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단체 해볼까?] “방음 안 되는 공유오피스였지만…마음에 드는 건 밖으로 난 창문이었다”
[우리, 단체 해볼까?] “방음 안 되는 공유오피스였지만…마음에 드는 건 밖으로 난 창문이었다”
  • 리얼리즘
  • 승인 2024.01.10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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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다 대표 리얼리즘 기획 칼럼 3화
단체 설립 마음먹고 사무실 알아봤지만…형편에 턱없이 높은 비용에 좌절
비상주사무실 알아보다가 공유오피스에 ‘꽂혀’…“내 생활비 대출로 월세 마련”
공유오피스서 무제한 원두커피 마시며 작업했지만 곧 외로워져
타 당사자단체는 함께 일하는데 나는 창문 없는 공용석에서 “초라했다”
타 단체 활동가들과 월세 공동부담 개별룸으로 이전…‘세바다’ 거점공간 마련

당사자단체를 만드는 일은 어렵다. 단체 구상, 사무실 마련, 단체 설립신고, 총회, 회계, 행정, 회비와 후원금, 기회, 활동, 연대 등이 그 과정에 끌려나온다. 비영리단체 운영은 흔하지 않고 조언을 구할 곳도 없다. 누군가 몇 마디 말이라도 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사자운동의 ‘당’자도 모르던 리얼리즘이 신경다양성지지 모임 세바다와 회복의공간 난다, 권익옹호기관 등의 설립과 운영에서 깨달은 경험들을 독자와 나눈다. 총 10꼭지 기획으로 진행되는 기사에서 리얼리즘은 '맨땅에 헤딩'하듯 당사자단체를 만들어본 경험을 운동 초보의 관점에서 풀어나갈 예정이다.

세바다 대표 리얼리즘.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세바다 대표 리얼리즘.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단체 정식 설립을 마음먹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사무실을 알아보는 일이었다. 그럴듯한 건물에 근사한 독립 사무실을 얻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독립된 사무실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보증금과 임대료는 물론이고, 인테리어, 가구, 비품, 정수기나 복사기 렌탈 비용 등 신생 단체가 부담하기 어려운 금액이 기다릴 게 뻔했다.

그래도 아예 포기하기는 뭣해서 부동산 앱에서 보증금이 가장 저렴한 곳을 알아보았다. 아주 작은 단칸 사무실의 보증금이 300만 원에 달했다. 이것은 우리가 도저히 낼 수 없는 돈이라고 생각했다.

사무실 임차가 부담스러워 가정집을 사무실로 등록하는 방안도 생각해 보았다. 준비물은 집의 임대차계약서나 무상사용 승낙서. 세무서 말씀으로는 새롭게 법인을 차리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집주인의 동의가 필요하단다.

하지만 단체 설립 당시, 가족들은 비영리단체 설립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이 모든 건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져야 했다. 필요한 서류를 얻기 위해 가족들의 동의를 받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의 단체 설립 사실을 가족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알릴 수 있게 된 건 그로부터 2년 후이다.)

결국 단체 설립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사무실을 빌려야 했다. 그것이 비상주사무실(평소에 직원이 상주하지 않으면서 주소지 등록, 우편 및 택배 수령을 위주로 하는 사무실)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비상주사무실을 알아봤다. 비상주사무실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에 ‘불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상주사무실은 어떠한 신용도 얻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 그렇지만 사정이 절박했으므로 가격을 살펴보는데, 1년 치를 선납해야 한단다. 그것도 꽤 큰 돈이다.

더군다나 단체 운영을 하다 보면 회의나 미팅도 해야 하고, 다른 활동가와 공동작업도 해야 하고, 인쇄도 해야 할 텐데 시설을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도 싫은 점이었다. 결국 비상주사무실도 우리의 관심사에서 밀려났다.

