아가기 쉽지 않은 세상에서 우리는 곧잘 자신을 망각하지만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휴일의 느슨한 휴식 속에서 그녀가 온전한 평화를 누리기를 바라봅니다

⁂ 어느 경우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사랑이란 돌보는 것이다. 상대를, 관계를 돌보며 또한 자신을 돌보는 것

하루종일 조용히 있었습니다. 오늘이 아팠을 누군가를 생각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한 줄기 빛을 따라 살 거라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작은 상실들을 겪으면서 이건 뭘까, 수없는 질문들을 던지며 더 깊이 아름다워진 사람입니다. 책을 펴고 밑줄을 긋습니다. 그때 생각나는 사람은 두 사람, 하나의 연인입니다. 기쁘게 사랑하라고, 더 많은 얘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파도에 젖은 채로는 흥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모래에 드러난 자신의 발가락을 유심히 보게 될 뿐이지요. 파도처럼 적시는 것, 스미는 것, 다가오는 것.

오늘 하루의 침묵이 사랑하는 이에게 온전한 평화를 가져다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기도 속에서 새벽달이 뜨기를. 저녁부터 비가 내리고 사위가 빗소리로 가득 찹니다. 주변을 둘러싼 배음에서 음악을 발견해 준다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을 위한 노래가 들려온 적 있음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축복된 작은 등을 켜며 당신의 저녁은 시작되고 있겠지요. 달빛처럼 채우고 있겠지요. 가을비처럼 낮은 땅을 모두 적시며 빛나고 있을 겁니다. 그 빛에 얼굴을 비춰보는 이들, 빛의 배면으로 물러나 다른 사랑이 됩니다. 죽음과 무無를 안고 빗소리처럼 울립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 이른바 사랑을 경험하려면 당신 주변의 사물과 사람들이 지닌 독특함과 아름다움에 민감해야 합니다

사랑한다는 건 사람의 마음을 잘 읽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가장 필요한 말이나 도움, 약속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차리려면 사람과 사물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삶에의 통찰을 지녀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늘 마음을 다한다는 것이겠지요. 아주 작은 마음이라도 가장 아름답게 빛날 때가 많습니다. 가난하고 소박한 정성이라도 가장 귀한 선물이 될 때가 많습니다.

나의 곁이 따뜻이 밝아오는 때. 그때의 위로를 무엇이라 말해야 좋을까요. 우리는 사랑을 가지고 있어 이제 당신의 선물에서 그 마음을 느낍니다. 당신의 사랑으로 한 세계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금 사랑에 빠진 당신, 사랑은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사소하고도 위대한 생의 비밀입니다. 사랑이란 말 속에 담긴 너무나 많은 기쁨과 슬픔들, 그윽히 익어가길 바랄게요. 그 마음의 풍경, 눈부시게 참 고맙게 보고 싶습니다

⁂ 곁을 지켜 주어라. 기꺼운 마음으로 경청하라. 거기 머물러라. 맨 마지막에 남는 것은 사랑 뿐이다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 하십시오.” 곁을 지켜준다는 건 그의 편이 되어 준다는 것. 경청하는 것은 그의 필요를 살피는 일. 거기 오래 머무는 것은 긴 기다림.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랑이 남습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울며 뜻을 같이 하기 위한 연인들의 노력은 아름답지요. 서로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깊이 들어주며 기쁨과 슬픔의 정동에 함께 참여하니까요. 그리고 그가 바라는 세계를 위해 동행하게 됩니다. 연인들이 마음을 맞추어볼 때 꼭 아름다운 합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사랑이란 "서로의 위치에서 이탈되거나 어긋난 채로 하나가 되는" 것이니까요. 안부를 살피며 걷는 길에서, 깊은 숲그늘을 거치듯 서늘한 슬픔을 헤쳐 나가는 날들에도, 함께 걷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지 않을까요. 함께 햇빛과 그늘과 비바람을 나눌 수 있는 축복이 당신에게 있습니다. 걷고 있는 길의 의미를 나즈막이 전하는 당신의 음성이 홀로 숲길을 가로지릅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 슬픔은 한 번 더 사랑하라고 우리를 부추긴다

슬픔은 폭이 깊어서 우리 가슴의 아주 먼 곳까지 물빛으로 차올라 있습니다. 때로 시냇물처럼, 때로 강처럼, 때로 바다처럼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머금고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 당신에게 전해지는 심심한 모습이 슬픔을 닮아 있기를 바랍니다. 그 깊은 바닥으로부터 표면으로 비치는 슬픔이 당신의 손을 잡고 햇빛 아래로 나설 때 당신은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볼테니까요.

당신을 둘러싼 물의 기운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뜨겁게 스미고 번져 눈가가 젖습니다. 물빛처럼 투명하게 마음을 적시는 것을 당신은 가졌습니다. 찻잔에 물이 담기는 그 깊은 다도(茶道)처럼 맑게 개인 시야를 주는 감동을 당신은 가졌습니다. 슬픔이 당신에게 올 때 당신에 어리는 아름다운 심연이 다시 한 번 더 사랑하라고 말해줍니다. 지상에 남아 그녀의 시야에서 영원히 사랑의 눈빛을 하고 있으라 슬픔은 노래합니다. 그런 이웃을 발견하라고 가라앉는 물빛이 떠오르는 물빛에 번지며 환하게 온몸으로 어룽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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