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정책보고서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장애인 권리 구현 못해…전면 개정해야”
의협 정책보고서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장애인 권리 구현 못해…전면 개정해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11.26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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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필요성·자타해 위험 중 하나만 해당해도 입원 가능해야
입적심 폐지하고 독립심사기구로 일원화해야
경찰·119 호송요청 매뉴얼 마련돼야
사법심사 독립성 보장되지만 트라우마 남길 수 있어
다학제 심리 모델은 트라우마 적지만 적법절차 시비
정신질환자 개념 범주 두지 말고 증상으로 규정해야
정신요양시설 대신 출입 자유로운 시설로 전환해야

2016년 전면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의 재개정을 요구하는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최근 ‘인권존중과 탈수용화를 위한 정신건강복지법 재개정’이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의 문제점으로 ▲비자의입원의 인신구금 수단 악용 가능성 ▲정신질환자의 적법한 호송 방법 ▲불필요한 사회적 입원과 지지부진한 탈수용화 ▲과도하게 엄격한 입원 요건 ▲국·공립 정신병원 소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포함한 2인 이상 진단 요건 ▲중복된 입원심사 절차 등 비효율적인 규제로 인한 정신질환 조기 대응 및 집중 치료의 실패를 꼽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1995년 제정된 정신보건법은 일본 정신위생법을 참조한 법이다. 법 제정 후 법의 빈틈을 이용해 정신질환자에 대한 비자의입원(강제입원)을 악용해 재산적 이익을 취하거나 부양의무를 면하는 사례들이 나타났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전면 개정법(정신건강복지법)은 낡은 법의 틀은 유지한 채 남용 위험이 악용된 입원 유형, 특히 보호의무자에 대한 입원 유형의 규제를 하나하나 강화하는 방법으로 대응했다”며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식과 처우방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국내외적으로 힘을 얻고 있지만 강화된 규제는 제도를 기능하기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은 선진국이 채택하는 정신질환자의 권리를 존중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보고서 분석이다. 입원에 대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해 비효율적인 행정절차와 비용만을 증가시켰다는 비판이다.

정신건강복지법의 제정은 지난 2016년 헌법재판소가 정신보건법 24조의 강제입원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를 선언하고 우리나라가 UN 장애인권리협약(CRPD)에 가입한 효과로 탄생한 것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은 치료의 필요성과 자·타해의 위험 등 2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해야 비자의입원을 시킬 수 있다. 보호의무자의 입원 동의도 기존 1인에서 2인으로 확대됐다. 또 신분을 확인할 증빙 서류가 미비할 경우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기존 6개월이던 최초 입원 기간도 3개월로 단축됐다. 입원 후 2주 안에 서로 다른 정신의료기관 정신과 의사 2인의 진단이 일치해야 3개월까지 입원이 가능하다. 입원 환자는 1개월 안에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에 자신의 입·퇴원을 서류나 대면 조사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보고서는 이 같은 까다로운 절차와 관련해 “문제를 해소하기는커녕 심화시키고 있다”며 “(재개정이) 근본적 개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응급입원과 응급호소를 구분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보고서는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강제입원의 심사 모델 마련, 보호의무자 제도 폐지 등도 제시했다.

보고서는 “응급입원의 실체적 요건이 엄격하고 절차적으로 의사와 경찰관의 동의를 요구해 이용이 매우 저조했다”며 “이로 인한 보호의무자와 병원에 의한 불법이송 등의 문제가 제기돼 왔다. 응급입원을 한국처럼 엄격하게 하는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정신병원장이 강제입원 요건을 충족하는 정신질환자의 경우 공휴일을 제외한 3일 이내의 기간 동안 응급입원을 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남용 위험이 크지 않으며 대신 입원 후 지체 없이 그 사실을 통지하고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을 받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또 “응급입원을 응급입원과 응급호송으로 분리해 규정하고 경찰관이나 119구급대원에게 호송을 요청하는 방법 등이 새로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자의입원과 관련해 조기심사 모델과 중기심사 모델이 제시됐다. 조기심사 모델은 응급입원 후 퇴원시키거나 곧바로 비자의입원 심사를 거치는 형태고 중기심사 모델은 단기간 비자의입원 후 퇴원시키거나 심사를 거쳐 계속 입원시키는 형태다.