그러던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이 공유오피스였다. 공유오피스 운영사가 사무실을 꾸며 가구와 집기를 설치하면, 기업이나 단체는 몸과 컴퓨터만 들고 오면 끝이었다. 인터넷 비와 공과금, 소모품, 청소비 등의 관리유지비도 들지 않았다. 시설은 다른 평범한 사무실에 비해 아주 아름다웠다. 물론 공유오피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른 기업 혹은 단체와 같은 사무실을 공유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았다.

몇 군데를 정해 투어를 했다. 마침 남양주 별내신도시에 좋은 자리가 있었다. 자세히 말하면 광고가 될 테니 적당히 줄이지만, 그곳은 인테리어가 좋았고, 미팅룸도 무료였으며, 커피와 인쇄가 공짜였다. 무한 리필되는 맛있는 무료 원두커피가 나의 마음을 심하게 움직였다. 나는 생활비대출로 월세를 마련하여 임대차계약, 아니 전대차계약을 했다.

임대계약을 했지만 우리 사무실은 없었다. 우리 사무실이되 우리 사무실이 아니었다. 우리의 자리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우리 사무실은 단지 공용석 1석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일 뿐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개인사무실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월세를 내가 내기로 했다.

“[팁] 전대차계약이란? 보통의 임대계약은 건물주와 세입자가 직접 계약을 체결한다. 전대차계약은 그 사이에 전대인이 낀다. 전대인이 임대인에게 건물을 빌리면, 세입자가 전대인이 빌린 건물을 다시 빌리는 형태이다. 전대차계약은 임대차계약과 달리 은행에서 잘 인정해주지 않고, 안정성도 떨어지기 때문에 보통은 추천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유오피스를 고르는 기준에 전대 여부를 포함하는 입주자들이 많다.”

나는 단체 설립 이후 반 년 간은 백수로 지냈는데, 그 시간을 공유오피스 출근으로 때웠다. 집에는 독서실에 간다고 속일 수밖에 없었다. 그럴듯한 거짓말이었던 것이, 그곳의 공용석은 독서실이나 스터디카페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월세는 독서실보다 약간 저렴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그럴듯한 사무실에서 무제한 원두커피를 마시며 혼자 여유롭게 작업하는 시간은 참 좋았지만 곧 외로워졌다. 다른 당사자단체는 당사자 활동가들이 한데 모여서 즐겁게 일을 하는데, 나는 창문도 없는 공용석에서 혼자 일했다. 그 모습이 참 초라했다. 다른 단체에 취업한 후에는 월세만 내고 사무실에 가지 않았다.

월세만 축내는 사무실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때마침 당사자 활동가 중 사무실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생겼다. 월세가 인상되는 것을 감수하고 개별룸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두 자리가 생겼고, 두 사람이 지문을 추가로 등록하고 입주했다. 공간이 협소해 한 자리를 놓을 수 없는 대신에 지문등록비를 받지 않겠다고 하여 월세를 세 사람이 나눠 내는 조건으로 자리를 옮겼다.

새로 옮긴 개별룸은 조금 더 넓었고, 벽으로 완전히 가로막혀 있어 사생활 보호에도 좋았다. 공유오피스답게 방음은 거의 되지 않았지만, 이걸로도 만족했다. 수납공간이 늘어난 것도 좋았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밖으로 난 창문이었다. 고시원도 내창에 살면 정신건강이 안 좋아진다는데, 무창 공용석에 있다가 외창으로 업그레이드하니 속이 다 시원했다. 나의 자리에 근사한 키보드를 놓으니 만족스러웠다.

나의 생활권이 남양주와 멀거니와 본업이 바빠져서 세바다 사무실에 잘 오지 않게 되었지만, 공유오피스는 나의 소중한 추억이고, ‘세바다’의 거점 공간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독립 사무실로 옮길 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단체를 운영하겠다.

리얼리즘은... 현재 신경다양성 지지모임 세바다 대표로 일하고 있다. <더인디고> 집필위원, 에이블뉴스 칼럼니스트, 회복의공간 ‘난다’ 전 팀장, 후견신탁연구센터 정신장애인 전국권익옹호기관 팀장 등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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