보고서는 “어느 모델이든 보호의무자 제도의 존폐와 밀접하게 얽혀 있다”며 “보호의무자 제도의 폐지에 관한 부분을 포함하고 이를 전제로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보호의무자 제도의 폐지와 관련해서는 본인부담금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으나 국가와 지자체가 전액 부담하거나 대납한 후 부양의무자에게 구상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기심사 모델의 경우 비자의입원은 정신병원장에 대한 입원으로 일원화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고서는 “응급입원을 거쳐 비자의입원 요건이 충족되면 3일 내에 심사를 청구하고 심사절차에서 판정해야 한다”며 “비자의입원의 실체적 요건으로 자·타해 위험과 치료의 필요성을 독립적인 조건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기심사 모델을 따르는 국가에서는 정신병원장에 의한 입원과 특별자치시장 등에 의한 입원의 이원적 모델을 유지하는 것이 보편적”이라며 “단기간 내에 청문이 이뤄지므로 남용 위험은 크지 않다. (정신과 의사) 2인 이상 진단에 관한 규정은 현실적으로 시행이 어려운 만큼 삭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이 밖에도 ▲독립적 심사기구에 의한 입원심사와 절차보조인 참여 ▲자의입원의 보호자 동의 삭제 ▲외래치료 지원 ▲정신질환자 개념 재정의 ▲정신요양시설 개선 등을 과제로 꼽았다.

현행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의 서류심사와 대면조사는 그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대안으로 사법심사와 MHRT(Mental Health Review Tribunal)심사 모델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를 폐지하고 독립적 심사기구에 의한 심사로 일원화해야 한다”며 “본인과 이해관계인(주로 가족)의 절차 관여 및 청문과 절차보조인의 조력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적법 절차를 충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법심사형은 독립적 심사를 법원에 맡기는 모델로 법원의 결정에 의한 입원”이라며 “적법절차의 요청을 만족시키고 독립성이 보장되지만 절차 내 불복 여부 문제나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MHRT형은 독립적인 심사기구를 별도로 설치해 의료인, 임상심리사, 사회복지사, 법조인 등이 공동으로 심리하는 모델로 사법 절차의 경직성을 피하고 정신질환자에게 트라우마가 적은 방향으로 개입할 수 있다”며 “하지만 적법절차 시비가 있을 수 있는 단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자의입원과 관련해 보고서는 “보호의무자 등의 요건을 삭제하고 72시간 내에 비자의입원으로 전환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며 “자의입원에 대해 2개월 단위 퇴원 의사 확인은 지나치므로 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외래치료명령제와 관련해 “외래치료명령으로 자·타해 위험이나 치료의 필요성을 충족할 수 있을 경우 심사기구가 직권으로 외래치료명령을 시도할 수 있는 규정이 필요하다”며 “국가와 지자체가 비용을 부담해 비자의입원과 차이를 줄여 외래치료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실질적 집행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신건강복지센터장, 보건소장으로 하여금 지역사회 내 치료관리에 개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질환자의 개념을 독립생활이 어려운 중증정신질환자로 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알코올중독 등 경도의 정신질환자에 대한 적용 여부가 분명하지 않다.

보고서는 “정신질환자 개념 범주를 두지 않고 증상만으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장기적으로 별도의 단행 법률을 제정해 독립시키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신질환자의 탈수용화를 위해 치료 기능이 없는 정신요양시설을 개선해야 한다”며 “현재와 같은 폐쇄적인 정신요양시설이 아니라 출입이 자유로운 사회복지시설로 전환하는 방향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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